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부군이 쿠르드자치정부의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 이틀전인 지난 23일(현지시간) 이슬람국가(IS)와 전투를 위해 키르쿠크 하위자로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하위자가 위치한 키르쿠크는 쿠르드가 장악한 유전 지역으로 25일 주민투표에 참여했다. AFP연합뉴스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25일(현지시간)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에 들어갔다. 이라크 정부와 주변국들의 강력 반발에 일대 쿠르드족 지역의 무력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이번 투표가 중동 내 새 화약고를 여는 결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라키뉴스 등은 이날 투표에 아르빌·도후크·술레이마니야 등 KRG 자치지역 3개구와 키르쿠크·니네베·디얄라 지역이 참여한다고 보도했다. 전체 주민 530만명 중 최소 90만명 이상 투표할 것으로 당초 자치정부는 예상했다. 그러나 오후 6시까지였던 투표 마감이 1시간 연장됐으며 잠정 투표율은 78%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현지 언론들이 선거관리위원회를 인용해 보도했다.
3000만명에 이르는 쿠르드족은 이라크뿐 아니라 시리아, 이란, 터키 등지에 흩어져 산다. 100년 넘게 독립을 위해 싸워왔지만 국가를 세우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 쿠르드국가를 위해 치르는 역사적 투표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이미 지역의 새로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터키와 이란은 자국 내 쿠르드의 동요를 염려해 투표에 반대해왔으며 전날부턴 쿠르드자치지구 인근 국경지대에 장갑차와 공수부대가 투입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 이라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쿠르드와 맞댄 국경을 차단하고 자치지구를 오가는 항공편 운항도 전면 중단했다.
쿠르드 문제 전문가인 알리자 마커스는 뉴스위크에 “결과를 떠나 이웃(이란·터키·이라크 정부)의 극렬한 (투표)반대가 이라크 쿠르드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며 “문제는 ‘쿠르드국가’가 경제적인 실현 가능성과 내부적 안정을 위해선 이웃과의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장 군병력 간 대치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이라크 최대 유전지역인 키르쿠크하위자엔 지난 2주간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자치정부군(페슈메르가) 4만5000명이 배치됐다고 중동 전문 매체 뉴아랍이 보도했다. 정부군과 페슈메르가는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지난 수년간 이라크 전역에서 공조해왔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2014년 정부군이 철수한 뒤엔 쿠르드가 사실상 IS 격퇴전을 주도하며 지역의 장악력을 높였다. 정부군이 하위자에 병력을 배치한 것은 IS의 최후의 요새를 치려는 목적도 있지만 키르쿠크에 대한 권한을 재확인하려는 시도도 있는 셈이다.
이란 쿠르드자유당(PAK)의 페슈메르가는 지난 21일 하위자에서 벌어지는 대(對)IS 공격엔 참여하지 않고 수비를 강화하겠다며 이 같은 이라크군의 의도를 견제하기도 했다. PAK 페슈메르가의 한 사령관은 중동 전문 온라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에 “IS뿐 아니라 이라크군,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하시드 알샤비)의 이 같은 위협은 계속돼왔고 이번에도 임박해 있다”며 “키르쿠크가 하시드 알샤비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IS 격퇴전보다 상황이 나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쿠르드의 각 정당과 조직 산하의 페슈메르가는 일대 IS와 전투에서 전세를 역전시킨 일등공신이다. 2014년 이라크에서 IS의 세력이 커지자 이란은 하시드 알샤비의 설립을 도왔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페슈메르가는 하시드 알샤비와 함께 싸웠지만 최근 쿠르드 독립투표를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양측간 충돌도 여러 번 일어났다.
이라크 정부가 전쟁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시점에 쿠르드가 독립투표를 결심한데는 IS를 매개로 한 미국의 지원이 바탕이 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미국도 지역 불안정성을 들어 투표를 반대했다.
이런 국면에 쿠르드를 지지하는 유일한 중동 세력이 이스라엘이라는 점도 이번 투표를 둘러싼 불안감을 키운다. 중동에서 유대인 국가 설립을 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들어 쿠르드 독립을 지지했고, 쿠르드 역시 ‘유대인 박해’를 자신들의 현실과 비교하며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아들였다. 미국 워싱턴 중동연구소(MEI)의 아마드 마지드야르는 “쿠르드가 독립에 성공한다면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점은 이란 입장에선 가장 큰 우려”라며 “이는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와 쿠르드군(페슈메르가) 사이에 일촉즉발의 상황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쿠르드자치정부가 표결 뒤 후폭풍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는 시각도 있다. 당초 집권 쿠르드민주당의 이라크 북부 자치지역에 대한 권력 강화 차원에서 시작한 투표였지만 주변국 등의 반발이 커지면서 향후 중동 정세는 마수드 바르자니 자치정부 대통령의 후속 움직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자니는 지난 18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주민투표 가결 시 이라크 정부가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국경을 넘을 준비가 돼 있다”며 “키르쿠크를 무력으로 바꾸고 싶다면 모든 쿠르드와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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