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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람들

[월드피플] 미국 ‘동성결혼 합헌’ 이끈 이디스 윈저 별세

by bomida 2017. 9. 13.

난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동성애자 축제에 참석한 이디스 윈저가 손을 흔들고 있다. 미국의 동성 결혼 합법화를 이끈 그는 12일(현지시간)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전역에서 동성 간 결혼이 가능해지는 데 단초를 만들었던 이디스 윈저가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 


   윈저는 2013년 ‘정부 대 윈저’ 소송에서 이성 간 결혼만 인정한 연방결혼보호법(DOMA)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이 판결을 바탕으로 미 대법원이 2015년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은 동성결혼을 허용한 21번째 국가가 됐다.


 뉴욕타임스 등은 이날 윈저가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나 가족들은 그의 사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남성과 결혼에서 실패한 윈저는 고향인 필라델피아를 떠나 뉴욕으로 왔고, 1965년 한 식당에서 시어 스파이어를 만났다. 윈저는 당시 “우리는 춤을 췄고, 한 번에 알아봤다”고 회고한 바 있다. 2년 뒤 스파이어는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들고 그에게 청혼했다. 당시엔 동성 간 사랑을 언급조차 할 수 없었기에 반지 대신 브로치를 택한 것이다. 프로그래머였던 윈저와 심리학자였던 스파이어는 이후 40년 넘게 부족함 없이, 다른 커플처럼 함께 지냈다. 그러다 스파이어가 병을 얻은 후 윈저는 간호에만 힘썼지만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다. 스파이어는 윈저에게 다시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2007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캐나다 토론토에서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2년 뒤 스파이어는 세상을 떠났다.


 여든을 넘은 나이에 윈저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로 평등을 위한 싸움에 뛰어든 것은 스파이어를 잃은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온 때였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36만3053달러, 약 4억원의 세금통지서가 발단이 됐다. 스파이어의 유산을 상속받은 그에게 막대한 상속세가 부과된 것이다. 배우자의 유산은 상속세를 내지 않지만 이성만 부부로 인정했던 법은 윈저와 스파이어를 친구로 판단했고 윈저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2010년 그는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된 연방결혼법에 대해 위헌 소송을 냈다. 뉴욕법원에 이어 2013년 대법원도 결국 결혼이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정의한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정의가 동성 부부에 대해서는 세금공제, 교육과 건강보험 등 1100가지가 넘는 연방정부의 법률·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면서 수정헌법 5조의 보호를 받는 국민의 동등한 자유를 박탈했다는 판단이었다. 이 판례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 중 역사상 동성결혼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판결로 평가받는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대법원 판결 직후 윈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하기도 했다.


 윈저는 동성결혼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 “커밍아웃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동성애자)가 뿔 달린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 이웃이란 점을 알게 됐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인간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윈저와 같은 이들이 일어서 준 덕분에 내(오바마) 행정부가 결혼법을 바꿀 수 있었다”며 “2013년 대법원 판결이 나왔던 날은 미국을 위한 위대한 날이었으며 인간에 대한 예의와 평등, 자유와 정의의 승리였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