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 봄이 왔으나 봄을 느낄 수 없다. 2년 전, ‘아랍의 봄’의 훈풍을 꿈꿨던 이 땅에는 갈등과 반목이 자욱한 겨울 한파가 닥쳤다. BBC가 뽑은 지난 2년간 아랍에서 일어난 10가지 주요 사건을 보면 급변한 지역 정세가 읽힌다.
2010년 12월 취업 대신 노점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튀니지 청년의 죽음은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불완전 고용과 실업에 고통받던 아랍 젊은층의 현실을 대변하며 혁명을 촉발시켰다. 부패에 대한 분노, 올라가는 식품값, 자유에 대한 결핍은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 축출로 이어져 아랍 붕괴 도미노의 서막을 알렸다.
아랍 최대 인구를 가진 이집트는 무적 경찰과 맞선 시위대가 타흐리르 광장을 점령했고 이들은 예멘·바레인·리비아·시리아로 혁명을 전파했다. 바레인에 번진 시위에는 사우디아라비아군이 투입됐는데, 시아파 대응에 수니파가 동원되면서 걸프권 국가들의 종파 갈등을 양산했다. 리비아로 옮아간 혁명 움직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민간인 보호를 위한 결의안을 통과, 독재자 카다피에 사형 집행 영장을 내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후 리비아의 카다피는 고향 근처 배수구에 숨어있다 과격하고 불명예스러운 방식으로 반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은 첫 민주화 시위 뒤 오랜 침묵 끝에 “외국의 음모가 개입됐다”고 연설했다. BBC는 “이 때 아사드가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시리아에 더 평화로운 미래가 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예멘에서는 33년간 집권한 알리 압둘라 살레가 물러났고, 그 사이 이집트는 첫 자유 선거로 대통령이 뽑혔다. 정치·경제적 과제가 많았던 새 지도자는 새 헌법을 둘러싼 논란을 일으켜 국가 분열을 가져온 상태다. 아랍 혁명 후 지난 11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간 첫 충돌이 일어났는데 그 결과는 중동 내 힘의 지형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줬다. 이스라엘은 여전한 서방의 지지와 막강한 군사력을 증명했으나 새 중동에서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숨가쁜 2년 뒤에 찾아온 현재의 중동을 보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
혁명의 발원지 튀니지 총파업 예고
혁명의 발원지 튀니지는 노동계가 총파업을 예고했다. 제1당 엔나흐다당의 뒷배로 알려진 강경 이슬람단체가 노동연맹을 습격한 것이 발단이 됐다. 온건 이슬람주의 엔나흐다당과 연합했던 세속주의 성향의 공화의회당(CPR)은 연정 탈퇴를 경고했다. 이슬람 세력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국민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이다. 인권운동가 출신 마르주키 튀니지 대통령이 소속된 CPR은 내각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맞물린 두 사건은 튀니지 내 심화된 갈등 상황의 단면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살라피스트가 주도권을 쥐면서 국내 정치는 신정 수준으로 종교색이 짙어졌다. 자유와 민주화를 원하는 세속주의 진영과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슈피겔>은 “아랍의 봄은 2년이 지났으나 살라피스트들이 튀지니 여성과 예술가, 지식인들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이 정부가 혁명으로 신정국가를 만들기 위한 근본주의 이슬람 진영을 암묵적 지원하고 있다고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정치적 불안은 궁핍한 서민 생활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된 민주화 시위로 벤 알리 대통령 정권은 무너졌지만 경제난 탓에 반정부 시위는 또 다시 격화됐다. 튀니지는 지난달 국가 비상사태를 9번째 연장했다.
아랍의 혁명 바람을 증폭시킨 역할을 했던 이집트는 같은 시간 수도 카이로에 군부의 탱크가 다시 등장했다. ‘현대판 파라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30년만에 퇴진하고 지난해 모하메드 무르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새 헌법 제정을 앞두고 대통령 권한을 강화한 무르시 선언이 문제가 됐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슬람주의 무슬림형제단 등 찬성측과 야권·시민단체가 모인 반대측이 시위 과정에서 충돌하면서 6명이 사망하고 650여명이 다쳤다. 그러나 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국민투표는 강행됐고 시위대는 대통령궁 주변으로 진격했다. 이에 무르시는 이집트군에 치안 유지와 정부 시설을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실업률은 높아지고 물가는 치솟아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자이퉁은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르시가 유일하게 증명한 것은 8500만 국민을 통합하지 못한 무능함”이라면서 “궁 치안을 위해 군사력이 다시 소환된다면 이집트의 정치 실험은 조속히 끝나버릴 것”이라고 전했다.
독재자 카다피가 축출된 뒤 60년만에 민주 선거를 치른 리비아는 여전히 치안이 불안하다. 지난 9월 벵가지 미국 영사관 습격은 국내에 이슬람근본주의 테러단이 깊숙히 들어왔음을 방증하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폭발돼 일어났다는 시각도 있다.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을 몰아낸 예멘은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여기에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겹쳐 여성 인권은 후퇴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130여명의 예멘 여성을 조사한 결과 5명 중 4명이 혁명 이후의 삶이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먹을 거리 부족이 원인이다. 유엔 세계식량프로그램은 예멘 전체 인구의 절반이 충분히 먹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과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반군이 22개월째 내전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의 상황도 좋지 않다.
봄을 기다렸던 아랍권의 악화된 상황은 수치로도 보인다. 튀니지의 실업률은 13% 수준에서 25%로, 연 3% 수준이던 물가상승률도 5.5%로 뛰었다. 이집트는 국가 경제의 버팀목인 관광이 직격탄을 맞았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2010년 1400만명이 찾아 13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던 이집트 관광 산업은 지난해 관광객 수가 32% 줄었다고 밝혔다. 혁명이 휩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찾는 방문자 수도 올 1~5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9% 줄었다. 혁명으로 정권의 투명성을 높이려했지만 부패 역시 심화됐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집계한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튀니지는 73위에서 75위로, 이집트는 112위에서 118위, 시리아는 129위에서 144위로 하락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봄’은 없었던 것인가. 이는 단어(spring)에 갇힌 기대가 만든 착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혈이 낭자한 갈등이 반복된다고 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외신들은 ‘Arab Spring’ 대신 ‘Arab Uprising’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과정을 겪고 있는 아랍이 내년부터 경제가 서서히 회복돼 이후 정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기대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반기 중동·중앙아시아지역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이집트·리비아·튀니지·예멘의 경제가 2013년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리비아를 제외한 이들 국가 국내총생산은 내년에 3.6% 늘어 지난해(1.2%)와 올해(2%)보다 늘어난다는 것이다.
봄(spring)을 ‘생명이 잉태되고 새로움이 다시 찾는 때’로 본다면 아랍의 사정과 같을 수 있겠다. 그러나 ‘꽃과 나비가 만연한 시기’를 바랐다면 여전히 아랍은 겨울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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