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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반도 안팎

희망난민_꿈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by bomida 2017. 2. 5.



<희망난민>

꿈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저자

길을 걷다보면 '세계 일주, 99만엔' 혹은 '지구 일주 선박 여행 148만엔'이라고 적힌 포스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NGO피스 보트가 주최하는 세계 일주 크루즈의 광고다. 어쩌다 피스보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배 안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하는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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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배제'를 단순하게 이야기 해보자면 '가난'과 '외로움'이 결합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재분배의 정의'와 '승인의 정의'가 위기에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외로움'에 대한 처방전으로 여러사람들이 제시하는게 바로 '커뮤니티' 혹은 '안식처'다. 젊은이들에게 승인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점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잖다. (13페이지)

"이 나라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만은 없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이 지닌 '폐색감'을 매우 잘 표현한 말이다. 사회나 개인에게 희망이 있느 편이 낫다는 규범적 의식이 전제돼 있다. 현실과 희망의 격차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가리켜 희망 난민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 바로 '희망냉각회로'의 확보다. 희망 난민이 된 젊은이를 단념시키자는 것이 이 책이 바라는 제안이다.(15페이지)

메리토크라시(meritocdacy)구조의 기능 결핍을 들 수 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스템, 요컨대 학력 사회 혹은 시험 경쟁 사회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최근 기업은 학생들에게 '인간력'이나 '소통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17페이지)

사회는 물론 자신도 변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끝을 알수없는 자기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의 주장은 '단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구조를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19페이지)

비슷한 수준의사람을 대량 고용하는 모델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됐다. 필요한 것은 일정 시간에만 일해 줄 비정규직 노동자다.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출할 줄 알고, 교섭이나 네트워크 형성 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간력'을 보유한 인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교육 사회학자 혼다 유키는 현대사회를 '하이퍼 메리토크라시화(hyper-meritoceacy) 사회'라고 불렀다. 더 이상 사회가 '이야기'를 던져주지 않으므로, 각자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만 한다. 그게 바로 후기 근대다. (30페이지)

전후 일본은 기업을 통해 사회 복지를 제공해 온 사회이기도 하다. '일본형 경영'이라고 하는데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조합이라는 '3종의 신기(三種の神器)'를 바탕으로 성립했다.  (32페이지)

거품경제의 붕괴는 '일본형 경영'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장차 노동시장에 뛰어들 사람들(즉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구조를 제공할 수 없게 된 것이 1990년대 이후의 일본이다. 고용조정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대졸 신입사원의 채용 축소라는 형태로 고용을 조정하고 부족한 노동력은 해고하기 쉬운 계약직 노동자나 파견 노동자로 채웠다. 아직 노동시장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젊은이들이 거품 경제의 붕괴가 불러온 영향을 온몸으로 직접 받아내야했던 것이다. (34페이지)

내셔널리즘으로 모여드는 건 '치유'를 바라보는 마음, 즉 승인의 결여를 '일본'이라는 자리를 통해 채워보려는 생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회사'나 '가족'과 같은 기존 공동체의 붕괴에 따른 승인 공급원의 부재다.(38페이지)

젊은이들은 생활 속에서 느껴 온 경멸, 노동시장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됨으로써 생기는 굴욕감을 서브컬처를 통해 보상받으려고 한다. 사회의 파편화는 다양한 문화 집단을 출연시키고, 집단 고유의 '리스펙트 발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39페이지)

사회학자 스스키 겐스케는 자기 결정과 자기 책임이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외부에 위치한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에 바탕을 둔 "존재론적 안심"을 확보해주는 승인 공동체의 중요성을 주장했다.(41페이지)

공동체가 폐쇄적으로 변질될 위험성. 커뮤니티는 세계를 정의할 때 '우리'와 '저들'을 분리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저들을 거절, 혹은 유해한 것으로 단정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개인 실존의 문제나 승인을 논함으로써, 경제적 재분배의 문제가 등한시 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42페이지)

'공동성'이 '목적성'을 냉각시켜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게 이 연구의 가설이다.(43페이지)

'여행'이 현대사회를 뒤덮은 폐색감에 어떠한 '출구'를 제공해 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46페이지)

