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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보수파 ‘티파티(Tea Party)’가 미국 셧다운 몰고왔다

by bomida 2013. 10. 16.

미국 연방정부가 멈췄다. 지난 9월 30일(현지시간) 시한까지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다음날인 10월 1일부터 공무원 급여와 기관 운용에 필요한 재정 지출을 할 수 없게 된 정부는 부분 폐쇄(셧다운)에 들어갔다. 17년 만에 국정 마비를 부른 미 정치권의 중심에 공화당 내 강경보수파인 티파티(Tea Party)가 있다.

티파티는 증세를 반대하는 일반 시민들의 조직으로 시작됐다. 1773년 영국 통치를 받던 시절, 식민지에 대한 살인적 세율에 저항한 미국인들이 보스턴 항구에서 영국산 차(茶)를 바다로 던졌던 ‘보스턴 티파티’ 사건에서 이름을 따왔다.

정치권 내 주요한 움직임으로 티파티가 떠오른 것은 2009년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건강보험 개혁안(오바마케어) 추진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증세와 각종 규제를 반대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티파티 진영은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바마케어의 재원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며, 사적인 영역인 의료보험을 정부 주도로 관리하려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대대적인 ‘티파티 운동’이 일어났다. 


미국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로 필수 인원을 제외한 각 부처 직원들에게 임시 무급 휴가 조치가 취해지자 지난 2일(현지시간) 한 정부 계약직원이 워싱턴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UPI연합뉴스


개혁안은 이듬해 의회를 통과하기는 했으나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법안을 지지했던 민주당은 대패하고 만다. 공화당은 티파티를 등에 업고 하원 과반을 뺏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가 티파티의 후원을 받는 폴 라이언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해 티파티 민심을 수용하기도 했다.

공화당 ‘티파티’ 등에 업고 하원 과반 차지

이후 반(反)증세, 반(反)이민 등 백인 중심의 비타협적인 구호가 공화당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빈 웨버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최근 몇 년간 공화당의 원동력은 티파티에서 나왔다. 이 새로운 역학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가 없다”“티파티의 급진적 생각은 행정부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도 불사하기 때문에 기존 주류 보수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그러나 티파티는 5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전통적 공화당 성향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많다. 진보 성향의 미 인터넷언론 ‘살롱’의 전 편집장 조앤 월시는 셧다운을 몰고 온 티파티에 대해 “공화당이 일관되게 밀어 온 ‘정부는 적’이라는 전략의 정점”이라며 “특히 첫 흑인 대통령 정권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전했다.

이 전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리처드 닉슨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의 소위 ‘남부 전략’이 있다. 이를 통해 닉슨은 원래 민주당의 텃밭이던 남부의 표를 대거 얻어 승리했다. 1930년대 이전에는 노예해방을 이뤄낸 에이브러햄 링컨의 공화당을 지지하는 흑인들이 많았으나 대공황을 겪으며 상황은 바뀌었다. 

이후 뉴딜정책을 이끌어낸 민주당이 흑인과 빈곤층,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따라서 흑인의 60%가 거주하던 남부는 민주당 표가 절대적이었다. 닉슨은 1964년 민권법 제정 이후 흑인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선거에 이용했다. 

남부 백인들에게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심어줬고 인종·경제적 변화에 대한 백인의 두려움이 닉슨을 대통령에 앉힌 것이다. 이 ‘인종학’은 이후 공화당이 백인 표를 유인하는 데 자주 등장한다.

소수지만 백인 표심 자극에 영향력 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노골적인 인종 언급은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화당은 흑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보는 민주당의 정책들을 비판하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노선을 바꾼다.


미국 연방정부 폐쇄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권 협상이 한창이던 10월 8일(현지시간)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왼쪽)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 AFP연합뉴스


백인과 흑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거주지역이 아닌 곳으로 학교를 배정하는 강제 버스통학, 복지 쿠폰 등이 그 예다. 좀 더 추상적으로 발전하면서 공화당은 감세 등 경제적인 부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이 오바마케어의 재원을 반영한 이번 예산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협의를 거부, 정부 셧다운을 부른 것은 앞선 움직임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티파티 성향의 의원은 연방하원 435명 중에서 80명 정도로 소수다. 공화당(232명) 내에서도 30%에 불과한데도 영향력이 큰 이유는 역시 표심과 연관돼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번 사태를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맹비난하며, 공화당 비주류인 티파티에 정치권이 휘둘리는 것은 2010년 공화당이 각 주의회의 백인 인구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선거구를 재확정(게리맨더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리드먼은 “선거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된 티파티는 엄청난 정치자금과 보수언론을 끌어들여 극우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의 원칙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티피티의 반정부 기조는 예산안에 이어 부채한도 상한으로도 이어졌다. 미 재무부는 정부 부채한도 상한선을 17일까지 올리지 못해 신규 채권 발행을 할 수 없게 되면 채무불이행(디폴트)의 국면을 맞게 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과 미 정치권은 경제 대국인 미국이 돈이 없어 빚을 제때 갚지 못한다면 세계 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하지만 공화당 내에서는 이를 정부의 ‘위협’으로만 받아들이는 목소리가 꽤 있다. 티파티 성향의 팀 헐스캠프 하원의원은 “월가(금융권)는 자신들의 투자에 이 국고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곳들은 아무 영향도 없다. 정부가 지출이 축소되는 것을 막으려는 욕망일 뿐”이라며 “공포 전략은 잘 먹히지도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힘들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티파티 초선의원인 테드 요호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부채 상한을 올리지 않으면 미국의 부채 16조7000억 달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시장의 안정을 부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화당 안에서도 역효과 우려 늘어

그러나 미국 싱크탱크 ‘초당파적 정책센터’는 10월 22일 사회보장제도 지불에 120억 달러, 31일 부채 이자비용으로 60억 달러, 11월 1일 550억 달러가 당장 필요하지만 17일 현재 미 국고에 남은 현금은 300억 달러뿐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티파티의 현실 인식에 대해 공화당 내에서조차 반발이 나온다. 공화당 일부에선 “공화당이 정부 파괴도 불사하는 반란을 원한다”는 이미지를 만들면 극단주의를 증오하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여론전에서 백악관과 민주당을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 

또 미국 중산층 내 공화당 지지자들이나 기업, 보수 연구소 등도 이번 셧다운을 계기로 공화당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역효과를 우려하는 의원들도 많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제니퍼 루빈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작은 정부를 바라기는 하지만 자유주의자나 허무주의자는 아니다”라며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 효율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티파티의 독주를 막지 못하면 공화당은 당장은 의회를 주도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