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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에게 미국은 고난의 나라?

by bomida 2013. 5. 7.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던 기회의 땅 미국이 누구든 다칠 수 있는 위기의 땅이 됐다.”


4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열린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의 충격을 보도한 AP통신은 현장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3명이 숨지고 264명이 다친 이날 사고의 범인은 체첸계 형제, 타멜란 차르나예프(26)와 조하르(19)였다. 형 타멜란은 체포 과정에서 사망했고, 동생 조하르는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4월 15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결승선 인근에서 폭탄이 터진 직후 시민들이 놀라 달아나고 있다. | 보스턴/AP연합뉴스

미 전역을 또 한 번 테러 공포로 몰아넣은 이번 사건은 외부세력이 아닌, 어린 시절 이주해 미국 젊은이들과 함께 성장한 이들이 벌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이는 인구의 13%(2010년 기준)에 달하는 4000만명 이상이 해외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채워진 미국에서 이민자 적응문제에 다시 불을 붙였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주립대(UCLA) 교육대학원이 2007년부터 진행한 연구는 이민자, 특히 어린 나이에 건너온 아이들에게 미국은 여전히 힘든 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보스턴 테러범, 이주자란 사실에 충격
이민정책 전문가이자 마르셀로 수아레스 오로스코 교육대 학장은 보스턴·캐임브리지·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20개 중·고교에 다니는 9~14세 이민가정의 아동 400명을 지켜봤다. 5년에 걸친 연구였다. 과테말라·니카라과·아이티·엘살바도르 등 가난과 국내 갈등 탓에 고향을 탈출한 아이들이다. 많은 경우 불안·우울 증세와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문제를 겪었다. 암살단에게 가족이 붙잡혔다가 간신히 살바도르 조국을 탈출한 10세 아이는 장난감 폭죽 소리에도 놀라 몸을 떨었다.

오로스코 학장은 “연구에 참여한 아이들은 모국의 전쟁, 내정불안 속에 태어나 수차례 이주를 경험했다”며 “미국에 와서도 폭력·범죄의 유혹이 가득한 거친 도시에 정착했다는 점까지 차르나예프 형제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라고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전했다.

타멜란과 조하르도 각각 열다섯과 여덟살 나이에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 키르기스스탄 내 체첸 민족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1999년 러시아·체첸 2차전쟁 이후 가족과 인근 다게스탄으로 이동했다. 수도 마하치칼라에 살았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넉넉했다는 의미”라고 체첸 분석가들은 설명한다. 대부분의 이주민처럼 지방의 하사뷰르트로 가지 않고 물가가 비싼 수도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족한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2년 부모는 조하르만 데리고 미국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다. 이듬해 타멜란이 두 여동생을 데리고 부모 곁으로 왔다. 다시 모인 가족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타멜란은 3년제 벙커힐 커뮤니티칼리지에 들어갔고, 조하르는 201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트머스 매사추세츠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아버지는 다게스탄으로 돌아갔지만, 조하르는 귀화가 받아들여져 정식으로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특히 형제의 망명은 미국 내에서 보기 힘든 사례다. 체첸 난민은 미국 내 200명도 채 안 된다. 대테러정책 때문에 그나마 이 중 70%는 여성이고 남성은 이민이 더 어렵다. 이슬람국제여단·리야두스살리킨대대 등 이 지역에 기반을 둔 테러조직이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체첸 출신이 미국 정착을 추진하면 러시아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는 탓도 있다. 지난해 러시아연방 출신 난민은 197건에 그쳤다.

3~5년씩 걸려 탈출에 성공해도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거주지 선택권도 적다. 체첸 등 러시아 남부의 심한 내전을 겪은 지역 출신 이민자들은 대부분 조하르 형제가 살던 보스턴 일대에 모여 있다. 이곳 출신은 다른 도시에서는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아이들과 친구 될 기회도 별로 없어

그러나 새 희망을 찾아 이주한 이들이 이웃간 연대와 결합이 거의 없는 도심에 터를 잡고 산다는 것은 또다른 시련이다. UCLA 연구에 속한 아이들과 차르나예프 형제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과테말라 내 혼란을 피해 미국에 온 12세 소녀는 ‘새로온 동네도 여전히 주변에 폭력이 많아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은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께 이야기하겠다’고 한 아이는 6%뿐이었다. ‘선생님이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3%에 불과했다. ‘미국인이 이주민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에 65%가 부정적인 답을 했는데, 열네살짜리 한 소년은 “게으르고 약물에 중독됐거나 조직폭력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들의 일자리를 뺏으러 왔다고 보는 것도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아이 셋 중 한 명은 미국 아이와 교류도 없고 친구가 될 기회도 갖지 못했다.

이민자 정착을 돕는 제임스타운재단의 글렌 하워드 대표는 “조하르 가족의 정착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형 타멜란은 그린카드(미 영주권)를 갖고 있었는데, 이 역시 거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타멜란은 미국 여성과 결혼해 영주권을 받았다.

1.5세대 세 명 중 두 명은 적응 못해

흔치 않은 성공을 이뤘던 이들 형제도 미국의 성인으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았다. 성적도 좋고 레슬링팀 주장을 맡아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았던 조하르는 대학에 들어가 낙제를 했다. 타멜란은 대학 졸업 후 직업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린스턴대 사회학자 알레잔드로 포르테와 브라운대 심리학자 신시아 가르시아, 두 학자가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1.5세대 연구를 보면 셋 중 두 명은 이 같은 적응 쇠퇴 현상을 보였다. 구직을 단념하고 갱단에 들어가기도 했다.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형 타멜란은 정체성에 혼란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타멜란은 지난해 1월 아버지가 있는 러시아 남부의 다케스탄으로 떠났다. 형제의 숙모는 “타멜란이 지난해 왔을 때 체첸의 정체성을 다시 마주하는 데 힘들어 했다”며 “체첸 사람이기보다 미국인처럼 보였다. 이슬람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매일 미국에 있는 부인과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경제적 요인도 적응의 걸림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타멜란은 부인이 수입이 생기기 전인 지난해까지 주에서 주는 사회복지연금을 받았다. 이후 부인이 주당 70~80시간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그는 집에서 아이를 키웠다. 형제와 부모도 연금을 받아 생활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머니는 지난해 백화점에서 절도죄로 체포되기도 했다고 보스턴 글로브는 보도했다.

시인 에마 나자루스가 미국의 자유와 기회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놓은 ‘지치고 가난한, 갈 곳 없는 자 나에게 오라’는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