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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

[김보미의 도시&이슈] 독립을 꿈꾸는 카탈루냐가 이슬람 혐오를 거부한 이유

by bomida 2017. 9. 7.

지난달 26일 스페인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지난달 17일 바르셀로나와 캄브릴스에서 일어난 테러에 맞서 ‘나는 두렵지 않다’는 슬로건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행렬 속에서 스페인에서 독립한 카탈루냐 공화국을 상징하는 카탈루냐 독립기가 펄럭이고 있다. 바르셀로나|AFP연합뉴스 


 시민 50만명이 모여 연쇄 차량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행진이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열렸다. ‘우리는 두렵지 않다’ ‘이슬람 포비아(혐오)를 거부한다’고 쓴 팻말을 든 행렬 사이로 많은 깃발이 나부꼈다.


 가장 눈에 띈 깃발은 스페인 국기도, 카탈루냐기도 아닌 카탈루냐 독립기였다. 노란색 바탕에 4개의 빨간 가로줄이 그려진 카탈루냐기와 비슷하지만 파란 삼각형에 흰 별이 박혀 있다.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국기에서 따온 이 문양은 두 국가처럼 스페인에서 독립한 카탈루냐 공화국을 상징한다.


 테러가 일어났던 캄브릴스 거리에선 “나는 무슬림이다.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시민들이 서로 껴안았다. 극우 파시즘 단체가 테러를 빌미로 무슬림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려 하자 수천명이 나서 해산시키기도 했다. 이슬람 혐오를 차단한 요인을 영국 가디언은 “적극적인 좌파적 독립운동으로 굳어진 카탈루냐의 자유주의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긴축에 맞서 가장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공권력을 강화하려는 중앙정부에 거세게 저항했으며, 젊은 정치의 바람을 일으켜 중앙 정치까지 변혁시킨 카탈루냐의 정서가 테러로 다시 한번 부각된 셈이다.



 카탈루냐는 연간 3000만명이 다녀가는 국제적 관광도시 바르셀로나, 피레네산맥, 지중해를 품고 있다. 도로 표지판과 식당 간판엔 스페인어보다 카탈루냐어가 먼저 표기될 만큼 오랫동안 독자적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있다.  


 20년 전엔 자치경찰 ‘모소스 데스콰드라’가 중앙정부를 대신해 자체적으로 치안을 맡는 권한도 가져왔다. 수백년 역사의 모소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경찰 조직이다.


 카탈루냐는 인구가 752만명으로 스페인 전체의 16%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500억유로로 경제의 20%를 차지해 3대 자치주 중 가장 크다. 올해 지역총생산 성장 전망치는 3.3%(IMF 자료)로 전국 평균(2.8%)보다 높다. 이 같은 경제력은 다음달 1일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치르는 카탈루냐의 가장 큰 동력이다.


르셀로나 테러가 일어난 지 이틀 뒤인 지난달 19일 스페인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한 여성이 ‘어떤 불의에도 반대한다’는 손팻말을 든 무슬림 여성과 포옹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FP연합뉴스


스페인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에 사는 4살 무슬림 소년 오마르가 19일 이틀전 바르셀로나 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집회에서 ‘나는 무슬림이다.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바르셀로나|AFP연합뉴스 


 15세기 동로마제국 멸망 후 스페인에 합병된 카탈루냐는 1922년 프란세스크 마시아의 주도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1936년 7월 내전으로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1939년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1975년 프랑코가 죽고 후안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르자 다시 자치를 도모했다.


 2006년 자치권을 얻어내면서 독립국가를 향한 움직임이 명확해졌다. 스페인 의회는 당시 카탈루냐에 세수입 관할과 카탈루냐어 공용어 인정, 독자적 사법권 보장 등을 약속하며 사실상 국가에 준하는 지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0년 이같은 내용을 담은 카탈루냐 자치법 개정안에 대해 무표 판결을 내렸고 이후 매년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민투표를 앞두고 자치정부는 주의회에 과도정부의 ‘임시헌법’까지 제출할 예정이다.


 사회학자 카를로스 델클로스는 “독립을 준비해 온 역사는 왕실과 중앙정부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추구하는 정체성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치안과 이민 문제가 그렇다”고 밝혔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스페인 정부가 긴축정책을 시작하면서 서민·노동자층이 결집된 좌파 진영의 15M 운동이 전역에서 일어났다.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로 불린 반정부 시위에 정부는 경찰 권한을 강화하고 언론·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통제령(gag-law)으로 맞섰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는 거부했다. 특히 ‘분노한 사람들’을 이끈 젊은 시민운동가들은 정당 ‘포데모스’를 만들어 2015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부상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경제위기로 집을 잃은 뒤 거주운동에 뛰어들었던 아다 콜라우는 바르셀로나 시장에 당선됐다.


 카탈루냐 주의회는 2015년 정부에 이민자수용소를 폐쇄하라고 요구했고, 바르셀로나시는 인권침해를 비판하며 적법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또 유럽연합(EU)과 합의한 난민수용 정책도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 2월엔 시민 30만명이 정부의 소극적 난민 수용을 비판하며 바르셀로나에서 행진을 벌였다.


 스페인 무슬림 4명 중 1명은 카탈루냐에 산다. 대부분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이민자들로 모로코 출신이 많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 외곽 방리유의 무슬림처럼 따로 모여 살지 않고 지역적·계층적으로 고루 섞여 있다. 이민자를 사회 불안·분열의 원인으로 보지 않고 포용하는 문화가 강력하다. 워싱턴포스트는 “무슬림이 수세기 동안 살아온 전통적 좌파 성향의 도시는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테러 이후 나타나는 문화전쟁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는 오히려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자치정부 사이의 긴장감을 키웠다. 양측은 테러 수사에서도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을 주고 받고 있다.


스페인 무장경찰들이 지난달 20일 3일 전 일어난 테러로 희생된 이를 위한 추모행사를 앞두고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야 대성당 앞을 순찰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FP연합뉴스 


 카탈루냐의 오랜 독립의 염원은 이뤄질까. 이전에도 주민투표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11년 12월 20여만명이 참여한 투표에선 94%의 찬성률을 보였다. 2014년 11월엔 ‘국가가 되길 원하는가’ ‘주의 독립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85%가 ‘예’라고 답했다. 하지만 투표율이 35%에 불과했다. 미 조지타운대 라이아 발셀스 교수는 “이번 테러로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다. 시민들의 시각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파의 독립 주장에 묻힌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카탈루냐 지방선거에서 독립을 반대하고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중도우파 정당 ‘시민들(C’s)’이 지지율을 예전의 2배로 끌어올려 주의회 제2당이 됐다. 카탈루냐대중당의 전 총재 조셉 피케는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이 “프랑코 독재 때 억압받은 것을 바탕으로 독립 반대자들을 ‘프랑코 지지자’나 ‘우파’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카탈루냐 정부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독립 지지’(44.3%)와 ‘반대’(48.5%)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투표를 위헌으로 본다. 카탈루냐주가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독립을 선언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는 이미 투표 자체에 위헌 판결을 내렸기에 무효화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