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책임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번 화학무기 공격으로 성역 다마스쿠스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2년 6개월간 이어진 전쟁으로 10만명 가까이 죽었다. 3만명은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 상태다. 매일같이 터지는 폭탄과 총성을 피해 180만명이 태어나 자란 땅을 등지고 나라 밖 난민이 됐다. 국내에서도 400만명이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3년째 서로 폭격을 가하면서 공공분야 손실이 150억 달러에 이른다. 경제규모는 35%가 줄었고, 실업률은
5배가 늘었다. 당장 전쟁이 멈춰도 재건 비용만 60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많은 시리아인의 삶이 2011년 3월 내전 이후 무너졌다.
미국 “금지선 넘었다” 군사대응 시사
이 같은 상황에도 ‘성역’처럼 남아있는 곳이 있다. 수도 다마스쿠스다. 대통령궁을 비롯한 정부 주요 시설이 집중된 다마스쿠스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요새이기도 하다. 정부군의 정예부대가 주변을 둘러싸고 반정부군의 공격을 방어해 왔다. 로이터통신은 다마스쿠스에는 전쟁 중에도 ‘안전불감증’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철옹성 같던 다마스쿠스 분위기가 변한 것은 전쟁 중 최악의 사건으로 꼽힐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날 쯤이다. 지난 8월 21일(현지시간) 수도 외곽 마을들에서 수 십구의 시신이 늘어선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 살에서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총상이나 폭행 등 외상 없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자는 듯이 죽어 있었다. 사린가스로 추정되는 독성물질이 포함된 무기가 마을에 떨어지면서 벌어진 참사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사건으로 355명이 사망하고 36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최대 1300명이 숨졌다는 주장도 있다.
지역 활동가들과 반정부군, 이들을 지지하는 서방 국가들은 “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을 상대로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렀다”며 “미친 행동”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그러나 아사드는 러시아 이즈베스티야와 인터뷰에서 “상식을 모욕하는 주장”이라고 맞받았고, 시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러시아는 “반정부군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모든 정황상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썼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사드 정권이 ‘금지선’을 넘은 것으로 보고 군사대응을 시사했다.
아사드가 왜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이 같은 전술을 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철벽방어를 해오던 수도 코앞에서, 그것도 유엔 조사단이 시리아 내 화학무기 사용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와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돼 있던 때였다.
아사드의 말처럼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이번 공격에 대해 중동 외교전문가와 반정부군은 정부군의 다마스쿠스 방어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내전 발발 후 정부군은 수도 남부 외곽순환도로 밖으로 반정부군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이 부근에는 양측이 맞서는 ‘중립지대’가 형성돼 있다.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난 자말카·조바·아인타르마 등 구타 동부 지역과 서부 무아다미야가 여기에 속한다.
반정부군에 수도 포위되자 화학무기 선택
구타의 반정부군은 내전 직후 가장 먼저 군사력을 갖춘 세력이다. 대부분이 현 정권의 핵심이자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에 대항하는 수니파다. 정부군 정예부대는 이 네 지역을 탈환하려 애썼으나 반군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한 중동 외교 관계자는 “정부가 (화학무기로) 구타를 공격한 것은 가진 모든 것을 던진 셈”이라며 “도시 인근에 잘 조직된 반군이 있으면 화학무기 유혹이 커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바 지역의 반정부군은 수도 북부에 위치한 도시 바제와 카본으로 들어가는 길을 뚫었다. 다마스쿠스로 공격하기도 쉬워졌고 바제·카본에서 정부군에 맞서는 다른 세력을 도울 수 있게 됐다. 반정부군 아인타르마 지역위원회 할레드 오마르는 “외곽과 수도 내 조직이 합쳐지면 정권은 섣불리 덤빌 수가 없다”며 “아마 바제·카본에 화학무기를 쏘고 싶었겠지만 수도와 너무 가깝다. 구타 지역을 공격해 다마스쿠스도 지키고 반정부군도 파괴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 외곽을 방어하는 정책은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때부터 이어온 40년 아사드 정권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부는 무아다미야 지역의 땅을 몰수해 군사공항과 정예군 복합시설을 확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부군은 내전 초기부터 무아다미야에 집중 공격을 했다. 주민 대부분은 이 지역을 빠져나와 현재 9000명 정도가 남아 있다. 활동가 와심 알아마드는 “화학무기는 9개월간 반정부군에게 수도가 포위된 정부가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선택한 전술”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화학무기 공격은 아사드 대통령의 동생인 마헤르 알아사드가 주도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마스쿠스 남단 제4여단을 이끄는 마헤르는 정권의 실세이자 군경 지휘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반정부군은 그를 ‘악마’라고 부른다. 여성과 아이까지 민간인 학살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등의 잔혹한 성향 탓이다. “반정부군을 쓸어버리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공언했던 그가 참혹한 결과를 부른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누구의 책임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번 화학무기 공격으로 성역 다마스쿠스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서방은 유엔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자체 수집정보를 토대로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썼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군사력 투입을 준비 중이다.
겉으론 평온, 지도층 탈출행렬 이어져
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난 8월 27일 다마스쿠스 내 식당과 커피숍 등은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다. 도로 곳곳에 교통 정체가 일어나는 등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각 가정에서는 공습 현실화에 대비해 식료품과 촛불을 비축하는 한편, 창문을 막아 놓고 있다. 휴교에 들어가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전에 없던 지도층의 다마스쿠스 탈출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수도에서 레바논으로 나가는 국경인 마스나 국경수비대 관계자는 “수속 없이 지나가는 군사 경로가 일부 VIP들에게 개방됐다”고 말했다.
서방 개입은 남은 주민들에게 또 다른 두려움인 동시에 지난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도 주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반정부군을 지지하는 주민 라바 압델라하만은 “어떤 개입이든 좋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하다. 결과가 어떻든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컴퓨터기사 아사드 알리는 “새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더 나빠질 것도 없다. 아사드의 지지자들은 스스로 정권의 제물이 되겠다고 하지만 아마 공습 첫 발에 제일 먼저 도망갈 것”이라고 열을 올렸다.
다만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공습의 장기화다. 택시기사 야신은 “외국이 우리나라를 친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지금은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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