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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전하는 도시]“시장 논리 재개발 안돼” 독일 함부르크, 골목문화 지키는 예술인들

by bomida 2015. 3. 15.

서울에서 지역에 의한 마을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결합을 통한 마을로 가장 뿌리가 깊은 곳은 성미산마을입니다. 그런데 이 곳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저의 주말을 책임지는 홍대와 상수 일대는 상권이 커지면서 합정과 연남동을 지나 성미산마을이 있는 성산동 어귀까지 번졌는데요. 단골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빨리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궁리해야 할 것 같네요.


독일 함부르크도 홍대와 비슷한 매력을 지닌 동네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인 겡어피어틀(강에피어틀) 입니다.

공간을 지키기는 것은 어렵지만, 애를 써봐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십수년을 투쟁 중인 조각가에게 어떻게 하면 원주민 예술가들이 쫓겨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그건 예술의 경지만큼 어렵다"고 하더군요. 서울에도 나의 아지트; 홍대가 이 곳과 같은 처지라고 했더니 한국의 예술가들도 만나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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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독일 함부르크시민들의 도전

▲ 법인 만들어 시에 협상 제안 
골목 보존하며 개발하기로
임대료 인상 등 여전히 ‘숙제’

조각을 하는 크리스틴 에벨링(49·사진)에게 독일 함부르크의 골목은 작업실이자 삶의 터전이다. 그는 골목 카페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서울 홍대앞 같은 느낌의 가게에 청년들이 모여 음악과 사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월13일 카페에 들어서 커피를 주문하자, 점원은 “값은 알아서 달라”고 답했다. 카운터에 붙은 메뉴판에는 “매일 컨디션이 달라 커피 맛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고 아닌 경고가 붙어 있다.

에벨링은 커피를 뽑아 카페 옆 자신의 공방으로 들어갔다. 15년 전부터 예술가 친구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던 곳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그동안 이들이 만든 조각과 설치미술, 그림들이 놓여 있다. 골목 한쪽 큰 길과 맞닿은 터널은 분홍색으로 칠하고 ‘골목으로 오라’(komm in die Gange)는 간판도 달았다. 골목(Gang)과 구역(Viertel)을 합친 이름의 공간, ‘강에피어텔’(Gangeviertel)이다.

독일 함부르크에는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12채가 남아 있다. 건물 안에서는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한다. 함부르크 | 김보미기자


에벨링이 이곳에 온 것은 2000년 즈음이다. 함부르크 시청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곳은 낡은 건물이 늘어선 골목이었다. 1953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2채 건물은 재개발되지 않아 옛 모습 그대로였다. 도심 속에 버려진 골목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이 간절히 찾는 공방이었다. 밤새 불을 켜고 그림을 그려도 되고, 큰 소리로 음악을 연주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에벨링은 방치된 건물들의 1~2층을 쓸 수 있도록 임시계약 형태로 시의 승인을 받았다. 에벨링을 비롯해 60명 넘는 예술가들이 속속 들어왔다. 여름에는 160~180명이 작업을 하러 찾아왔다. 저마다 재주껏 꾸민 공간에 술집과 카페를 차리고 서로 어울렸다. 골목의 이웃이 된 화가와 작가, 음악가들은 수시로 모여 생각을 나누고 장애인들을 초청해 그림이나 악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땅 값 비싼 도심 속 예술인 마을은 오래 가기 힘들었다. 에벨링은 2009년 시청으로부터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시 소유의 건물 12채를 네덜란드 회사에 넘겨 고층빌딩과 고급 주상복합건물로 재개발하려는 것이었다. 서울 강북의 옛 도심에서도 빈번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낡은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돈 있는 이들이 도심으로 회귀하고 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하는 주민들은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여기서도 논란거리였다.


독일 함부르크 ‘강에피어텔’에 있는 작은 터널 안쪽 벽에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놓았다. 함부르크 | 김보미기자

‘강에피어텔’ 건물 밖에 자전거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만들어져 있다. 함부르크 | 김보미 기자

‘강에피어텔’ 안쪽 터널 밖을 나서면 신축된 높은 건물들이 바로 보인다. ‘골목으로 오라’는 간판과 골목 밖 풍경과 대조된다.

