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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

[김보미의 도시&이슈]파산한 호텔이 난민 둥지로...아테네 시티플라자의 운명은

by bomida 2017. 6. 26.

그리스 아테네 도심에 6년간 방치됐던 시티플라자 호텔에서 다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텅빈 7층 건물에 100가구, 400여명이 들어와 터를 잡았다. 절반은 아이들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국적도 다양하다. 

시티플라자 사람들은 126개 객실을 집 삼아 가족들끼리 잠을 잔다. 매일 1000인분 넘는 밥은 식당에서 함께 지어 먹고, 아이들도 함께 돌본다. 강당과 로비에선 그리스와 영어 교실이 열린다. 자원봉사를 나온 의료진들이 차린 간이병원도 있다. 호텔 안 공동체는 난민들의 도시 적응을 돕는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거주자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인다. 건물 안팎을 청소하고 부서진 것들을 수리하며 야간 경비를 서는 것은 난민들이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 도심에 시티플라자 호텔을 점유한 난민들이 23일(현지시간) 법원의 퇴거 명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연 가운데 호텔 앞에 아이들이 “국경을 열어라”라는 문구를 들고 앉아있다. _AFP


두 아이와 시리아를 탈출한 팔레스타인 난민 와엘 알팔라완은 미용사다. “여기 오기까지 누구도 우리를 돕지 않았지만 여기엔 도와주는 이들이 많다. 또 우리는 서로 돕는다”고 알자지라방송에 말했다. 공동체의 생활규칙들은 난민과 활동가들이 토론을 통해 정했다. 성폭력과 인종차별, 학대 세 가지 행위는 무관용으로 엄하게 다뤄진다.
 

1년간 난민들을 품은 시티플라자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됐다. 시리아의 퀴어 댄스파티가 열리고 아프간 다리어로 씌인 전단지가 붙어있으며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아랍어 시구절이 적힌 신문이 놓여 있다. 호텔 술집에선 15개국어가 소통된다. 400명으로 시작된 호텔 난민촌의 거주자는 1500명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일부는 직업을 구했고 현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대개는 기부금으로 생활한다. 입주하려는 대기자만 4000명이다. 

버려진 건물을 난민과 이주민들의 마을로 바꾼 것은 시민단체 ‘정치경제난민을 위한 연대’였다. 지난해 4월 임대료와 인건비가 체불돼 파산한 빈 호텔의 좌물쇠를 뜯고 들어와 난민들이 살게 했다. 유럽연합(EU)이 터키와 협정을 맺어 난민 유입을 차단한 다음달 벌어진 일이었다. 터키에서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를 통과해 유럽으로 가려던 난민 6만명이 그리스에 갇혔다. 지중해의 레스보스와 키오스 등 섬에만 1만6000명이 머물렀다. 아테네에서도 발 묶인 난민 수천명이 노숙인이 됐다. 

정부는 난민촌 48개를 지어 빅토리아 광장의 노숙 난민들을 수용하려 했다. 정치경제난민연대의 활동가 리나 테오도로는 “당국은 난민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밖으로 치우려고 했다”며 “이들을 위한 공공공간을 요구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시티플라자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경제난의 산물인 파산한 호텔이 난민들을 만나 공동체 마을로 재탄생한 셈이다. 

이민자들과 난민들의 터전이 된 아테네의 시티플라자. 사진 refugeeaid.org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지 7년이 됐지만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없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은 2012~2015년 연평균 2.52%씩 줄었다. 실업률은 22.5%, 15~24세 청년실업률은 46.6%에 달한다. 난민문제가 겹치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난민 5만명을 수용할 EU 긴급자금과 기부금 등 8억300만달러(약 9000억원)가 전달됐지만 겨울이면 동사자가 속출한다. 임시방편으로 유엔난민기구(UNHCR)가 그리스 전역의 호텔, 아파트를 빌려 난민 2만명 들여보냈으나 주민과 갈등이 불거졌다.

경기침체로 아테네 중심가의 상점의 27%가 문을 닫았고 시티플라자가 있는 오모니아 광장 주변은 가게의 절반이 장사를 접었다. 그 빈 자리를 난민들이 채우고 있다. 아테네에만 호텔과 학교 등 10여개 건물에 2500~3000명의 난민과 이주민들이 산다. 판테온대학 정치학교수 세라핌 세페리아데스는 알자지라에 “난민 관리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EU 전역엔 1100만개가 넘는 빈 건물들이 있다”며 “난민촌 주거여건이 열악해지면서 이런 (점유)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유는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문제를 낳는다. 시티플라자 소유주는 불법점유자들을 막지 못했다며 지난해 경찰청장을 직무태만으로 고소했다. 법원은 이달 초 시티플라자 등 3개 건물의 난민들에게 퇴거를 명령했다. 거주자들과 활동가들 700여명이 지난 23일 거리로 나와 “시티플라자는 우리의 집”이라며 항의 시위를 벌였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다. 게오르기오스 카미니스 아테네 시장은 현지 언론 카티메리니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이런 점유에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시티플라자에 지금까지 청구된 8만1500유로의 수도요금부터가 골칫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