1964년에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됐다고 하지만, 1달러가 360엔이던 시대였기에 해외여행은 여전히 일부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여성들 사이에서도 여행 붐이 일었다. 1970년, 오사카 만국 박람회 이후 여행객 수요를 개발하기 위해  電通덴쓰와 국철이 '디스커버 재팬'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1980년 무렵까지 <앙앙>과 <논노>는 해마다 교토나 가마쿠라 등 일본 내 古都를 관광지 특집으로 다뤄 호평을 받았다.(55페이지)

오구마 에이지는 1968년을 중심으로 일어난 학생 운동을 분석하면서 '젊은이들의 반란'의 원인 중 하나로 현대적 불행을 지목했다. 경제 고도성장과 대량 소비문화의 침투 속에서 젊은이들이 느낄수밖에 없었던 폐색감, 공허감, 현실성의 결여 같은 삶의 고통을 말한다.(57페이지)

해외에 가고 싶은데도 안가는 '소극파' 젊은이일수록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유로서 돈과 시간처럼 납득하기 쉬운 항목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 배후에 자리한 다른 요인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행을 기피하도록 했음을 시사해 준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오늘날 소멸의 길로 접어든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64페이지)

"아무리 멋진 경치를 보아도,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멋지다,맛있다 하며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면 너무나 지루한 일" '신단체 여행'의 특징은 공동성으로의 회귀라는데에 있다. (69페이지)

1983년, 피스보트의 탄생. 소련, 북한, 중국 등 당시 3대 사회주의 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동해 크루즈를 기획하고, 상선업체 미쓰이(三井)와 협력해 '닛폰마루' 전세 계약을 진행했다. 북한으로 갈 떄 필요한 여권을 취득하는 데에만 2개월이 걸린다는 점, 전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세부 계획이 전무했다는 점, 게다가 미쓰이 측까지 북한으로 출항하는 데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평화의  배' 구상은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74페이지)

주최자4명, 사무국 스태프29명이 모였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25세였다. '피스보트83'은 2주일 동안 지치지마, 이오지마, 괌, 사이판, 티니언 섬을 돌아다녔는데 모두 159명이 참가했다. 이오지마와 티니언 섬 사이 바다에 '핵폐기물 해양 투기반대'를 위한 기념물을 가라앉히는가 하면, 괌에서는 일부 참가자가 미군 앤더슨기지에 침입하기도 했다. 전쟁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모임이나 선내 축제 등 다양한 기획이 마련됐다. (76페이지)

'피스보트84'는 이시가카지마, 홍콩, 난징을 둘러봤는데 394명이 승선했다. 이시가키지마에서는 신공항 반대파 주민과의 교류, 홍콩에서는 일본군 점령 시대와 공해문제에 대해 학습하고, 난징에선 일본이 자행한 난징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의 증언을 듣는 등 "현지 민족과 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자치와 침략을 검증"하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1989년 봄에 진행한 크루즈는, 일본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를 돌아보며 "일본 각지의 봄과 맛있는 음식도 함께 즐기는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다.(77페이지)

1982년 당시 문부성이 역사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일본군의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바꿔서 표현하도록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불거진 '교과서 문제'를 피스보트 사업의 창설 계기로 설명하고 있다. "교과서를 통해 진정한 역사를배울 수 없다면 직접 자신의 눈과 귀로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라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결성한 게 피스보트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90페이지)

피스보트가 단순한 주유 관광선으로 변했느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2002년 38회 크루즈에서는, 외무성으로부터 자숙 요청을 받았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기어이 일본, 러시아 간의 영토 분쟁 지역인 구나시리토로 향했다. 그리고 수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도항하기도 했다.(92페이지)

피스 보트를 지탱하는 스태프들. 혼다 유키가 들었다면 '보람이라는 가면을 쓴 착취'라고 호통을 치며 분개했을지도 모른다.(105페이지)

피스보트센터는 단순한 포스터 보급소의 기능을 넘어,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곳은 사람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장으로서 변모해 가는 것이다.(107페이지)

