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전날 치러진 케냐 대선에서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이 세번째 맞붙은 야권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중간 개표 결과가 나오자, 분노한 오딩가 지지자들이 수도 나이로비 빈민가 마다레 지역에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이로비|AFP연합뉴스
개표 막바지에 이른 케냐 대선이 대규모 유혈충돌을 불렀던 10년 전 선거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현지 데일리네이션 등은 9일(현지시간) 경찰과 시위대 충돌이 벌어진 서부 소도시 키시이와 수도 나이로비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시민 3명이 숨지는 등 지금까지 최소 5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나이로비 경찰청은 “이들이 마체테(날이 넓은 칼)로 경찰을 공격해 발포했다”고 밝혔다.
시위는 야당연합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 전 총리(72)가 8일 실시한 대선 개표 과정에서 득표수가 조작됐다고 주장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날 개표가 97% 진행된 가운데,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55)은 805만표(53.85%)를 얻어 665만표(44.55%)인 오딩가를 앞섰다. 이에 오딩가는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장비가 해킹당해 숫자가 달라졌다며 “케냐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에즈라 칠로바 선관위원장은 “선거관리 시스템은 철저하다”고 강조했지만 오딩가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나이로비 빈민가인 마타레 지역에선 루오족 청년이 키쿠유족 청년을 공격해 2007년 대선 당시 종족 간 충돌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루오족은 오딩가를 배출한 종족으로 케냐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다. 이들은 오딩가가 케냐타와 세번째 맞붙은 이번 대선이 키쿠유족의 케냐타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될 마지막 기회라며 총력전을 펴왔다. 키쿠유족은 케냐의 최대 종족으로 전체 인구의 약 17%를 차지한다. 알자지라는 오딩가의 정치적 고향이자 주민들이 그를 ‘바바’(아버지)라고 부르는 키수무 지역에선 “라일라가 아니면 평화도 없다”고 외치고 있다며 개표 상황에 분노한 마을의 분위기를 전했다.
두 후보는 ‘아버지 시대’부터 오랜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다. 케냐에선 대선뿐 아니라 1995년·1997년·2005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부족 간 유혈충돌이 관례처럼 벌어졌다. 2007년 대선에서 패한 오딩가가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자 유혈 사태가 발생해 두 달간 1100명 이상이 숨지고 60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오르며 심각한 혼란을 빚었다.
3번의 패배를 겪은 오딩가 지지자들은 기대가 큰 만큼 선거 결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성도 크다. 케냐 부통령이었던 고 키자나 오말와는 라일라 오딩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라일라마니아(Railamania)’로 고통받고 ‘라일라포비아(Railaphobia·혐오자)’에게 공격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 참관인을 맡은 존 케리 전 미 국무장관은 “전자투표 시스템에 이상이 없다”며 충돌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아프리카연합(AU)과 유럽연합(EU) 참관인들도 “합법적 수단으로 논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공동성명을 통해 밝혔으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케냐 선거법은 대선 후 1주일 이내 최종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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