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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페소화엔 대통령 리더십이 없다

by bomida 2014. 2. 18.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42%였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1월 27%로 반토막이 났다.


신흥국 경제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남미를 흔든 외환 대란을 떠올리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에 들어가면서 달러 가치가 뛰었고,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국가들의 화폐 가치는 급락세를 탔다. 외환 충격은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이지만 선진국 증시가 연초 일제히 하락하는 등 연쇄적 영향이 미쳤다.

이번 요동의 중심에는 아르헨티나가 있다. 2001년 국가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10년 넘게 침체돼 있다. 연준 쇼크로 가뜩이나 약한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는 큰 폭으로 추락했다.

추가 테이퍼링설이 나왔던 1월 22~23일 이틀간 페소화는 1달러 당 6.9페소에서 8페소로 15%나 폭락했다. 1월 감소폭만 19%에 이른다. 2011년 520억 달러 수준이던 외환보유액은 현재 28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2006년 이후 최저치로, 중앙은행의 환율 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환율방어 속수무책, 디폴트 재현 우려
이 때문에 디폴트 재현 우려도 나오지만 정작 사태를 수습해야 할 아르헨티나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특히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는 상황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뇌 수술을 받은 그는 석 달 가까이 국정을 비웠다. 건강을 이유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외환위기가 가시화된 후에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이라고 해봐야 1년간 수입품 달러 결제를 중단하고 일반 소비자들의 해외 구매를 제한하는 식의 임시조치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시위 참가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치솟는 생활물가는 194개 생필품 값을 동결하는 미봉책을 썼다. 지난해 공식 물가인상률은 10.9%로 발표됐지만 실상은 28%가 넘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분적 미봉책만으로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불안감을 잡기에 역부족이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페르난데스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집권당 ‘승리를 위한 전선’(FPV)이 대패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시각이 많다. 개헌을 통해 3선에 도전하려는 야심도 물 건너갔다. 

의회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 의석 확보가 필요한데 이에 실패해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술 후 이제 건강은 회복한 듯 보이나 대통령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그는 환율 폭락이 한창이었던 1월 말, 위기에 대한 언급도 없이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CELA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쿠바로 떠났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페데리코 핀첼스타인 미국 뉴스쿨 역사학자는 “국민들에게 (위기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페르난데스는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의 뒤를 이어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됐고, 2011년 재선에 성공했다. 

대통령 부부가 10여년 넘게 유지해온 각종 보조금, 사회복지 정책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지지기반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집권기간 내내 페르난데스는 강력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정기적으로 방송에 나와 연설을 하고, 개인 트위터 계정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글을 남겼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쿠바 회의에 가서도 그는 20개가 넘는 트윗을 올렸지만, 일본 국왕에 대한 축하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남 등의 내용만 남겼다. 

시민들은 “집 나간 대통령을 찾는다”며 거리 시위를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예견된 위기를 대비하지 못한 권력 공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42%였던 그의 지지율은 1월 27%로 반토막이 났다. 여론조사는 환율 폭락이 일어나기 전이었지만 대통령 부재로 인한 국정 공백이 계속되면서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 4일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리아 카슬로 부에노스아이레스대 정치학 교수는 “이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위기”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 또 다시 경제적 불안감이 팽배해진 데는 ‘키르치네리즘’으로 불린 대통령 부부의 정책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가정용 전기요금을 동결하고 에너지와 생필품 보조금을 늘리면서 공공지출은 계속 늘었고, 그와 함께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값이 저렴해진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자 원자재 수급을 위한 수입 의존도가 높아져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졌다. 

페르난데스는 지난해 위기설이 나오기 시작하자 트위터에 “익명의 경제단체들과 은행들의 투기적 압력이 아르헨티나 시장의 격변을 불렀다”고 반박했을 뿐 대비책 마련은 뒷전이었다.

국가경제 후퇴해도 본인 재산은 늘어
50일 넘게 입을 열지 않았던 페르난데스는 지난 4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국민들에게 “상품 값 감시를 철저히 해서 물가상승 위협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도 슈퍼와 약국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관리할테니 노조도 여기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페르난데스는 “모든 위기의 첫 희생자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조도 감시망을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물가 상승과 통화 가치 폭락 사태에 대한 설명과 대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어린이와 노인을 대상으로 보조금 혜택을 강화하는 조치를 내놨다. 학용품 구입비 지원을 신학기에 맞춰 지금보다 200% 늘리겠다는 게 골자다.

그는 “내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데, 국가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물가가 오른다고 불평만 하는 기업들을 비판하며 “외화를 밖으로 빼내지만 말고 투자하기 좋은 기회로 삼으라”고 요구했다. 

미국 국제사회연구소(Societ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원 마르세로 가르시아는 “지금이야말로 강한 존재감이 필요한 때이지만 전략적으로 침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라가 지속적인 경제 후퇴를 거듭할 때 개인 재산을 늘리는 데만 신경쓰고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아르헨티나 반부패국에 따르면 페르난데스와 키르치네르의 재산은 권력을 잡은 2003년 이후 계속 늘었다. 

부부는 정치적 기반인 남부 파타고니아에서 큰 부를 모았는데 10년 전 230만 달러 수준이었던 자산 규모는 2010년 1800만 달러로 8배 가까이 커졌다. 2011년 940만 달러까지 떨어졌지만 2012년 1050만 달러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파타고니아의 주택과 아파트 26채의 부동산 가격과 여기에서 나오는 임대수수료, 또 부동산 매매 시세차익 등이 포함된 것이다. 위기 국면에 국민들이 외환을 빼돌린다고 비판한 페르난데스는 부동산 거래 중 절반 이상을 아르헨티나 페소 대신 미 달러로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2009년 편법 재산증식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법부는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2012년 미 하버드대 연설에서 페르난데스는 학생들이 재산 관련 질문을 하자 사법부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불법적인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평생 일했고, 성공한 변호사로서 확실한 경제적 지위를 갖게 됐다. 나는 이제 성공한 대통령이기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