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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현장 보고서 - 물은 기본권이다] 물 사유화의 첨병 ‘보틀드 워터’

by bomida 2013. 8. 14.



62개국 6억명이 이미 민영 상하수도… 수돗물 불신 생수 소비 부추겨

먼 길 떠나는 이들이 꼭 듣는 당부가 있다. “물 조심해라.” 아무것이나 마시고 탈나지 말라는 잔소리다.

지난 5월 멕시코와 볼리비아를 방문하면서 탈날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선택한 것이 생수였다. 병에 든 먹는샘물이다. 멕시코에서는 곳곳에 즐비한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500㎖짜리 한 병에 8페소(약 700원)였다. 볼리비아에서는 마트에 들렀다. 일반 제품보다 산소 투과량이 많다는 뜻인지 ‘O10’가 붙은 600㎖짜리 생수 한 병을 골라 집었다. 3.5볼(약 550원)이다. 한국에서는 대형마트·인터넷에서 500㎖ 생수를 200~300원대에 할인해 팔기도 하지만 보통 편의점 등지에서 500~700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만리타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두 지역의 물값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병물, 생수, 먹는샘물 등으로 불리는 ‘보틀드 워터’(Bottled Water)는 이제 전 세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나라 생활수준과 상관없이 언제나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다. 물을 플라스틱병에 담으니 옮기기 편하다. 수출도 용이하다. 원래 물의 국적이야 있겠지만 가공을 거치면서 만국 공통의 기업 무역 대상이 됐다. 규제도 거의 없다. 생수의 유통은 물이 어떻게 판매되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대 전 세계에서 연간 10억ℓ 정도 거래된 생수는 1980년대 들어 25억ℓ로 2배를 넘겼다. 1980년대 말에는 75억ℓ 규모가 됐다. 2000년에는 840억ℓ, 220억달러어치가 유통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4분의 1은 생산된 나라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팔렸다. 영국 물 전문조사기관인 세계물정보(Global Water Intelligence)에 따르면 10년이 지난 2010년 생수 소비 규모는 또다시 2배가 넘는 589억달러어치에 이르렀다.







생수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 세계 약 5000억달러(2010년 기준 4828억달러)의 물 관련 시장에서 10분의 1을 조금 넘을 뿐이다. 나머지 물은 어떻게 돈벌이 대상이 되고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산업에 대해 ‘생활·공업 용수를 생산·공급하고 발생 하·폐수를 이송·처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상·하수도와 폐수, 생수, 정수기도 포함된다. 이들 분야와 관련된 업체만도 3만2000여개나 된다. 가장 많은 돈은 수돗물, 즉 상수도를 만드는 데 몰려 있다. 여기서 전체 물시장 규모의 43.4%인 2093억달러가 오고간다. 다음은 하수도로, 1618억달러(33.5%)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어떤 형태의 물이든 사람이 물을 접하는 모든 과정은 상품이 됐다. 이 시장은 연평균 4.9%씩 커져 2025년이면 지금보다 80%나 늘어난 865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물은 20세기의 ‘검은 황금’이었던 석유의 위치를 이을 ‘블루 골드(푸른 황금)’라 불린다.

물은 1990년 들어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사유화 대상이지만 국가가 관리하던 물이 사기업의 손으로 넘어간 때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수된 물을 수도꼭지에서 바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상수도 공사가 시작될 무렵이다. 1820년 영국에는 이미 여섯 개의 민간 전문 수도회사가 생겼다. 그때까지는 지방정부를 보조하는 차원이어서 1900년대까지 이들의 물 서비스 점유율은 10%에 그쳤다. 상황이 바뀐 것은 마거릿 대처 총리의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다. 작은 정부, 민간기업의 자율 경쟁을 앞세운 ‘대처리즘’은 1989년 영국의 모든 상·하수도를 민영화시켰다.

현재 세계 1, 2위 물기업인 베올리아(옛 비방디)와 수에즈(옛 온데스)가 프랑스에 등장한 때는 1858년과 1880년이다. 다른 유럽 나라보다 수돗물 보급이 늦었던 프랑스 정부는 19세기 중반부터 민간에 이를 위탁하기 시작했다. 1936년까지만 해도 점유율이 17% 정도였지만, 투자는 시 정부가 맡고 민간은 운영·유지만 책임지는 식으로 물 관리가 바뀌면서 2000년대 민영 비율이 80%로 확대됐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주정부가 재정이 어려워지자 1999년 16억9000만유로를 받고 수도시설의 49.9%를 민간에 팔았다. 볼리비아·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에서는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돈을 빌리는 대가로 사실상 강제 민영화가 이뤄졌다. 국가 지출을 줄여 재정을 정상화하는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세계은행의 2007년 보고서를 보면 민간업체의 물을 쓰는 인구는 40여개국 2억7000만명 정도다. 하수는 뺀 상수만 포함한 수치다. 다국적 법률회사 핀센트 메이슨스(Pinsent Masons)가 이를 바탕으로 이후 인구 증가율, 물 민영화 추이를 감안해 분석해보니 2011년에는 62개국 6억1000만명이 민간업체의 물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인구의 13% 수준이다.