 함부르크 | 김보미 기자


강에피어텔 주변은 이미 고층건물 숲으로 변한 상태였으니 도움을 청할 이웃도 없었다. “우리는 정당한 입주자인데 이렇게 작업실을 뺏길 수는 없었어요.” 그때부터 이들은 ‘불법점거자’가 돼 싸움을 시작했다. 에벨링은 이곳의 이야기를 알리기 시작했고 독일 전역의 화가, 음악가, 건축가들이 힘을 보탰다. 시민들도 옛 골목을 지켜야 한다며 같이 목소리를 냈다. 함부르크 시내 곳곳에서 거리축제와 콘서트를 열었다.

예술가들은 법인을 만들어 스스로 재개발 사업을 떠맡기로 했다. 시에 협상을 제안하고 조합을 결성했다. 강에피어텔 지킴이 190명이 모였고 십시일반 돈을 낸 예술가와 시민 조합원이 300명이었다. 시는 마침내 예술가들을 개발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고 공공자금을 투입해 함부르크의 역사가 담긴 골목을 보존하면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에벨링은 “개발 계획을 세울 때부터 ‘투자자’가 아니라 ‘시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건물 2채가 리모델링됐다.

‘강에피어텔’에서 만난 조각가 크리스틴 에벨링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함부르크|김보미기자

크리스틴 에벨링의 작업실에 ‘강에피어텔’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함부르크|김보미기자

 크리스틴 에벨링이 ‘강에피어텔’이 속한 함부르크 구 도심지역의 150년 전 지도를 보며 설명을 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주민들은 황폐화된 도심 주거지를 버리고 떠났고 이곳은 공장과 상가건물만 남았다. 이 곳에 다시 거주기능이 살아난 것은 2000년 초반 대대적인 재개발이 이뤄지면서다. 함부르크|김보미 기자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주민참여 개발이라 해도 새 단장한 건물의 임대료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시는 물론이고 연방정부와 유럽연합(EU) 공공자금까지 포함해 이미 40만유로가 들어갔으니 조합의 권한도 많이 제한될 거예요. 임대료가 얼마나 비싸질지 알 수 없어요.” 리모델링한 건물을 사들이려면 375만유로(약 45억원)나 필요하니 예술가들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99년간 시에 장기임대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에벨링은 골목을 지켜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도심 재개발에 맞선 공동체의 힘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는 데에 있습니다. 기업과 시장논리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대안을 생각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죠. 도시 공간은 상품이 아니라 생활공간임을 인식해야 하는데, 지자체가 그걸 못 하면 재단이나 조합이 해야죠.” 에벨링은 나흘 뒤 함부르크 곳곳에서 발상의 전환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집회를 연다고 했다. 공터였거나 낡은 주택가였던 곳에 대형상업시설이 들어온 곳들을 돌며 쫓겨난 예술가,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다. 그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전하는 도시]지자체가 앞장서 ‘문화’ 살린 일본 가나자와


탈산업화로 텅 빈 도시를 문화로 채운다. 문화로 ‘이야기’를 만들고 정체성을 살리며 지속가능한 도시의 동력으로 삼는 재생 전략은 이미 큰 흐름이다. 영국의 찰스 랜들리는 <창조도시>에서, 미국의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계급론>에서 이 같은 가능성을 말한다. 일본의 사사키 마사유키 역시 <창조하는 도시>에서 전통과 문화로 새 삶을 꾸린 도시를 전하고 있다.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는 유네스코가 2009년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가장 잘 이뤄진 창조도시’로 선정한 곳이다. 연 700만명이 자연을 즐기러 오는 지역으로 일본에서 최초로 ‘경관조례’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400년 넘게 지진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에도시대부터 쌓인 전통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섬유업체들이 모여 단단한 산업기반이 있다. 견직물과 봉제뿐 아니라 금속·인쇄공업도 발달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완성된 가나자와의 문화가 쉽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가 관광자원화 취지로 전통건물 보존지역을 지정하려 하자 주민들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주거환경이 나빠진다며 강하게 저항했고, 관광객과 주민들의 갈등으로 소란을 빚은 경우도 많았다. 토박이 예술가들은 관광산업이 가나자와 문화의 진면목을 없앤다며 맞서기도 했다. 지자체가 지역 문화단체들을 설득해 오랜 시간 주민과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지금 같은 모습이 가능했다.

서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들이 문화도시를 꿈꾸지만 외부에서 주도하는 재개발이나 겉치레 성과에 치중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과거 가나자와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던 나가사키(長崎)는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나가사키도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미쓰비시 자본에 장악됐고, 중공업과 조선업 의존도가 높아졌다. 결국 중공업과 조선업 성장이 멈추자 도시 전체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