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시&이슈/집 이야기

[집의 재구성 살고 싶은 家](4) 꿈꾸는 청춘의 고시원

by bomida 2016. 12. 5.




해가 저문 서울 신림동 고시촌은 제법 어둑했다. 밤이 되면 건물마다 작은 창으로 새어 나오는 희끄무레한 형광등 불빛들만 몇개 보일 뿐인 조용한 동네다. 지난 17일 밤, 고시촌에선 다소 낯선 주황색 둥근 전구 등이 옥상을 환히 밝힌 건물을 찾았다. 치킨과 맥주, 간단한 간식과 음료들이 차려진 식탁에 예닐곱 청년들이 둘러앉았다. 낮에도 밤에도 고요한 고시원 골목의 정적을 깨고 낮은 음악 소리와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쉐어어스 옥상에서 입주자들이 저녁 모임을 갖고 있다. 이석우 기자

고시촌 언덕 초입에 자리 잡은 ‘쉐어어스’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입주자들의 저녁모임이었다. 1년 전 리모델링된 이 건물에는 19명의 청년들이 살고 있다. 처음 보는 이들과는 첫인사를, 오가며 마주치던 이들과는 모처럼 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옥상의 저녁자리에 참가한 직장인 유은경씨(25)와 대학원생 김나래씨(25)는 3인실에서 함께 사는 ‘방친구’ 사이다. 3명이 각자의 방을 갖고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 거실은 함께 쓴다. 





■공간 그리고 생활을 공유하는 ‘방친구’ 


“취직하면서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혼자 살게 됐어요. 쉐어하우스를 찾다 보니 이곳은 입주자 활동이 많을 것 같아 맘에 들었어요. 한방에 함께 살거나, 바로 옆방에 사는데 소통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1층에 내려가 부엌을 쓰거나 라운지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옥상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 방이 작아도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대만족이에요.” 입주 7개월차인 은경씨가 말했다.


“기숙사 신청을 했다 떨어져 이곳을 숙소로 구했어요. 혼자 자취하는 건 위험할 것 같았고, 여럿이 쓰는 곳이었으면 했거든요.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걱정 좀 했죠. 들어오기 싫은 집이 돼버리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요.” 걱정은 기우였다. 나래씨는 은경씨가 있는 3인실 맞은편 방에 지난 9월 입주했고, 두 동갑내기는 금방 ‘절친’이 됐다.


“우리보다 먼저 입주한 직장인 언니랑 셋이서 저녁도 같이 먹고, 토요일엔 함께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해요. 늦은 밤 내 방에 있다가 누군가 귀가하는 기척이 나면 나가서 인사도 나누고 들어오기도 해요.”


보통 동네 식당을 가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나눠 먹기도 하지만 본가에서 엄마가 만든 반찬이 있으면 거실이나 건물 1층의 공용부엌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날처럼 저녁 모임이 있는 날엔 옥상에서 단체로 밥도 먹는다. 


빨래는 공용 세탁실에서 한 뒤 3인실 안의 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널어 말린다. 이불 빨래는 옥상으로 가지고 와 말리기도 한다. 집 안 청소는 시간이 남고 ‘마음 내키는’ 사람이 해치운다. 여자 셋이 사는 방이지만 생활패턴이 서로 조금씩 엇갈려 큰 불편은 없다. 직장인인 두 사람은 시차를 두고 일찍 출근하지만 학생인 나래씨는 조금 늦은 오전에 등교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은경씨는 “동네에 친구가 없다 보니 한 방 친구들에게 의지를 많이 하게 된다”며 “집을 들고나는 시간이 달라도 하루에 한번씩은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시원을 리모델링한 서울 관악구 서림길 셰어하우스 ‘쉐어어스’의 3인실에 함께 살고 있는 김나래씨(왼쪽)와 유은경씨가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고시원’은 집이 될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기는 소리마저 ‘소음’인 고시원에서 입주민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겸상해 식사하는 이곳은 7명의 젊은 건축가들이 저렴한 청년주거를 고민하며 재구성한 공간이다. 4층 건물에 44개의 조각난 방들이 복도를 따라 줄지어 있던 고시원을 조금 ‘살 만하게’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일이다. 신림동 고시촌은 고시생이 줄면서 건물마다 공실률이 30~40%씩 되던 참이다. 이젠 공부보다는 저렴한 주거비를 좇아 온 청년들이 늘었지만 시설이 좋지 않은 곳은 쉽게 다시 채워지지 않고 있다. 돈을 들여 원룸으로 개조된 곳은 임대료가 훌쩍 뛰어버린다. 


정부가 쾌적한 생활을 위한 최저 주거기준으로 정한 면적은 1인당 14㎡(4.2평). 여기에 한참 모자라는 고시원은 최근 세입자를 늘리기 위해 불법으로 횡행하는 ‘방 쪼개기’처럼 법적 테두리 밖에 있는 공간이었다.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500㎡ 미만) 혹은 숙박시설인 고시원은 실질적인 주거가 이뤄지는 만큼 최소한의 규제가 이뤄지긴 하지만 여전히 채광, 방과 방 사이 경계벽 두께에 대한 규정(근린생활시설의 경우)도 없다. 층간소음에 대한 기준이 올해 5월에서야 원룸(도시형 생활주택) 수준으로 정해졌을 뿐이다. 


