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간 이어진 설 연휴의 마지막날이었던 2016년 2월10일. 이날 오후 정부는 사전브리핑을 열어 오후 5시 엠바고 발표 사안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다는 것이다. 2013년 북측 폐쇄 이후 석달여 만에 공단을 다시 열면서 앞으로 정치적인 영향에 의해 개성공단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던 우리 정부가 북한 제재안의 일환으로 먼저 공단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2월10일] 북 돈줄 끊겠다고…남북관계 끊은 정부
개성공단 내에서 장비와 자재들을 가득 실은 차량 운전자가 11일 오후 개성을 떠나 남북출입국사무소를 통과하다 북한 번호판을 떼어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커졌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다고 하기엔 입주기업 대표들의 충격은 컸다. 불안감 속에도 조업을 해왔던 이들이지만 두 번 다시 폐쇄는 없다던 정부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수 년간 투자했던 공장과 재고가 개성에 남아있는 기업들에게도 사전에 말 한 마디 없이 이뤄진 결정으로 124개 입주기업과 협력기업, 영업기업들은 그날로 회사 운영이 중단됐다. 기업 대표들은 "군사 작전처럼 단행된 정부의 일방적인 폐쇄가 당황스럽다"며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정부는 결정 발표 당일 "3일 내 자산을 정리하라"고 통보하면서 개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차량은 업체 당 1대로 제한해 기업들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나마 북측에서 정부 발표 다음날 바로 개성 출입 중단을 선언해 개성에 남은 자산은 상당부분 가지고 오지도 못한채 고스란히 잃게 됐다.
[2월12일] “정부 믿고 10년 투자해 숙련공 키웠는데…다 잃게 됐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근로자 협의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개성공단의 정상화 및 일자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2월12일] 입주 기업들 “정부에 모든 책임…실질적 피해 보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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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입주기업들의 피해실태 조사는 완료되지 못한 상태다. 특히 이번 폐쇄는 2013년 때와 달리 앞으로 재가동될 수도 있다는 희망도 없다. 북측의 통보가 아니라 남측, 우리 정부의 결정으로 문이 닫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개성 사업 자체를 정리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정부는 '지원하겠다'고 말만할 뿐 피해에 대한 제대로된 '보상'은 약속한 것이 없다. 실효성이 미지수인 대책뿐이다.
보상인 마련이 늦어질수록 기업보다 피가 마르는 것은 개성에서 일했던 근로자들이다. 2013년 공단 운영이 중단됐을 때는 재가동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현지 주재원과 인력을 그대로 고용하고 본사의 다른 업무를 임시로 맡겼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끊겼고 국내나 해외에 다른 공장을 알아봐야 한다. 개성공단 내 기업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온 업체들은 아예 일터를 잃었다.
폐쇄 한 달이 넘어가자 개성 근로자의 70%가 사실상 해고됐다. 사표를 쓰지 않았어도 1개월 혹은 2개월 휴직 후 퇴사를 조건으로 임시 고용 유지 상태이거나, 주재원 전원에 대해 사직서를 내라고 하는 업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 입주기업한 기업들은 저렴한 인건비, 서울과 가까워 절감되는 물류비를 보고 개성에 공장을 차렸다. 이미 대안이 있었다면 외국이던, 국내 지방이던 터를 새로 잡았겠지만 아무리 계산을 해도 개성공장 원가 수준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체지는 없었다. 받아놨던 일감 계약은 취소됐고 불안정성이 커진 기업에 새로 일거리를 주는 곳도 거의 없었다.
원부자재 손실에 납기일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이 나왔고, 신학기 교복생산에 차질도 생겼다.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영업기업, 협력기업의 대표와 임직원들이 16일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정지윤기자
폐쇄된지 한 달이 넘어가자 북측은 개성공단에 있는 자산에 대해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평양에서 우리 입주기업들이 생산해 놓은 완제품이 팔리고 있으며, 거의 10년간 한국 봉제공장에서 일을 배웠던 숙련공들이 중국 공장으로 파견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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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과 근로자들은 정부의 피해보상이 빨리 이뤄져야 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순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한반도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국가의 정책으로 불가피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8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공단폐쇄로 인한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근로자들이 삭발식을 거행했다. 김영민 기자
개성공단의 폐쇄 기간이 길어질 수록 입주기업들의 고통은 커졌지만 정부의 태도는 변화가 없었다.
정부는 개성공단이 북한의 핵개발 자원 확충에 이용됐다는 점을 폐쇄 이유로 들었지만 공단 문이 닫힌 반년간 북측은 장거리 무수단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했다. 공단 전면중단을 통한 대북제재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최순실의 관여로 정부가 무리하게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 이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선 새정부가 공단의 문을 다시 열 수도 있다는 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공단 폐쇄는 1년을 넘긴 시점까지 여전히 진전의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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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됐고, 5월9일 치른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입주기업들은 방치된 공장을 둘러보기 위한 방북을 재추진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폐쇄가 업체간 계약을 지키지 못한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는 법적 해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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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만 2년이 가까워서야 입주업체들이 하루아침에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2016년 2월 이뤄진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선언이 ‘고도의 정치적 통치행위’의 일환은 맞지만 헌법과 현행법을 어긴 ‘초법적 행위’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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