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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럽

조기사망·실업·뎅기열, 기후변화는 ‘현재의 재앙’

by bomida 2017. 10. 31.

스페인 북서부 도시 비고 인근 바라간 강의 바닥이 지난 27일(현지시간)가뭄으로 갈라져 있다. AFP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조기 사망, 질병의 확산, 92만명의 일자리 상실, 경제적 손실 144조원···.


 인류의 삶과 직결된 의학적 주제를 집중 연구해 세계적 권위를 얻고 있는 영국 의학저널 란셋이 31일(현지시간) 기후변화가 초래한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보고서 ‘란셋 카운트다운’을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환경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미래의 악몽이 아니라 지금 인간의 삶에 맞닥뜨린 현재의 재앙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유엔기상기구(WMO)와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런던대·칭화대 등 세계 26개 대학·기관들이 폭염과 자연재해, 질병, 대기오염 등 40가지 지표로 지난 25년간 기후변화가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미친 영향들을 처음으로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는 2000~2016년 세계에서 폭염에 시달린 사람이 1986~2008년 평균치와 비교해 연간 1억2500만명이 늘었다고 밝혔다. 2015년 한해에만 총 1억7500만명이 증가했는데, 2050년이면 폭염을 겪는 인구는 10억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00년 이후 급격해진 기온 상승은 농촌 생산활동에 치명타였다. 야외 노동이 필요한 농업의 생산력은 5.3%나 떨어졌는데 폭염이 극심해진 2015년 이후 2년간 2%가 급감했다. 이에 2016년 92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농업 비중이 높은 인도에선 41만8000명이 실업자가 됐다. 기온 상승은 식량생산과도 밀접하다. 세계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밀 생산량은 6%, 쌀은 10% 급감하기 때문에 영양 부족의 우려도 커졌다.


 온난화의 원흉인 화석연료는 대기오염을 불렀다. WHO가 조사대상으로 하는 세계 2971개 도시 중 71%가 대기질 관리 기준을 초과해 초미세먼지(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에 노출된 인구는 1990년 이후 11.2%가 늘었다. 호흡기 질환은 많아졌고, 2015년 한국에선 1만9355명, 일본은 3만7000명이 숨지는 등 아시아 21개국에서 80만3000명 이상의 조기 사망자가 나왔다. 


   모기가 퍼뜨리는 뎅기열바이러스의 확산도 가속돼 1990년 이후 10년마다 발병률은 2배씩 커졌다. 병을 옮기는 두가지 모기가 특정 공간에 몰려있는 비율(매개용량)이 3%, 5.9%씩 늘어 질병의 전파가능성도 9.4%와 11.1%씩 증가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모기의 매개용량이 1950년 이후 12.5%가 늘었다. 뎅기열은 이제 매년 5000만명에서 1억명이 걸려 가장 빨리 전파되는 질병이 됐다.


 연구팀의 공동의장인 휴 몽고메리 런던대 교수는 “기후변화는 21세기에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한 원인”이라며 “영향을 (이제) 느끼기 시작했을 뿐이지만 다른 문제와 달리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란셋은 최근 또 다른 보고서에서 대기·수질·토양오염이 “약 900만명의 조기사망자를 불렀다”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질병·사망을 부르는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 국가·대륙별 대기오염의 원인. 자료:란셋

1990년 이후 극단적인 날씨가 부른 재해로 영향을 받은 인구수.자료:란셋


 란셋 카운트다운은 이번 세기에 기후변화에 따라 재해가 46% 늘었고, 2016년에만 129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영향을 온난화에 대한 책임이 적은 빈곤국에서 더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경우 보험을 통해 손실액의 절반 정도를 보전받지만, 소득이 중상위인 국가에서는 10% 미만, 저소득 국가에서는 1% 미만에 그친다. 이런 불균형 때문에 1990~2010년 저소득국가들은 국내총생상(GDP)의 1.5% 이상을 기후변화 피해로 지출했다.


 연령별로는 고령자와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더 크게 받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에선 65세 이상 고령자 중 극심한 무더위를 경험한 숫자가 총 1450만명으로 펜실베이니아 인구보다 많았다. 피터 콕스 엑서터대 교수는 “지난해 지구 온도는 2000년보다 0.9도 더워졌다”며 폭염에 노인들이 취약한 점을 강조하며 “고령화시대에 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특히 앞서 WMO는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6년 403.3ppm으로, 2015년에 이어 400ppm 이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300만~500만년 전인 선신세 중기 이후 처음으로 탄소 농도가 400ppm를 넘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지구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20m, 평균 기온은 3도가량 높았다. 란셋 카운트다운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지속돼 빙하 붕괴로 해수면이 올라가 90년 내에 전세계 10억명 이상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