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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협상의 시대’에서 시작된 로하니 2기, ‘이란의 경제 혁명’ 이뤄낼까

by bomida 2017. 8. 7.

재선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테헤란 | EPA연합뉴스



 지난 5월 대선에서 ‘더 열린 이란’에 대한 갈망은 다시 한번 하산 로하니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4년 뒤 지금보다 개방된 사회에서 이란인들이 기대하는 것은 결국 ‘먹고살 만한’ 이란이다. 1기에 사활을 걸었던 핵합의에 이어 5일(현지시간) 취임으로 시작된 로하니 2기의 성패는 경제에 달린 셈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3일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대통령 취임을 승인한 자리에서 “2기 정부는 외부세계와 협력을 늘려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고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외국 투자를 유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가 “이란의 경제 혁명을 목표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초부터 국제사회의 제재가 완화되면서 석유 수출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등 이란 경기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석유는 지난달 아시아·유럽 수출량이 하루 220만배럴로 꾸준히 증가 추세이고, 일일 생산량은 제재 전 수준인 400만배럴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파키스탄과 새로 교역을 시작했고 인도·아프가니스탄과는 이란 동남부 차바하 항구를 수송 중심지로 조성하기 위한 3자 협상도 맺었다. 


랑스·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과의 교역량도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 토탈이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을 개발하기로 했고, 독일 폭스바겐과 프랑스 푸조 등 자동차 업체들이 이란 시장에 진출했다. 이란은 에어버스로부터 항공기 수백대를 사들이기로 했다. 이란의 대 EU 수출은 지난해 344.8% (EU집행위원회) 급증했다. 올 들어 거래규모는 더 커져 1분기 이란 수출은 27억700만 유로(유럽연합통계청)로 지난해 1분기 대비 6배 증가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로하니의 앞길에 변수다. 미국은 지난 2일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법안을 발효했고, 지난달엔 혁명수비대 인사 등 개인·단체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에 대해 이란 정부는 2015년 채택한 “핵합의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란을 고립시킨 장벽을 허물고 무역을 정상화하는 것이 합의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합의를 ‘최악의 협상’이라고 여기는 트럼프는 핵합의 유지 대신 추가 제재를 택했고, 석 달 후 의회 보고에서도 “이란이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할지는 불투명하다.


 로하니는 5일 취임식 연설에서 “미국이 핵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이란이 합의를 먼저 어길 일은 없지만 미국이 지키지 않으면 침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폭탄의 어머니’ 시대가 아니라 ‘협상의 어머니’ 시대라는 걸 (미국에)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재선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오른쪽)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대통령 취임 승인을 받은 3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


 미국의 추가 제재는 경제적 손해보다 정치적 파급효과가 더 크다. 핵합의를 “서방에 굴복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란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로하니의 입지는 녹록지 않다. 핵합의에 참여했던 최대 조력자인 친남동생이 금융범죄 혐의로 체포됐고, 보수진영 내 영향력이 큰 혁명수비대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로하니의 외교정책을 비난한 바 있다. 영국합동국방안보연구소의 아니시 바시리 연구원은 “정치적 환경은 매우 어렵다”며 “로하니는 도발을 피하고 미국과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극각적인 보복 조치 대신 핵협상 대표이기도 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차관이 “미국의 조치에 휘둘리지 않는 현명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전문가인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 분석가는 EU의 태도가 관건이라고 봤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이 이란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유럽이 핵합의를 훼손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이란이 합의안을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얼마나 변호해 줄지에 달렸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로하니는 집권 이후 45%에 이르던 인플레이션을 10% 밑으로 낮췄다. 그러나 30세 이하 젊은이들은 3명 중 1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외국투자가 내수로 선순환되려면 경제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유로모니터는 최근 이란 경제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낮은 생산성, 국가의 과도한 개입, 불량 대출이 이란 경제의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전 대통령 시절 이란 은행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한 위험성이 큰 대출을 늘렸으나 경기가 악화되면서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준국영 기업에 대한 개혁 작업도 쉽지만은 않다. 통신업체 ‘이란셀’, 항공사 ‘이란에어’ 등은 외견상 민간기업이지만 주식의 일부 혹은 전부를 군대·종교재단·연기금 등이 소유하고 있다. 이런 반관반민 기업은 경제 전반에 걸쳐 1만9000개나 된다. 로하니 정부는 금융을 개혁하고 외국 기업과의 거래 관행을 바꾸려 하고 있지만 ‘사주’들은 지분을 무기로 거부하고 있다. 


알모니터는 “성직자 재단이 실소유주인 기업은 공적임무 수행을 이유로 세금납부를 거부하기도 한다”며 “이란 경제의 구조적 모호성을 만든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란 일간 파이낸셜트리뷴은 “정부의 민영화 정책과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가 맞물려 인프라와 자동차, 운송 등 비석유분야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며 “금융 부문을 개선하고 민간 분야의 사업환경을 뜯어고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