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마라의 주유소 피아트탈리에로 빌딩. 항공기를 본떠 지지대 없이 양쪽 각 15m 길이 날개 모양
콘크리트 지붕을 얹었다. 위키피디아
아르데코의 색채가 물씬한 영화관. 절충주의의 영향을 받은 오페라하우스.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신고전주의 건축을 따른 대통령궁.
홍해 연안 동아프리카 작은 나라, 에리트레아의 수도 아스마라는 1930년대 건축가들이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설계를 현실로 구현한 도시다. 해발 2300m 고지대, 서울 서초구와 비슷한 크기의 땅엔 이탈리아식 건물 400여채가 가득차 있다. 유네스코가 지난 7일(현지시간) 현대건축의 도시, 아스마라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도시 전체가, 그것도 현대적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처음이다.
아프리카 소국의 수도가 ‘작은 로마’로 불리며 20세기 초 유럽에서 꽃피웠던 모던 건축의 상징적 도시가 된 데는 오랜 식민의 역사가 맞물려 있다.
아스마라는 1889년 이탈리아가 에리트레아를 점령한 뒤 1897년 수도로 정하고 1911년 항구도시 마사와와 철도로 연결하면서 본격적인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야자수와 사바카 나무를 양쪽으로 가지런하게 심은 넓은 도로, 기능별로 구역을 나눠 정비된 골목뿐 아니라 광장과 카페들까지 모두 계획에 따라 들어섰다. 특히 베니토 무솔리니는 아프리카에 제2의 로마 제국을 세우겠다며 1935~1941년 아스마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에티오피아 침공에 대비해 에리트레아로 넘어온 이탈리아인들이 막 새로 지어진 이 도시에 정착했다. 1939년 거주민 9만8000명 중 이탈리아인이 절반이 넘었다. 에리트레아에 사는 이탈리아인(7만5000명)의 70%가 아스마라에 있었다.
이 때 건축가들이 로마에선 규제와 비용 등 한계에 부딪혀 구상으로만 남겨 뒀던 설계도를 들고 이 도시로 찾아들었다. 아스마라는 현란하고 기상천외한 현대건축물을 집대성하는 실험장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주유소로 지어진 피아르 탈리에로(Fiat Tagliero) 빌딩이다. 항공기를 본따 설계했는데, 중앙에 사무동 타워를 두고 양쪽으로 각 15m짜리 날개 같은 지붕이 얹혀있다. 콘크리트 지붕은 지지대를 사용하지 않고 힘의 분산을 이용해 설계한 캔틸레버식 구조물이다. 미래파 건축가의 설계안을 본 당국에선 안전을 우려해 기둥을 추가하라고 요구했지만 건물은 1938년 설계대로 완공됐고, 8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다.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의 시네마임페로 극장. 전기회로판에서 외관을 본뜬 건물은
아르데코 디자인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아스마라 | AP연합뉴스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의 오페라하우스 내부. 절충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 극장 천장에는
춤추는 소녀들이 그려져 있다. 위키피디아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의 세계은행건물. 세계은행이 에리트레아 본부 사무실로 사들이면서 이름이 붙었다. 1938년 지어진 이 건물은 아트데코와 미래파 건축양식이 복합적으로 구현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위키피디아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 도심에는 이탈리아식 식당과 오래된 이탈리아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카페들도 많다.panoramio
그러나 도시의 현대화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멈췄다. 1952년 유엔이 에티오피아연방을 만들면서 수도 지위도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 넘겨줬다. 이후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에 맞서 오랜 전쟁 끝에 1991년에야 독립했다. 30년간 이어진 전쟁에도 고지대였던 아스마라는 크게 파괴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건축물들을 지켜낸 것은 에리트레아의 정체였다. 런던대 바틀렛 건축대 강사인 에드워드 데니슨은 “리비아와 소말리아와 같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은 식민 지배의 유산을 도시를 개발하면서 청산해버렸지만 연이어 이탈리아, 영국, 에티오피아의 통치를 받은 에리트레아는 이 과정이 점진적이어서 건축물들이 잘 보존된 상태로 남아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도시&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보미의 도시&이슈] 신나치즘 ‘무기’된 샬러츠빌의 차량테러 (0) | 2017.08.16 |
---|---|
[김보미의 도시&이슈] 덩케르크 철수작전, 이 도시도 구할까 (0) | 2017.08.01 |
[김보미의 도시&이슈] G20 격렬 시위 일어난 함부르크는 '저항의 도시' (0) | 2017.07.09 |
[김보미의 도시&이슈]파산한 호텔이 난민 둥지로...아테네 시티플라자의 운명은 (0) | 2017.06.26 |
[김보미의 도시&이슈]민간에 떠넘긴 런던 주택 관리…안전보다 수익 따지다 ‘참사’ (0) | 2017.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