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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걸프의 송곳’ 카타르, 주변 아랍국들과 ‘외로운 싸움’ 벌이는 이유는

by bomida 2017. 6. 8.

걸프에 균열이 생겼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7개국이 단교를 선언한 ‘걸프의 송곳’ 카타르는 갈라진 틈을 따라 고립된 형국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테러조직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내에서 보기 드문 카타르의 개혁 행보, 이란과의 밀착이 배경에 깔려 있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집트, 바레인, 예멘, 몰디브와 사실상 두 개로 갈라진 리비아의 ‘동부 정부’는 5일(현지시간) 카타르 국적 항공과 선박에 대해 자국 영공·영해 통과를 불허했다. 카타르 거주 자국민에겐 철수를 권고했고, 여행이나 경유도 금지했다.


불안한 카타르인들, 사재기

 

이란을 마주 보고 아라비아반도에서 걸프 쪽으로 송곳처럼 튀어나온 반도국가 카타르는 사우디와 접한 남쪽 국경을 빼면 3면이 모두 바다다. 천연가스 부국이지만 제조업과 농업, 축산업 기반은 약해 수입 의존도가 높다. 식료품의 30% 이상이 사우디를 통해 들어온다. 이번 조치로 걸프에서 수입하는 물자의 82%가 막힐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시민들이 먹거리 사재기에 나서 상점들 물건이 동났다고 도하뉴스 등은 보도했다.

 

사우디는 카타르의 상징 격인 알자지라방송의 리야드 주재 사무소를 폐쇄하고 취재 허가도 취소했다. 알자지라가 테러 음모를 부추기고 예멘의 시아파 반군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사우디 등은 카타르가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지원함으로써 자기네들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주변 걸프국들과 카타르의 대립은 오래됐다. 1996년 왕실 지원으로 알자지라가 출범하면서부터 갈등이 불거져 2014년엔 사우디가 주축이 된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이 카타르 주재 대사들을 소환했다. 오만과 쿠웨이트가 중재에 나서 관계를 회복하는 데 9개월이 걸렸다. 


주변국들에 ‘찍힌’ 알자지라

 

사우디 등은 알자지라나 온라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처럼 카타르 정부가 지원하는 매체들이 걸프 내부의 문제점들을 보도하는 것을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한다. 그 이면에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해온 카타르 왕실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다.

 

알자지라를 만든 전임 국왕 셰이크 하마드는 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수도 도하에 서방 대학과 연구소들을 들여놨다. 아시안게임, 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2020년 월드컵까지 유치했다. 무엇보다 사우디를 거스른 것은 하마드가 2013년 아들 타밈에게 양위한 것이다. 카타르 역시 알타니 가문이 지배하는 군주국이지만 왕실은 승계 문제로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사우디와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줬다. 하마드는 1980년생 타밈에게 권좌를 넘기면서 “젊은 리더십”을 강조했다. 반면 사우디의 노쇠한 왕실은 자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군부가 사실상 쿠데타로 재집권했다. 섬나라 바레인의 수니파 왕실은 시아파 국민들이 ‘아랍의 봄’을 일으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도양의 몰디브는 사우디의 재정 지원을 의식해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문제는 이란?

 

카타르는 이란은 물론이고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도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다. 군사력이 약하고 규모가 작은 나라로서 ‘외교’에 생존을 건 것이다. 그러나 주변국들에 이런 풀뿌리 저항조직들은 용납할 수 없는 세력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카타르가 지난 4월 이라크에서 붙잡힌 인질들을 빼내오기 위해 무장조직에 10억달러를 줬다고 6일 보도했다. 걸프국들은 카타르가 알카에다 계열 조직에 몸값을 내줬다고 비판하지만 “결국 돈줄이 이란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 걸프 왕실들의 가장 큰 우려”라고 신문은 전했다. 최근에는 타밈 국왕이 이란에 대한 걸프의 적대정책을 비판했다는 가짜뉴스까지 돌았다.

 

최근 아랍 언론들은 카타르 외교장관이 이란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에 돈을 대줬고, 이란의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과 계속 비밀리에 만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솔레이마니는 혁명수비대 정예조직인 ‘알쿠드스’의 사령관으로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의 비밀 군사작전을 맡고 있다.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렸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이란은 걸프 왕국들에 최대 불안 요인이다. 그런 이란과 카타르가 군사 분야에서까지 관계를 맺는다면 걸프국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하레츠는 “사우디 등은 카타르가 알자지라의 문을 닫고 이란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혀야만 관계를 풀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과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전을 공유하고 있는 카타르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쿠웨이트와 터키가 중재 의사를 밝혔지만 갈등의 골은 너무 깊다. 미국 무기 구매를 지렛대 삼아 사우디가 미국에 카타르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이번 단교가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한 중동의 외교적 결속에 틈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뜻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