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9일(현지시간)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 독립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스페인 국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르셀로나|AFP연합뉴스
스페인이 카탈루냐의 독립 선언에 이은 차치권 박탈로 새로운 혼돈 속이다. 정국이 정면충돌로 치달은 데는 탈출구를 찾던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과 라호이 총리의 정치적 상황이 얽혀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독립공화국 선포안을 가결한 지난 27일(현지시간) 스페인 상원은 자치정부 해산을 선언했고, 중앙정부는 푸지데몬을 비롯한 각료를 일제히 해임했다. 이에 푸지데몬 수반은 28일 방송 연설에서 주민들을 향해 “우리가 이룬 것을 지키기 위한 최선은 민주적인 반대”이라고 말하며 정부 결정에 대한 불복종 의지를 밝혔다.
정부가 헌법 155조를 발동하면서 법적으로 카탈루냐는 자치정부·의회의 기능이 멈춰 행정권이 중앙정부로 넘어갔다. 정부의 직접통치에 따라 카탈루냐 자치경찰인 ‘모소스 데스콰드라’의 주제프 유이스 트라페로 청장도 해임돼 내무부의 지시를 받게 됐다. 자치정부가 설치한 외국 공관은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말 이후 공무원들이 시위·파업 등을 통해 저항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혼란은 불가피하다. 지역의 안전을 책임지는 모소스는 아직 중립적 입장이나 노조 측은 일단 스페인 정부의 지시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AFP 등이 보도했다.
푸지데몬 수반이 대응 방식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카탈루냐가 전면적인 불복종 움직임에 나서면 정부는 강경하게 맞설 수 있다. 준군사조직인 군경, 보안군을 대규모로 배치하고, 지방정부 청사와 언론을 몰수하는 것이다. 시위를 막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특정 시간 통행금지를 명령할 수도 있다. 저항하는 카탈루냐 정치인과 관료들의 체포 가능성도 있다.
스페인 정부 조치를 환영한 영국·미국 등 국제사회의 입장과 “유럽을 휩쓰는 분열에 대한 성찰이 시급하다”며 간접적으로 지지를 밝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응도 라호이 총리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강경 대응은 총리의 지게될 정치적 부담은 크다. 분리·독립을 주장해 온 카탈루냐의 민중연합후보당(CUP)의 의원들이 반발한다고 해서 주어진 권한에 따라 이들을 해임하거나 구금하면 “정치적으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라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특히 총리에게 "가장 나쁜 악몽은 위기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집권 국민당과 연정 중인 보수 진영과 사회당 역시 극단적 방식을 원치는 않는다. 정부의 과잉대응이 국제적 비난을 받게되면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에게 오히려 빌미를 줄 수도 있다.
국내 여론 역시 분열돼 있는 상황이다.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일간 엘푼트아부이는 독립선언을 환영하며 28일자 1면에 “올라(Hola·안녕), 공화국”이라고 실은 반면, 전국지 엘파이스는 정부의 카탈루냐 자치권 박탈을 내세워 “반란을 진압하는 국가”이라고 헤드라인을 달았다.
10월28일자 스페인 전국 일간 엘파이스는 1면(왼쪽)에 "국가가 반란을 진압한다"고 제목을 달았고, 같은날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엘푼트아부이는 "올라, 공화국"이라고 헤드라인을 달았다.
중앙정부와 자치정부 간 갈등은 12월21일 카탈루냐 자치의회의 조기 선거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푸지데몬 수반은 조기선거에 대한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았지만 정부 대변인인 이니고 멘데스 데 비고 스페인 교육문화부 장관은 “해임은 됐지만 정치를 계속 할 권리는 있다”며 푸지데몬의 조기선거 참여가 그가 언급한 “민주적 저항”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강경 일변도를 보인 중앙정부가 푸지데몬 수반의 조건선거 참여를 지지하는 유화적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시민 대다수가 원했던 대화와 타협의 방식 대신 최악의 갈등 국면으로 치달은 것을 두고 중앙·자치정부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바드칼리지의 오마르 엥카르나시온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스페인 정치에서 친숙한 두 캐릭터인 순교자와 독재자가 등장한다”고 언급했다.
푸지데몬 수반이 반역죄 기소 가능성과 중앙정부에 자치지역이 장악될 수 있음을 알고서도 독립을 선언한 것은 “자신을 정부의 희생자로 그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는 1934년 분리독립을 선포했던 루이스 콤파니스 카탈루냐 주총리가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선 1940년 처형됐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2015년 선거에서 CUP와 손을 잡고서야 연립정부를 구성한 그는 분리주의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 155조 발효는 정부가 자신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구도로 비춰질 수 있고, 이는 향후 카탈루냐 지역에서 정부에 맞서 분리주의 운동을 이어갈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라호이 총리 역시 헌법과 하나의 스페인을 수호하는 ‘카우디요(독재자)’ 이미지를 통해 보수주의자들뿐 아니라 마치못해 ‘다문화 스페인’을 추구했던 우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바스크, 갈리시아 등 독립을 원하는 북부 지역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바스크 지방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3%는 카탈루냐식 접근법으로 독립을 추진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카탈루냐 독립에 지지한다는 응답도 22%에 그쳤다.
엥카르나시온 교수는 “두 사람의 치킨게임은 새로운 수준의 불확실성을 부른다”며 “가장 큰 패자는 지속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요구해왔던 카탈루냐 주민을 포함한 국민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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