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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

[김보미의 도시&이슈]민간에 떠넘긴 런던 주택 관리…안전보다 수익 따지다 ‘참사’

by bomida 2017. 6. 22.



유례 없는 대형 화재인 영국 그렌펠타워 참사는 부동산 호황을 맞아 세계 최고가 주택들이 늘어선 런던의 어두운 민낯이었다. 집값이 빠르게 오를수록 주거빈곤층이 설 자리는 좁아지는 탓이다.

 

런던은 주택공급량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데다 투기자본까지 들어오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그렌펠타워가 위치한 켄싱턴첼시왕립자치구의 평균 집값이 120만파운드(17억원). 주민들의 평균 수입의 30배로 전국(평균 8배)에서 가장 높다. 평균 월세는 평균 임금의 96%에 달한다. 이 지역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자치구가 거둬들인 지난해 토지·건물 거래 인지세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국 런던 시민들이 17일(현지시간)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 현장 주변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붙여 놓은 벽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런던 | AP연합뉴스

영국 런던 시민들이 17일(현지시간)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 현장 주변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붙여 놓은 벽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런던 | AP연합뉴스


도심에 집을 구하는 사람은 늘어난 반면 공공지출을 줄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주택 분야 투자를 줄이면서 도심 재개발의 대안으로 부각된 것이 그렌펠타워 같은 사회주택(공공임대)이다. 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거주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이 주택들은 공공이 소유한 덕에 재개발 및 재건축을 위한 의사결정이 쉽다. 가디언은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현금이 부족한 지방정부에 사회주택의 재개발·재건축은 가구 밀도를 높이며 지자체 수입을 높이는 매력적인 방법”이라고 전했다. 저소득층을 위해 공급한 사회주택을 재건축해 고가의 주거단지로 바꿀 경우 새로 입주하는 주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면서도 정부 지출이 필요한 공공서비스는 더 적게 이용하는 결과가 된다. 최근 5년 새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보조금은 36% 삭감됐다.

 

이 같은 상황은 켄싱턴자치구와 같이 부유한 동네도 마찬가지다. 특히 1960~1970년대 지어진 고층 사회주택단지와 같이 도시의 낡은 기반시설은 유지와 보수에 매년 목돈이 들어간다. 켄싱턴자치구는 구가 소유한 7억5500만파운드 규모의 주택(지난해 기준)을 보수하는 데 1200만파운드를 썼다. 1959년에 건축돼 1999년에 철거가 논의됐지만 무산됐던 런던의 라카날하우스에서도 2009년 화재가 발생했는데, 14층짜리 이 아파트는 사고 이후 자치구에서 소방안전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보수공사에만 350만파운드(약 50억원)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화재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런던에서 비슷한 고층 사회주택 중 철거가 확정되거나 검토 중인 곳은 100곳이 넘는다.

 

부담이 커진 사회주택 관리는 민영화의 길을 밟았다. 자치구는 사회주택의 관리를 포기하고 위탁단체에 맡겼다. 주민들이 지자체 관리에 회의를 느껴 입주자 투표로 단체와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그렌펠타워는 구와 계약한 비영리단체 KCTMO가 맡았다. 그러나 KCTMO는 만성적 주택 부족 상태인 런던의 다른 사회주택과 마찬가지로 세입자를 늘리기 위해 아파트를 개조했고, 계단과 출구는 각각 하나만 남겼다. 거주자들의 지속적인 안전관리 부실에 대한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참사를 불렀다.


 

뉴욕타임스는 “그렌펠타워를 관리한 단체의 이사진 15명 중 거주자는 8명뿐이었다”며 “소유권을 가진 지자체와 관리권을 가진 이 단체가 주민을 대표하면서 민주적인 책임은 희박해지는 혼란스러운 구조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입주자들이 만든 그렌펠액션그룹이 소셜미디어로 안전한 거주권을 위해 목소리를 냈지만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BBC 등은 리모델링 공사 과정에서 사용된 외장재가 미국, 독일에서는 이미 사용이 금지된 합성소재였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민이 논의 과정에서 빠진 리모델링은 집값을 올리는 외관 개선에 더 힘을 실었을 가능성이 크다. KCTMO는 켄싱턴첼시구를 중심으로 1만가구의 관리를 맡고 있다. 2011년 영국주거연구원 조사 따르면 영국 내 사회주택 아파트의 4분의 3이 잠재적 화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사적 소유가 금지됐던 사회주택이 민간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마거릿 대처 정부 출범과 맞물려 있다. 시장경제를 강조한 대처 전 총리는 주택의 사유권도 확대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1980년 개정된 주택법은 사회주택에 장기 거주한 세입자들에게 공공임대구매권(Right to buy)을 부여해 30~50%까지 싼값에 집을 살 수 있도록 했다. 내집을 꿈꾸는 이들, 재매각을 통해 차익을 보려는 이들이 몰리면서 1982년에만 2만채의 공공주택이 팔려나갔고, 2013년까지 250만채가 세입자에게 매각돼 민간부문으로 주택이 이동했다. 영국에선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구 3명 중 1명은 그렌펠타워와 같은 사회주택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6명 중 1명 수준으로 줄었다. 1999년 자가 주택 보유자 비율은 69%에 달했고, 지자체가 공급한 사회주택을 임대한 거주자는 15%에 그친다. 2009년 자가는 66%, 공공임대(지자체)는 8%로 격차가 더 커진다. 영국 채널4 방송은 “공공임대구매권 정책으로 주택을 구매할 여유가 있는 이들은 민간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사회주택 세입자와 다른 주민 간 격차가 급격히 확대됐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주택정책을 도입한 것은 1차대전 이후다. 지자체가 공급하는 첫 임대주택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영국에선 1914년 자가 주택에서 사는 경우가 10%로, 나머지 89%는 민간 시장에서 주택을 임대해 살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주택 공급을 시작하면서 민간임대 비율은 1938년 59%, 1961년 32%까지 낮아지고 지자체의 공공임대가 같은 기간 11%에서 24%로 2배 넘게 급증했다. 1950년 영국은 주택건축 붐이 일었고, 정부는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며 부서진 45만8000채의 주택에 대한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1951년 그렌펠과 같이 거주자 1인당 면적을 늘리고 주차장 등 주변 공간에 대한 구상에 신경 쓴 타워형 아파트도 처음 선보였다. 공공의 역할이 커져가던 주택시장은 1968년 연 42만6000채가 공급되며 정점에 이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공공임대 성장은 1960~1970년대 도심의 슬럼가를 재개발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1951년 보수당은 “재산을 가진 민주주의 이념으로 국가를 발전시킬 것”이라며 공약을 내세웠고 이념은 1979년 대처 정권으로 이어졌다.


공공임대구매권(Right to buy) 도입 이후 정부는 지자체에 대신 민간 건설사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렸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주택의 공급도 민간 건설사의 물량이 지자체나 주택조합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 주택건설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5년 전체 공급량 17만1000채 중 2700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사회주택의 부족에 따라 지자체가 지원하는 대상은 주거빈곤층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저소득층만 할당받을 수 있는, 운이 따라야 집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대형 주택조합인 피바디(Peabody) 대표 밥 커슬레이크는 이번 그렌펠 참사로 '사회주택이 문제'라는 인식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끔찍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정말 주택이 더욱 필요하며 특히 런던 도심은 노숙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민간 임대주택은 과잉 수용 상태가 됐으나 지자체의 주택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