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불신임안에 대한 국회 비밀투표가 진행된 8일(현지시간) 케이프타운 거리에서 시민들이 “주마를 해고하라”는 문구를 들고 있다. 케이프타운|EPA연합뉴스
‘불사조’ 주마가 또 살아남았다. 간선제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집권당 아프리카국민회의(ANC)가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넬슨 만델라의 민주화운동 동지였던 주마는 이제 부패와 무능,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스캔들의 주역이 됐다. 주마와 ANC가 언제까지 넬슨 만델라의 명성에 기대 권력을 연장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남아공 의회에서 8일(현지시간) 진행된 제이컵 주마 대통령(75)에 대한 불신임 안건이 부결됐다고 현지 일간 메일앤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투표는 ANC 의원들의 양심적 의견표명을 위해 야권이 제안한 비밀투표로 이뤄졌다. 퇴진을 위해선 총 400명의 의원 중 201명의 불신임안 찬성표가 필요했지만, 177명만 찬성표를 던져 주마는 자리를 보전하게 됐다. 그러나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역사적’ 첫 비밀투표에서 집권당 일부 의원들마저 퇴진을 요구하면서 향후 지금과 같은 정치적 입지가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주마 대통령은 빈곤층 출신으로 열다섯에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저항운동에 뛰어들어 10년형을 받은 ‘투사’였으나 반복되는 부패와 추문으로 2009년 취임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무기 거래 대가로 뇌물을 챙겼다거나, 친구의 딸을 성폭행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남아공의 인도계 재벌가문인 굽타와 유착됐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주마(Zuma)’와 ‘굽타(Guptas)’를 합친 ‘줍타스’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불신임 투표가 치러진 8일(현지시간) 케이프타운 거리에서 대통령 지지자들이 남아공 국기의 색깔과 똑같은 옷을 입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사저공사에 세금을 유용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국고에 반환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에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의 동지이며 ANC 대표적 활동가인 아흐메드 카스라다는 지난해 주마가 퇴진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공개편지를 전달했다. 올 3월엔 신망받던 프라빈 고던 재무장관을 한밤중에 전격 해임하는 대규모 개각을 단행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고던 장관은 굽타의 영향력을 줄이고 국영기업을 개혁하는 정책을 추진하다 경질됐다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며 남아공의 새 역사를 쓴 만델라와 그가 이끌었던 ANC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비판도 그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재임기간 8번의 불신임 투표에서 모두 살아남았던 것은 지금도 총 400석의 의석 중 249석을 차지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ANC의 보호 덕이었다. 간선제인 남아공에선 다수당만 ‘침묵’하면 주마는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자신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의회에서 부결되자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던 도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안도하고 있다. 케이프타운|로이터연합뉴스
ANC 내부 분위기는 최근 몇 년 새 분열되기 시작했다. 흑인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만델라 이후 지금까지 집권당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마의 끊임없는 부정과 무능력에 대한 비판,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률 문제 등이 심화되면서 인기가 떨어지는 상황 탓이다. 이에 따라 이날 투표에서 일부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져 불신임안이 통과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끌어내기 위한 ‘반란’에 필요한 이탈자가 50명을 넘지 않아 주마는 또 한 번 기회를 잡게 됐다. 그의 임기는 2019년까지이며 연말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의원들이 투표를 진행한 국회 밖 케이프타운 거리에선 주마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주마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맞섰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남아공 국기 색깔인 녹색과 노란색, 검정색이 섞인 옷을 입었고, “주마를 해고하라”며 불신임안 가결을 요구한 이들은 파란색과 빨간색 옷을 입어 확연한 대비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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