'세계' 혹은 '평화'라는  모호한 개념과 공동 주최자 의식이 형성하는 공동성이, 젊은이들의 승인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110페이지)

왜 정사원들이 피스보트에 승선한 것일까. 더구나 이들 중에는 휴직하고 온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일을 그만두고 피스보트에 승선한 것이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주변적 정사원'의 존재다. 사회학자 기노시타 다케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사원이기는하지만 노동 조건, 환경이 비정규직과 다르지 않은 존재를 일컫는다. 아무리 '정사원'이라도 그에 상응하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한 젊은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130페이지)

여성 승객 중에는 간호사를 비롯해 치과 위생사, 유치원교사, 미용사 영양사 등 전문 자격증 소지자가 많았다. 20세부터 24세까지 젊은이가 받는 평균 급여는 248만엔, 25세부터 29세까지의 경우에는 343만엔이었다. 20세부터 29세까지의 결과를 종합하면 평균 급여가 296만엔이 되는데, 250만엔 이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35.8%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사원이었던 20대 가운데 응답한 사람 25명은 수입이 250만엔 미만인 사람도 8명이나 있었다. 피스보트 승선객 연봉은 일본 전체의 평균 연봉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승선한 젊은이들이 가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아니 가족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노동여건에 대한 불만은 자주 들을 수 있었지만, 수입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평하지 않았다. (133페이지)

상류층도 아니고 하류층도 아닌 젊은이들에게, 피스보트는 유동적인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휴식처로서 기능하고 있었다.(135페이지)

평론가 우치다 다쓰루는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자기 찾기 여행'의 목표가 처음 가 본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자신에게 내려져 온 외부의 평가를 초기화하는데 있다고 추측했다.(139페이지)

지루한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단념해야 할 것을 단념하지 못하는' 희만난민, 즉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피스보트에 승선했던 것이다. 
전공투 등 과거 젊은이들의 일으킨 반란도 '정치운동'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실상 그것 또한 젊은이들의 '자기 확인 운동' 혹은 '표현행위'라는 측면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한다. (144페이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스스로 학생운동 단체 등을 결성할 필요가 없다. 포스터를 붙어는 노동력을 포함해 약200만엔 정도의 여행 비용만 지불할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이다. '승인 공동체'까지도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다.(146페이지)
피스보트는 평화나 반전같은 정치 운동의 목적을 생각으로 환원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세계를 평화롭게 한다'라는 생각이 없으면 모든 평화운동은 성립할 수없다. 그러므로 우선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이것이 피스보트의 논리며, 거기에 탄 수많은 젊은이에게서 들은 소리이기도 하다. '마음'이나 '정체성'의 문제가 별 무리 없이 평화나 반전 같은 정치 문제와 접속돼 있다는 점이다. '팝 심리학'(なんちゃって心理学) 혹은 네트워크 비즈니스, 자기 계발 세미나에서 곧잘 등장하는 메시지와 메우 흡사하다. (148페이지)

'사고는 현실화한다' 처럼 사회구조나 환경의 변혁을 자기 계발에서 찾는 발상법은 '세계 평화'를 구체적인 수단으로 실현하기에 앞서 '생각'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는 피스보트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149페이지)