방안에 취사시설과 세탁기는 설치할 수 없고 화장실이 딸려 있더라도 욕조가 있으면 안된다. 다만 공부를 위한 책상은 갖춰야 하는 다중생활시설, 고시원은 거주자 편의보다 산업적인 논리가 먼저였다.




‘쉐어어스’를 만든 사회적기업 ‘선랩(Sunlab) 모두행복한생활공간연구소’가 분석한 고시원과 하숙집, 원룸에서 사는 1인 가구의 생활을 보면 고시원은 식사 시간이 평균 19분으로 하숙(57분), 원룸(46분)보다 훨씬 짧다. 수면을 제외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도 고시원은 5시간21분으로 하숙(6시간9분), 원룸(6시간6분)보다 짧은 편이다. 특히 고시원에서는 취미생활이나 휴식을 취하는 기분을 느끼는 시간이 거의 없다. 삶을 위한 주거 공간이 되지 못하는 탓이다. 


방 크기가 너무 좁아 생기는 문제라 개선할 방법이 많지는 않지만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 젊은 건축가들의 생각이었다. 특히 서울에 혼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주거빈곤율은 36.3%로 전국 평균(14.8%)보다 2배 이상 높다. 방값이 싼 고시원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는 이들도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한 사람당 방 크기를 많이 넓힐 순 없어도 ‘체감’ 면적은 늘릴 수 있다. 조각난 방들 사이로 공동체를 꾸릴 접점을 늘리면 파괴된 장소성도 살릴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청춘동’에서 함께 꿈을 꾸는 청년들 


새로 고친 쉐어어스의 방들이 기존 고시원보다 월등히 넓지는 않다. 2인실 입주자들은 한 사람당 6㎡가 조금 넘는 공간을 갖는다. 3인실과 6인실은 크기가 더 작아 개인 방이 각 4.6㎡ 정도다. 하지만 방문 밖에 거실과 화장실뿐 아니라 전체 입주자들이 함께 쓰는 부엌과 세탁실, 라운지까지 입주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여럿이다. 복도도 단순히 방을 가르는 경계선에서 1층의 부엌으로, 세탁실로, 옥상으로 가는 통로가 됐다. 


쉐어어스 복도 벽면에 쓰인 ‘청춘동(靑春洞)’이란 이름처럼 이런 공유공간에선 같은 고시촌에 살고 있는 다른 이들과도 만날 수 있다. 1층 라운지는 입주민이 아니더라도 2000원을 내면 하루종일 쓸 수 있고, 한 달에 1만원이면 언제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2~4층의 스터디룸은 한 사람당 2시간에 2000원을 내고 사용하며 스터디룸이나 1층에 있는 독서실은 한 달에 11만원이면 모두 쓸 수 있다. 고시촌에 사는 이들 중에도 꽉 막힌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을 답답해하거나 약간의 소음이 있어야 더 집중할 수 있는 이들이 찾아온다. 옥상에서 저녁모임이 있거나 1층에서 다 같이 영화를 보는 날이면 입주자들과 공간을 쓰는 이들이 어울려 자리를 한다. 


쉐어어스 3인실의 구조. 3명이 각자의 방을 갖고 화장실과 거실을 공유한다.


한동네에 사는 비슷한 청년들 간의 접점을 만드는 의미도 있지만 공간을 공유해 얻는 수익은 입주자들의 월세를 낮추는 데 재투자되기도 한다. 


혼자 사는 젊은이들이 집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방값이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비싸다’고 느끼는 경계선인 월 30만원을 목표로 했지만 주택이 아닌 고시원은 부가가치세 10%가 추가로 붙고, 소방법에 맞춰 방 하나 크기의 공간을 빼야 해 월세는 35만원이 됐다. 2층 침대에서 생활하는 2인실은 조금 싼 월 27만원을 낸다. 주변 원룸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43만~45만원 정도, 화장실만 있고 부엌은 없는 하숙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30만원 정도를 낸다. 보통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25만~30만원이고 신축은 38만원까지 올라간다. 지금 방값은 주변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공간 수익이 더 많아지면 월세는 낮아질 수 있다. 


수도·전기·가스요금은 층별로 계산돼 사람 수로 나눠 낸다. 바닥 난방을 하고 있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전기장판을 틀어야 할 경우 양해를 받고 쓴다. 


언제든 돈이 모이면, 조금이라도 넓고 싼 집이 나오면 떠나고 싶은 것이 고시원이지만 6개월 마다 이뤄지는 계약을 연장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은경씨는 “자기 방만 쓰는 것이 아니라 거실과 1층 부엌, 건물 내 많은 공유공간도 함께 쓰니 이 정도로 생활반경이 넓은 집을 이 가격에 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래씨도 “기숙사에서 입주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2인실이 20만원인데 취사가 안돼 세끼를 다 사먹어야 한다”며 남기로 했다고 했다.


두 친구는 ‘장기 거주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농담 섞인 걱정도 하지만 방에는 돈을 모아 장만한 거울과 체중계, 색을 맞춘 슬리퍼 세짝이 놓여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셋은 은경씨 방에 모인다. 한 명은 침대 위에, 한 명은 책상 앞 의자에, 남은 한 명은 바닥에 앉아 수다를 떨며 하루를 마감한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요.” 나래씨가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