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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부활하다

by bomida 2013. 7. 2.

6월 17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중심 탁심광장에 한 남성이 서 있다. 메고 있던 가방은 바닥에 놓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우두커니 있다. 행위예술가 에르덤 귄뒤즈(34)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모였던 시민들이 경찰의 최루가스와 물대포 공세로 주말 새 모두 쫓겨난 이곳에 서서 새로운 한 주를 맞았다.


귄뒤즈는 8시간 내내 광장 맞은편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문화관을 말없이 멍하니 바라봤다. 건물 외벽에 내걸린 두 장의 터키 국기 사이로 케말의 대형 초상이 보인다. 그는 케말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6월 6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 모인 시민들이 아타튀르크의 사진 주변에 모여 있다. 앙카라/AP연합뉴스


반정부 시위 정체성 상징으로 등장
케말은 종교와 분리된 세속적 현대 터키공화국을 건국한 아타튀르크, 즉 터키의 ‘국부’다. 아타튀르크가 이번 터키 시위에 등장한 것은 시위가 시작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5월 탁심광장에서 공원 일대 재개발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연좌시위를 열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이 광장과 광장 인근 게지공원을 부수고 현대식 건물을 짓겠다고 했는데, 이들은 도시에서 유일한 녹지공간을 뺏길 수 없다며 항의한 것이다.

이는 한 달 가까이 터키 전역을 반정부 시위로 들끓게 한 도화선이 됐다. 정부와 시위대 사이 논쟁의 중심에도 아타튀르크가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현재 공원 자리에 오스만제국 시절의 군대 막사를 들여놓으려 했다. 이 막사는 1909년 오스만의 술탄(지배자) 압둘 하미드 2세가 자유주의 개혁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이 개혁은 훗날 아타튀르크의 현대 터키공화국으로 이어진 움직임이다.

시위대는 아타튀르크 동상(탁심광장)·문화관으로 둘러싸여 아타튀르크 정신이 ‘충만’한 인근 게지공원에 텐트를 치고 ‘장기전’에 들어갔다. 젊은 학생들이 중심인 ‘텐트 촌’을 보면 졸고 있는 사람 위에도, 나뭇가지 사이에도 아타튀르크의 사진이 걸렸다. 노점상은 그의 작은 동상을 만들어 판다. 건축학을 전공하는 야다 아가오글루(23)는 “아타튀르크는 터키가 젊음과 어울린다고 했다. 그게 우리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무라트 바키도벤(24)은 “에르도안(총리)은 우리가 그를 잊길 원하지만 우리는 그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미 75년 전에 죽은 아타튀르크는 이곳에서 다시 영웅이 됐다. 이는 터키에서 전례가 없는 거대 소요가 일어난 사건의 핵심을 설명한다. 터키의 ‘정체성’이다. 아타튀르크는 이슬람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고 진보적이고 세속적인 유럽 국가를 꿈꿨다. 그래서 술탄을 폐지하고 히잡 등 이슬람 복장도 금지했다. 남녀평등을 강조하며 여성도 교육받고 투표할 수 있게 했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종교·국가 위에 있는 공화국이다.

이슬람 가치 강요하는 현 정부에 반발
지식인과 중산층, 젊은이들이 중심이 된 시위는 에르도안 총리가 과거 이슬람 가치를 다시 강요하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다. 터키 정부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학교·사원 근처에 술집이 생기는 것을 막는 법안을 만들었다. 또 2년 전 포르노 웹사이트 접근을 차단했고, 동영상사이트 유튜브 접속을 일시적으로 끊었던 적도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동성애’에 대한 권리도 반대하고 있다.

6월 6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한 시민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 | AP연합뉴스

현대 터키를 세속적 국가로 인식하는 이들에게 이 같은 조치는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고 아타튀르크 자체도 폄하하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또 개인의 자유에 대한 위협도 느낀다. 시위대들은 독일의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모습을 한 에르도안 총리 그림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수년간 에르도안과 보수적 이슬람 진영은 아타튀르크에 대해 냉담했다. 5월 19일 ‘아타튀르크의 날’에는 전국 경기장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이를 기념하지만 지난해 에르도안은 불참했다. 그는 “꽉 끼는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소녀들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또 6월 초 그는 자신의 ‘반음주법’을 옹호하며 아타튀르크와 당시 이스멧 이뇨뉴 총리를 ‘주정뱅이 커플’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스탄불 바흐체세히르대 센기즈 아크타르 정치학 교수는 “‘재이슬람화’ 정책을 만든 에르도안은 독실한 무슬림”이라며 “그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다수인 터키에서 자유와 개인을 중요시하는 케말의 정신은 자신들의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에르도안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막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적으로 엄격한 생활양식을 따르고 이슬람법으로 사회를 지배한 오스만 제국에 대한 향수인 셈이다. 그는 “시위를 한다”고 모여 밤새 공원에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맥주를 마시고 축제를 벌이는 터키의 첫 ‘히피’ 집단을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에르도안은 시위대에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그들을 ‘약탈자’로 규정하고 경찰을 투입, 마구잡이로 강제 해산시켰다. 수도 앙카라와 서부 이즈미르 등 70여개 도시로 시위가 확산되면서 그동안 3명이 죽고 4000명이 다쳤다. 체포된 사람도 900명이 넘는다. 에르도안은 “시위 진압은 총리로서 내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타튀르크의 이념에는 동의할 수 없어도 최근 높아진 인기는 인정하는 것일까. 귄뒤즈가 쉼없이 쳐다보던 문화관의 아타튀르크 초상은 지난 12일 경찰이 건물을 뒤덮고 있던 시위대의 구호 현수막들을 전부 떼어내고 붙인 것이다. 이런 정부 움직임을 보고 국부 이미지를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도 있다. 국제관계를 전공하는 대학생 아이수 세틴(21)은 “이전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아타튀르크의 이미지를 활용한 적은 없었다”며 “정부는 (구호를 벗겨내며) 게지공원의 사람들을 공공물을 파괴하는 ‘반달족’으로 보이게 하려고 한다. 여기 사람들을 묶는 것은 케말 자체에 대한 애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의미다.

건물에 걸린 초상화 덕분에 시위대 다시 모여
경찰이 사람들을 공원에서 몰아낸 뒤 구심점을 잃었던 시위는 또 한 번 아타튀르크 초상 덕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부가 물대포 등으로 시위대를 급습하면서 독창적이고 해학적인 접근으로 저항하던 이들은 이 같은 초심을 잃고 바리케이드를 친 뒤 당국과 충돌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태였다. 또 그들의 축제장이었던 탁심광장과 게지공원에서 쫓겨나 이번 움직임이 이대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아타튀르크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는 귄뒤즈의 엉뚱한 침묵시위는 ‘히피’들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가 나타난 첫 날 하나 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300명이 넘었다. 이들은 모두 아타튀르크의 초상에 시선을 고정하고 서 있다. 가끔 손을 잡기도 하고 책을 보며 서 있는 이들도 있다. ‘두란 아담’(서 있는 남자)은 한 명이 아니다.

아크타르 교수는 “정치적으로 이슬람은 타인을 가르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에르도안은 확고한 이슬람적 소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민사회를 통제할 수 없다. 시민들은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침묵 시위는 에르도안이 직면해야 하는 ‘아타튀르크식’ 평화적 저항을 보여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