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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봉쇄는 기회’ 카타르의 탈걸프 신호탄···더 개방하고 더 개혁한다

by bomida 2017. 8. 24.

카타르 도하의 스카이라인. AP연합뉴스



 카타르가 강도 높은 법안을 제정해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로 했다. 비국적자의 거주권을 확대하고, 이란과 관계 복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교 사태가 석달째 이어지면서 깊어진 걸프의 균열이 카타르에겐 ‘탈(脫) 걸프’를 위한 더 많은 실험의 기회가 됐다. 


 카타르 정부가 하루 근로시간을 최대 10시간으로 제한하고 주 1회, 연 3주간 의무휴가를 보장하는 가사노동자 보호법을 처음으로 제정해 23일(현지시간) 타밈 국왕의 승인을 받았다고 QNA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 법은 각 가정에 고용돼 일하는 가사도우미와 요리사, 베이비시터뿐 아니라 운전사와 청소부, 정원사 등에게도 적용된다. 특히 법안은 매월 말 임금을 정산하고, 고용계약 종료시 연간 최소 3주치 임금 수준의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18세 미만, 60세 이상의 외국인은 고용할 수 없다. 위반 시 한국 돈으로 150만~3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인구 190만명인 카타르는 국적자 25만명을 뺀 나머지가 모두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이다. 여성 가사도우미만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용주들의 육체적·성적 학대와 거주·이동 제한이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인권침해를 방치한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수백명이 주카타르 필리핀 대사관으로 피신하고, 인도네시아는 2015년 카타르 등 21개 중동 국가로 가사노동자 파견을 금지하기도 했다. 여권을 빼앗긴 채 임금도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하는 사례도 수차례 보고되면서 국제노동기구가 조사에도 들어갔다. 유엔은 올 11월까지 시정되지 않을 경우 제재하겠다고 경고까지 했다.


 이런 카타르가 중동 국가에서 보기 드문 노동권 보호법을 만든 것은 제재를 피하는 것을 넘어, 국내 정책에 세계적 기준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지난 3일 카타르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대폭 개방하는 거주법 개정도 단행했다. 아버지가 카타르인이어야 시민권을 주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 중에선 처음으로 시도된 정책이다. 이에 따라 어머니가 카타르인이어도 아버지가 외국인이면 시민권을 가질 수 없었던 자녀들과 전문기술을 가진 외국인도 영주권을 갖게 됐다. 영주권자는 시민권자들과 같은 무상 의료·교육·복지 혜택을 받는다. 지난 9일엔 80개국 시민에게 입국비자를 면제하는 개방안도 발표했다.


 특히 봉쇄에 따라 생필품 수입망 확보와 대안 항로·뱃길을 찾느라 어수선한 때 이 같은 국내정책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부국인 카타르는 외국 대학과 연구소, 각종 세계대회를 유치하며 중동 밖 나라와의 교류를 넓히는 방식으로 다른 GCC 국가들과 차별화된 정책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사우디의 압력, 주변 걸프국의 보수적 움직임에 내부 변화를 실험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봉쇄로 관계가 단절되면서 아예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내에서 독자적인 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


 거주뿐 아니라 외국인의 투자, 소유에 대한 규정도 변경해 주변국보다 더 유리하게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 담배와 탄산음료에 ‘죄악세(sin tax)’를 부과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달리 카타르는 7월부터 부과하기로 한 주류 죄악세를 보류했다. GCC 국가들은 저유가에 따른 재정적자와 정부보조금 재원 확보 차원에서 증세에 돌입했지만, 카타르에겐 투자자 등 외국인 거주자를 붙잡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GCC가 2018년부터 일제히 도입하려고 했던 부가가치세 정책도 불투명해졌다.


 카타르는 지난해 1월 철수시켰던 주이란 대사도 다시 보내기로 하는 등 이란과의 외교 정상화 수순도 밟고 있다. 당시 사우디가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면서 걸프국들이 이란과 외교단절에 들어가자 카타르 역시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그러나 봉쇄 조치로 카타르에 먹거리 등 수입이 차단되자 이란이 가장 먼저 물자를 공수해 지원에 나섰다. 봉쇄에 대비한 식량안보를 위해 16억 리알(4800억원)을 들여 최대 상업항구인 하마드항구에 정미소와 설탕 정제소, 식용류 제조공장 등이 들어선 53만㎡ 규모의 식품가공·저장시설 단지도 2년 내에 완공할 예정이다.


 조셀린 미첼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하캠퍼스 정치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카타르의 새로운 국내 정책은 자국 뿐 아니라 GCC 개조를 목표로 한다. 단교 사태를 기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더 큰 변화의 예고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