OECD는 2025년이면 30개 회원국과 신흥경제국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서만 연간 1조달러 이상의 물 관련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은 2005~2030년 세계 물 투자 수요는 전체 도시 인프라 투자(41조달러)의 절반 이상(55%)인 22조6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중동·아프리카와 아시아는 2025년까지 연 10% 이상씩 시장이 늘어날 것으로 보여 일본(2.6%)이나 유럽(3.2%), 북미(4.4%)보다 기업들의 공략 대상이 될 전망이다. 블루 골드로서 물의 입지는 공고해 보인다.

국가별로 보면 가장 큰 시장은 미국(2010년 기준 1070억달러)이다. 일본(590억달러)과 중국(470억달러)이 뒤를 잇는다. 한국(100억달러)은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호주(150억달러), 스페인(110억달러)에 이어 세계 11위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국내 상·하수도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거의 전담하고 있지만, 시설·설비·정수필터·화학 등에는 많은 물 관련 기업들이 관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외국의 상·하수도를 건설해주거나 해수를 담수로 바꾸는 플랜트를 짓고 돈을 벌기도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0년까지 국내 113개 업체가 49개국에서 500건 넘는 물 사업권을 따왔다. 수주액으로 보면 37조원어치다. 사업 금액에서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중동(85%)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시절 리비아 대수층 개발 참여가 큰 몫을 차지했다.


국민 73%가 생수를 먹는 멕시코의 한 식료품점(왼쪽 사진)에 다양한 용량의 생수가 진열되어 있다. 한국의 생수시장도 연 6000억원대로 성장했다. 서울의 대형마트(오른쪽)에서 한 고객이 생수를 고르고 있다. 멕시코시티 | 김보미 기자·롯데마트 제공



물을 민간기업이 관리하는 데 찬성하는 이들은 민간이 맡을 때 효율성이 높아지고 서비스 질과 수도 접근성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영국 상·하수도 평균 요금은 1989년 120파운드에서 2006년 294파운드로 17년간 245%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인상률로 따져도 39%에 이른다. 베를린은 2004년 한 해만 수도요금이 15%나 오른 반면 주정부 수입은 민영화 전보다 줄어 1997년 1억8800만유로 흑자에서 1000만유로 적자로 돌아섰다.

기업이 공급하는 물의 질은 어떨까. 사유화된 물을 두고 기업들이 가장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생수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대부분의 생수업체들은 ‘깨끗한 샘물’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수돗물보다 안전한 병물을 먹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영국 카디프의 웨일스대가 2003년 지역 식중독을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매년 보고되는 식중독 5만건 가운데 6000건(12%)이 병에 든 물 탓에 일어났다. 흔한 식중독균인 캄필로박터균이 주원인이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생수에 들어 있다는 칼슘·마그네슘·플루오르 등 미네랄은 수돗물에도 있는 성분”이라고 설명한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생수 소비를 늘리기도 한다. 멕시코의 식료품점이나 편의점에는 20ℓ, 10ℓ 대형 용기에서부터 1.5ℓ, 500㎖까지 다양한 크기의 생수병이 놓여 있다. 멕시코의 물은 석회질이 많은 데다, 녹슬고 구멍난 채 방치된 수도관을 타고 공급된다. 이 때문에 수돗물은 먹을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상수도 보급률이 97%에 이르는데도 1인당 생수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민 73%가 생수를 이용한다. 미국 월드워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 국민은 1인당 연간 179.7ℓ의 생수를 사서 마신다. 세계 평균치(1인당 25.5ℓ)의 7배다. 소득에 따라 물 보조금이 주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멕시코 사람들은 수돗물 값의 2000배를 들여 생수를 사 마신다는 분석도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수도시설이 완비되기도 전에 생수시장부터 생겨나 물의 빈부격차를 키우기도 한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NRDC) 조사를 보면 생수를 사 마실 경우 수돗물보다 240~1만배(1999년 기준)의 비용이 든다. 그래서 빈민들은 물 대신 콜라 같은 다국적기업의 음료를 먹는 경우도 많다. 볼리비아에서 2.5ℓ짜리 콜라는 병당 9~10볼(약 1500~1600원)로 물보다 오히려 싸다.

한국도 생수의 저변이 넓어지는 국가 중 하나다. 2000년에 1562억원 규모이던 이 시장은 지난해 6000억원대로 성장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67개 업체(제조허가 기준·6곳 휴업 중)에서 먹는샘물을 만들고 있다. 전국 190개 취수공구에서 하루 3만4739t씩 병에 담겨 시장에 나온다. 해외 생수를 수입하는 곳도 61개 업체나 된다. 중국·캐나다·일본·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해 북한에서도 병물을 수입해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