저팬그레이스의 대응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며 나선 쪽은, 심지 굳은 4명의 연장자들이었다. 수차례 선내 집회를 개최했었다. 계속해서 피스보트 측에 책임을 묻고 또 물었다. 이들은 바로 학생운동 세대다.(169페이지)
연장자들의 행동에 거부 반응을 나타낸 건 '세계형' 젊은이들이었다.(171페이지)
재미있어야 할 배 안의 생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피스 보트를 뒤흔들면서까지 소송을 논하는 것은 "지나치"며 "말도 안된다", 우리 젊은이들과 그들 어른은 다르다는 것이다.(172페이지)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경험이나 즐거움을 안겨주는 피스보트, 이곳의 분위기를 돋우려는 젊은이들에게 연장자는 발목을 잡는 존재처럼 보였던 것이다.
피스보트 측으로부터 복사를 거부당한 일에 대해서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피스보트와 무관한 일이라 복사를 할 수 없다고 거절했는데도 고집을 부린 게 더 이상해요"(174페이지)
세계형 젊은이들은 울먹이며 연장자와 피스보트 측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없이 울기만 했다. 승객의 구체적 불만이나 선내의 불충분한 준비 상황을 파악해 저팬그레이스 측에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연장자 일행, 즉 학생운동 세대와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질적인 것에 대한 유약한 내성이었다. 자신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피스보투에 이의를 주장하는 일행에게 거부감을 표시하고, 자기들 선실에 마음대로 놓고간 설문조사용지를 거부했다. 이들이 논리나 언어가 아닌, '감각'을 통해 공동성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리라.(177페이지)
'감각 공동체'가 침해당하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감각으로 이어진 관계성은 겉보기에 아무리 공고해보여도, 실은 불안정하고 유약한 관계다. 왜냐하면 언어적 관념으로 매개되지 않은 데다, 내부에서 발생한 충동이나 감각에 기반을 둔 관계성에는 연기 공간이라는 이완 지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 비난받게 되면 이것을 의례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존재 그 자체를 부정당했다고 느끼고 마는 것이다. 연장자 일행의 항의는,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178페이지)

공식적으로 피스 보트는 헌법 9조개정에 반대하며,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 기본법에도 반대한다. 선내 신문 삽화에 일장기를 그려넣은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피스보트 운영자의 입장은 이른바 '좌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180페이지)
9조 호헌을 주장하며 일장기나 기미가요를 강요하는 방침엔 반대하는 '좌익'과 피스보트에 탄 젊은이들 사이에는 커다란 단절이 존재하는 듯하다. 경제 고도성장기가 도래하기 전에는 '좌익'이 내셔널리즘에 근거해 일본국 헌법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피스보트에 승선한 젊은이들의 의식은 과거 호헌 내셔널리즘과도 다른 듯하다.(183페이지)
9조 댄스가 헌법 9조를 지키는 수단으로서의 정치 활동이라기보다 "나에게 헌법 9조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자기 찾기'의 장이었다는 사실이다.(184페이지)
헌법 9조를 통해 승인을 갈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젊은이들은 헌법9조에서 자신들의 폐색감이나 정체성의 위기라는 현대적 불행의 돌파구를 발견한 것이다.(185페이지)

삶의 고통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우익이 주장하는 일장기와 피스보트가 주장하는 헌법 9조는 기능적으로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요점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86페이지)

전공투 운동의 활동가는 "나의 일상성이, 이러한 별 볼일 없는 체제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무로 체제를 바꾸는 일과 나를 변화시키는 건 하나의 투쟁이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세계형 젊은이들이 공동성은 자신들을 헌법9조와 동일시함으로써 성립하며, 그렇기에 "내가 변하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라는 발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187페이지)

지금 세계에서 실제로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지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지뢰나 난민이라는 전지구적 문제들이 상징하는 바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기나름대로 세계 평화를 실현하고 세계를 수용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191페이지)
세계를 방문해 실감을 함으로써 현대적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각 기항기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얻기 위한 배경으로서 받아들여질 뿐이었다.(193페이지)
세계가 세계라는 추상적인 차원에 계속 머물렀기 때문에, 피스보트라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모호하기 떄문에 반대하기도 곤란하고, 분열이 일어날 일도 없다. 실질적으로 공동성을 지탱하는 건 세계평화라는 이념이라기 보다 24시간 같은 선상에 머무는 생활이 담보하는 긴밀한 소통 그 자체였던 것이다. 세계평화라는 가볍고 유약하며 모호한 가치관을 매개로 한 공동성을 나누는 관계에 가까웠다.(194페이지)
생각이 비치지 못하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대화나 토론을 통해 타협점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슬퍼하며 끝내버리는 것이다.(196페이지)
'사고는 현실화한다'라는 '팝 심리학'의 전형적인 주장과 닮아있다.(197페이지)

