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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우경화, 선거 승리로 ‘날개’

by bomida 2013. 8. 6.

아베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242석 중 과반인 135석 (자민당 115석·공명당 20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59)는 지난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 목숨을 건 듯 했다. 단순히 필승의 의지, 각오 정도가 아니었다. “이번에 이기지 못하면 난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 “부모의 원수 같은 선거”라는 말에선 비장감까지 묻어났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은 이번 선거를 끝으로 2016년 7월(참의원)까지 국정을 흔들 선거가 없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공명당과 연합해 중의원 3분의 2를 확보했다. 참의원까지 장악하면 3년이라는 시간을 손에 쥐게 된다. 장기 집권은 물론 일본 우파의 숙원인 평화헌법 개정까지 노려볼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21일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개표가 끝난 뒤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과 악수하고 있다. | 도쿄/AP연합뉴스

아베에겐 6년 전의 참패를 설욕해야 하는 와신상담의 기회이기도 했다.

아베는 첫 집권한 2006년 당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연소 총리로 일본 국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지지율이 70%에 달했다. 국민을 등에 업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신진 세력인 측근들을 내각에 앉히고 개헌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 측근들이 발목을 잡았다. 끊임없는 말 실수와 돈 문제가 불거졌다. 지지율은 떨어졌고 그는 힘을 잃었다. 결국 이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가 이끈 자민당은 민주당에 대패했다. 2년 뒤 중의원 선거(총선) 패배로 이어졌고, 결국 정권을 내주는 원인이 됐다. 선거 두 달 뒤 그는 지병을 이유로 총리에서 물러났다.

장기집권과 평화헌법 개정 기반 다져
일본은 양원의 과반 이상 득표로 총리 지명을 한다. 의견이 갈리면 중의원 의결에 따르기 때문에 보통 중의원 다수당 총재가 총리에 오른다.

첫 집권에서 수치스러운 퇴장을 한 아베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로 돌아왔다. 3개월 뒤 중의원을 장악하며 정권을 재탈환한 아베는 ‘아베노믹스’로 무장, 만성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일본 경기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참의원 석권까지 노리는 것도 당연했다.

과연 아베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242석 중 과반인 135석(자민당 115석·공명당 20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그는 와신상담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 먹은 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권력과 시간까지 손에 넣었다.

‘독주’가 가능해졌다. 선거 직후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그가 개헌 수순을 언제, 어떻게 밟아나갈 것인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아베는 “개헌은 1~2년 안에는 불가능하고, 6년 정도는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2015년 9월 자민당 총재 재선, 2016년 중·참의원 선거에서 이겨 6년간 총리직을 맡으면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선 아직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아베가 아무리 상·하원을 장악했다고 해도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한국 등 주변 이해 당사국들의 반발도 넘어야 한다.

여기저기 지뢰밭이 많은 만큼 조급히 굴지 않고, 명분을 쌓으며 차근차근 개헌 작업을 해나가겠다는 것이 아베의 복안인 듯하다.

아베 내각이 헌법 개정에 앞서 국민 동의가 없어도 되는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해 전쟁 권리를 복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에 대한 직접 공격이 없어도 미국 등 동맹국 공격 시 반격할 수 있는 이 권리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그동안 “군대 보유·해외 군사활동을 금지한 ‘헌법 9조’에 따라 행사할 수 없다”고 해석해왔다. 그러나 이 헌법 해석을 바꾸면 사실상 교전권을 부정하는 평화헌법 9조가 무력화된다. 따라서 개헌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확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우선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최대 동맹국인 미국이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반대하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의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광복절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관련한 질문에 “아베 총리가 현명한 대응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런 자세를 유지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참배 반대 뜻도 밝혔다.

연립 공명당과 미국의 반대가 걸림돌
뉴욕타임스는 22일 사설을 통해 이번 선거는 경제에 대한 평가라고 선을 그었다. 신문은 “2차대전 역사 수정, 지나친 중국에 대한 수사, 적극적 군사행동을 허용하는 개헌 등 우려되는 수준의 우경화 외교정책을 지지한 것이라고 아베 총리가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려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국가 예산을 군비로 전환하는 등 전쟁 상처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아시아 국가들과 원활한 관계를 갖지 못하면 미국과의 동맹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민당 내부 우익이 과거사 재해석 혹은 ‘눈가림’(whitewashing)을 시도할 수 있다”며 이는 미·일 동맹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일본 지도자가 자주 바뀌면서 매듭짓지 못했던 오키나와 군사기지 재편, 환태평양경제협정(TPP) 협상을 풀 수 있게 됐다”면서도 “미·중·러 주요국이 일본과 이해심을 갖고 대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산적한 현안을 풀려면 국내외 분쟁을 야기할 ‘벌집’을 건드릴 여력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안이다. 지난해 자민당과 공명당, 민주당은 내년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가 넘는 부채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아베는 10월 경기지표를 보고 인상 여부를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소비세 인상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그에 따라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당장 총리의 경제 자문역인 하마다 고이치(濱田宏一) 내각관방참여는 “소비세 증세는 재정 재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부정적이다. 반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소비세 증세는 법률로 (가을에 판단하기로) 돼 있고, 국제적 공약과 같다”며 “지난해 법률 제정 때보다 경제지표가 나빠지지 않았는데 (신중론은) 근거가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섰다. 선거 후 사흘 만에 당내에서 의견 충돌이 시작된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정부가 돈을 풀고 공공사업을 늘려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를 살린다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열광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소비세를 올리지 않으면 이 정책의 성과 부정이고, 올리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일본이 본격 참여를 시작하는 TPP 협상도 첨예한 대립을 부를 수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 등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면 농산물 관세 철폐 등은 양보해야 한다. 농민 반발이 예상되는 문제다. 젊은층의 의료비 자부담 비율이 고령층의 두 배인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압박도 크다.

보험이 적용되는 일반적 진료와 적용되지 않는 최첨단 진료를 병용할 경우 일반적 진료까지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게 돼 있는 이른바 ‘혼합진료 규제’를 풀지 여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혼합진료 규제를 풀면 환자가 첨단 진료를 받을 때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지만, 소득수준에 따른 의료 서비스 차등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의사회 등은 강력 반대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이 아베의 참의원 선거 압승에도 불구하고 ‘파티는 끝났다’고 분석한 것도 아베 앞에 놓여 있는 시험대가 이처럼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 역시 샴페인에 흠뻑 취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선거 승리가 확정된 21일 밤 NHK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정책의 성과를 국민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일단은 우경화라는 이념보다 경제 주력의 의지를 밝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