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시&이슈

[김보미의 도시&이슈] G20 격렬 시위 일어난 함부르크는 '저항의 도시'

by bomida 2017. 7. 9.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이틀 앞둔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도심에서 ‘좀비’처럼 회색 옷을 입고 얼굴에 회칠을 한 이들이 경찰차를 둘러싸고 회의에 반대하는 행위예술을 공연하고 있다.함부르크|EPA연합뉴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지난 7~8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을 맞이했던 거리시위대의 깃발 문구만큼이나 이번 회의를 반대하는 시위는 격렬했다. 적게는 5만명, 많게는 10만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추정되며 경찰에 체포되거나 구금됐던 사람만 300명이 넘는다. 7일 개막 전후 곳곳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에 맞서 경찰 2만명이 배치됐고, 특수부대와 물대포도 투입됐다. 그러나 진압 도중 경찰만 200명 넘게 다쳤고 부상당한 시위대의 규모는 파악도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예정됐던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시위로 동선 확보가 어려워 한 차례 지연됐다가 결국 무산됐다. 시위가 거칠었던 7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제시간에 회의장에 도착하지 못해 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독일 일간 빌트는 경찰의 통제를 벗어난 거리의 모습을 전하며 “국가의 실패”라며 “48시간 동안 함부르크에는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안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G20 회의에는 세계 강대국들의 모임을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반세계화·녹색주의 진영의 시위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앤 베스트(64)는 영국 가디언에 “자산이 전 세계에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 것과 침략 협약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반대하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와 같은 시위대들은 2009년 영국 런던, 201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도 거리를 점령했다. 무정부주의자들로 구성된 과격시위 단체들도 이번 회의와 맞물려 함부르크로 건너와 참여했다. 하지만 회의 전부터 시작된 경찰차에 대한 공격, 크고 작은 시위를 비롯해 회의 이틀간 차량 방화, 상점 약탈까지 벌어진 이번 함부르크 시위의 격렬함은 이 도시의 태생적 배경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최대 항구가 있고, 도심에 엘베강이 흐르는 함부르크는 도시를 오가는 물류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를 받아들인 곳이다. 빵 사이에 다진 고기를 넣는 햄버거의 발상지로 꼽히기도 하며, 비틀스가 무명 밴드로 오랜 연주생활을 한 곳이 함부르크였다. ‘녹색도시’를 선언하며 엘베강 하구에 친환경 구역으로 만든 하펜시티에는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본사가 나란히 있다.


AFP통신은 “해양의 역사를 가진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반체제 문화의 전통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이데이(노동자의날)가 있는 5월이면 유럽 지역의 노동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 매년 극렬한 시위를 여는 함부르크는 저항문화, 대안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극장 건물로  지어진 독일 함부르크의 ‘붉은 플로라’(Rote Flora)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1988년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의견을 무시한 철거 계획이 진행되자 이듬해 불법점유를 통한 항의 시위가 시작되면서 지역 좌파 운동의 핵심지가 됐다. 지난 8일 폐막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앞서 2007년 G8 정상회의 반대시위의 거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함부르크|EPA연합뉴스



특히 이번 회의 기간에 시위대가 가장 많이 몰린 슈테른샨체 지역은 정부와 기업이 일방적으로 지역의 공간 사용방식을 결정하는 데 맞선 점유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진 곳이다. 이 지역에 있는 ‘붉은 플로라(Rote Flora)’는 2007년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를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한 거점이기도 했다. ‘붉은 플로라’는 1888년 지어진 극장 건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종전 후 1949년 수리를 거쳐 다시 영화관으로 사용됐으나 1964년 백화점이 들어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1987년 백화점이 문을 닫자 뮤지컬 제작자가 이를 인수해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재건축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은 역사적인 공간을 없앤다는 데 반발했다. 여론을 무시한 철거로 1988년 반대시위가 시작됐고 이는 무장한 시위대의 과격한 공격으로 발전됐다. 결국 이들은 1989년 말 강제로 건물을 점유했다. 이때부터 이 건물은 좌파운동의 핵심 공간이 됐다. 시 정부가 이후 사업가에게 건물 소유권을 넘기기도 했으나 불법점유로 인해 사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결국 25년에 걸친 점유 투쟁은 2013년 알토나 자치구가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계획을 세우면서 끝이 났다.


이 도시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강에피어텔(Gangeviertel)에서도 예술가들이 재개발을 막기 위한 점유운동을 벌이면서 1953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12채를 보존하겠다는 지방정부의 약속을 받아냈다.



슈피겔은 “독일 좌파의 자치운동 중심지인 이 도시의 급진주의자들은 효율적이고 정교하게 반대운동을 조직할 줄 안다. 이런 상황은 예고돼 있었다”며 “함부르크는 G20 회의 장소가 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