안전한 모형 정원은 젊은이들의 "이질적인 것은 보고싶지 않다"라는 바람과도 일치한다. 자신들의 세계가 침해당하는 데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피스보트 선내에서 고장이 발생하였을 떄 이들의 "우리는 당신들(선박회사, 저팬그레이스,피스보트라는 장)의 보호를 받는 아이들입니다"라고 자기 규정했던 건 피스보트가 모형정원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기 떄문일 것이다.(205페이지)
젊은이의 심성을 가리켜 상처받기 쉽지만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온화함이라고 지적하였다. 산업 사회를 지배하는 경쟁원리를 기피하며, 타자와 나누는 공동성을 중시해 모든 존대릉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태도다.
온화함은 "자기중심적, 내셔널리즘적으로 작용하며 자타 모두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소시민의식"으로 수렴했다. 피스보트 안에서조차 온화함이 심정적, 폐쇄적인 것으로 변질돼 버렸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제도나 구조를 변화시키는 운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206페이지)

세계 각지를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그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선내 생활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모라토리엄을 종료한 것이다.(210페이지)

공동성을 지탱해주던 목적성(정치성)이 이미 그 빛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헌법9조는 어디로 갔을까.(225페이지)

세계평화라는 목적성 이래에 모인 공동체라기보다 공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목적성을 소환한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226페이지)

경제적 자본(돈)의 감소를 보와하는 게 사회관계 자본(인맥)인 것이다. 돈이 없어도 피스보트에서 만난 친구와 사이좋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갈수 있게 된 것이다.(227페이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실감이나 자기다움을 찾아다니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피스보트를 계기로 해외 지향이나 크리에이티브 지향이 더욱 강해진것으로 보인다. 현대적 불행을 해소해 줄 수 있는게 아니었던 셈이다.(233페이지)

피스보트라는 '승인 공동체'는 사회 운동이나 정치운동과의 접촉성을 담보하기는커녕, 젊은이들의 희망이나 열기를 공동성을 통해 포기시키는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 피에를 부르디외가 내놓은 '사회적 노화'라는 개념에 가깝다. 자신의 바람을 지금 존재하는 객관적 가능성에 맞춰 가고, 그리하여 자신이 처한 존재 상태와 타협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려는, 작용을 일컫는다. 이들(사회적 노화에 빠진사람)은 모든 측면의 가능성을 도중에 조금씩 버리고 매장시켰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한 채 있었기 때문에, 그저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인정받으리라는 희망을 모두 단념한다"고 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냉각이론이다. 비자발적 상실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잘 수용해 평온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행위를 냉각이라고 한다.(236페이지)

현대적 불행이라는 살기 힘듦의 해소다. 후기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기다움을 찾는 경쟁에 뛰어들어야만한다. 현실성의 변환이라는 냉각기능을 갖는다. 살아있다는 실감을 찾는 자기 찾기 여행이라는 지배적 가치에서 이탈해 세계 평화나 지구 일주라는 이념에 참여함으로써 일단 자기 찾기 열기를 식히는데 성공한 것이다. 내역할, 존재이유는 이것이다, 라면서 말이다.(237페이지)
세계평화라는 자신들의 직접 제공한 희망까지도 냉각시켜버리는 효과를 불렀다. 세계형 젊은이들은 피스보트가 만들어 낸 공동성에 참여함으로써 세계평화의 실현이라는 희망까지 냉각시켜갔다. 더 이상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재미있게 살아길 수 있는 것이다. 공동성이야 말로 목적성을 냉각하기 위한 열쇠인 것이다. (238페이지)

바꾸어 표현하면 단념이나 어른이 되다라는 말에 가깝다.(239페이지)

가니족의 여행은 학생에서 기업에서 일하는 사회인으로의 이동, 사회적 지위의 변화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들은 학생시절의 총결산으로서 여행을 시작해, 기업에서 근무하는 어른이 되었다. 피스보트에 탔던 젊은이들은 크루즈 여행을 통해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달리 겪지 않는다. 기껏해야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었다, 라는 정도의 의미뿐이다. 따라서 통과의례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244페이지)

피스보트가 남긴 목적성 없이 공동성만 향유하는 커뮤니티, 무라(마을, 공동체)다. 생활을 함께하거나 유사시에 서로 도와주는 수준의 목적을 갖고 있지만, 사회적 목표 같은 건 자기고 있지 않다. 전근대는 '커뮤니티=무라'의 시대에서 근대라는 '어소시에이션=결사'의 시대로 변모했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245페이지)

희망난민들은 현대적 불행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충동을 더는 억제하지 못해 피스보트에 승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성을 냉각시킨 결과, 작은 공동체로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되고 만 것이다.(246페이지)

사회삭자 미셀 마페졸리도 공유하고 있다. 기존의 종교나 계급을 대신해 스포츠나 음악 따위를 매개로 하는 새로운 정서적 공동체가 출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일시적정서나 감정 공유를 통해 공동성이 성립하는 부족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제럴드 델런티는 포스트모던 커뮤니티라고 정리했다.(247페이지)

개방성만 있다면, 사람은 느슨하게 끊어지지 않는 관계성을 지속해 갈 수 있지도 모른다. 온화한 젊은이들은 개방성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유지해 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249페이지)

수도권청년유니언위원장 다케다 아쓰시는 "투쟁을 위한 ,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안식처"라고 한다. 사회적, 심리적으로도 지칠대로 지친 젊은이들이 고민을 드러내 말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온화한 유대를 형성한다.(250페이지)

우경화로 보이는 현상을 그리 우려할 필요는 없다. 어떠한 활동을 통해 안식처를 갖게 된다면, 공동성에 의해 목적성은 냉각될테다. 그것은 그저 카니발형 공동체로서 찰나의 축제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좌경화한 젊은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251페이지)

외로움이라는 승인의 문제는 해결됐으니, 궁핍함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돈이 없어도 즐겁게 살아간다'는 태도, 줄어든 경제적 자본을 사회관계 자본으로 보완하는 모습은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승인공동체는 분배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도리어 시장 경제를 보완하는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다.(252페이지)
결과적으로 기성사회를 연명시키는데 기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낮은 임금에도 불만없이 일하고, 게다가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조합 등에 가입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득권 측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현대적 불행을 느끼면서도 200만 엔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바라던 대로 피스보트에 승선해 자신들의 손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저렴한 노동력으로서 반항하지도 않고 사회를 지탱해주니까. 혁명 따위가 일어날 리 만무하다. 승인 공동체는 재분배의 문제(경제적 격차)를 덮어주며, 좀처럼 정치운동으로도 발전하지 않는다. (253페이지)
승인공동체는 노동시장이나 체제 측에서 보면 장기판의 유용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254페이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점에선 그 모든 성패를 자기 책임이라고도 생각할 것이다. 거미줄 처럼 각종 자격 제도만 마련해 놓고, 모두가 꿈꾸는 일을 하 수 있는 기회는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은데도 '꿈을 가져라', '꿈을 포기하지 마라' 혹은 '하면된다'라는말이나 하니...처음부터 제대로 된 경력 사다리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오히려 해외 지향 혹은 크리에이티브 지향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바로 사회가 희망 난민을 낳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 노동시장이 제대로 연계돼 돌아가던 시대에 취직은 곧 어른이 되어 젊은시절의 꿈을 단념하는 것이다.(257페이지)

감소한 경제적 자본(수익)을 사회관계 자본(인맥)으로 보완한다는 건 사회관계 자본의 증가에 의해 경제적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승인공동체가 시장 체제를 무너뜨리기는 커녕 오히려 값싼 노동력의 공급원이 돼 버린다고 해도, 나는 이를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와 빈곤 그리고 격차 문제의 책임은 근대라는 시대가 이미 끝났는데도 근본적인 개혁을 뒤로 미뤄온 사회에 있다. 사다리도, 안전장치도 충분히 정비돼 있지 않은 가운데, 젊은이들은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진 말랑말랑한 사회를 살아가는 것만 하는 것이다.(258페이지)

젊은이들에게는 커뮤니티를 마련해 주면된다. 이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젊은이를 단념시키기 위해서다. 학력 사회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런대도 '꿈을 좇아가는 건 중요하다'라는 말을 반복해 내세우는 사회에서 젊은이를 '단념시킬' 필요성이 더욱커지고 있다.(259페이지)

야마다 마사히로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경제적 격차와 함께 자신들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둘러싼 희망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26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