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가 유명해지면 세입자만 쫓겨나니 안타까워
마을 가꾸는 주인공들이 떠날 걱정하지 않도록 힘이 되고 싶어요”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이다. 특히 도심 속에 마을이 생기면 이야기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도시 공간에 숙명이 있다. 임대료가 올라간다. 작은 모퉁이 땅에서도 부를 일궈내는 서울은,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신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건물의 소유권은 마을생태계를 좌우하는 권력이 됐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은 주택들 사이로 옛 경의선 기찻길이 가로지르고 있다. 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주택만 빼곡하던 주거지였다. 예술가들이 공방을 내고 마을만들기 활동이 시작되면서 활기가 돌았고 지금은 건물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는 곳이 됐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 마포구 연남동은 이 건물주의 힘이 최근 몇 년 새 막강해진 곳이다. 지난달 23일 연남동 한 건물에서 인향봉씨(48)를 만났다. 결혼하면서
남편이 살던 마포로 와 연남동과 서교동에 기반을 잡고 15년째 살고 있다. 이 일대에 건물 세 채를 가진 건물주이기도 하다. 올 초
‘준노른자급’ 연남동 골목에 건물 한 채를 더 샀다.
“네 번째 건물은 속상해서 샀어요. 무리를 했죠. 동네가 재밌는 곳이 된 게
다 그 사람들 덕인데, 왜 당사자들이 쫓겨나죠? 우리끼리는 마을이 지속가능하려면 동네가 뜨기 전 ‘알박기’로 사놓은 건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와요.”
그가 말하는 ‘사람들’은 마을에 벼룩시장을 서게 하고, 마을방송국을 만들어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다. “우리끼리 재미있는
동네였어요. 여름에는 오이지, 겨울에는 김장을 담가 혼자 사는 어르신이나 소년소녀가장에게 나누죠. ‘연남동의 역사를 배우자’며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감자를 굽고, 떡볶이를 해 먹으며 얘기해요. 소소하게 즐거웠던 마을이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동네의 변화는 마을이 유명세를
치르는 바람에 찾아왔다. 연남동은 삼각형 모양의 평평한 대지 중앙을 경의선이 가로지른다. 기차가 멈추고 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 대로에서 한참
들어간 후미진 골목, 기사식당 말고는 변변한 가게가 들어선 상가도 없는 작은 주거지였다. 샛길마다 단독·다세대주택이 빼곡해 옆집과 앞집이 오랜
시간 마주 보며 살아온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 큰길 건너 홍대에서 싼 임대료를 찾아 온 예술가들이 옛 폐선부지 인근에 공방을
내기 시작했다. 마을활동 단체도 들어와 주민들과 같이 개성을 담은 물건을 만들어 내놓는 프리마켓을 열고 축제도 만들었다. 골목에 활기가 돌자
카페 등 새 가게가 하나, 둘 생겨났다.
입소문이 난 마을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그리고 사달이 났다. 몇몇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건물주에게 “비싼 값에 물건을 팔아주겠다”거나
“임대료를 더 받아주겠다”고 말을 건넸다. 시세가 올라 비싼 값에 건물을 사들인 새 주인들은 임대료를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동네의 땅값과
건물값은 비쌌지만 마을에 원래 있던 가게나 단체들의 벌이가 많아진 것은 아니다. 연남동을 만들어 낸 주체들이 오른 월세를 낼 수 없어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연남동 주민 인향봉씨. 마을 사업하는 단체가 입주하면 10년간 현 임대료 수준에서 맘 편히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줄 예정이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도깨비커피전문점’이라고 진짜 맛있는 원두를 양심적으로 팔았던 곳도 떠났고,
제주산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러 갔던 ‘북 치는 돼지’도 이사를 갔어요. 김장 날 300~400잔씩 커피를 내주던 ‘커피정’이라는 집도 임대료가
올라 곧 떠날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프리마켓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일상예술창작센터’도, 동네 소식을 알리던 ‘마포FM’도 마을을 즐겁게
만들었다가 가겟세가 올라 연남동 안의 다른 자리로 옮겼다.
인씨는 4번째 건물의 4개층 모두 마을단체·기업에 임대하기로 했다. 계약 기간은 10년.
그 사이 보증금이나 월세 인상도 없다. 보증금이 없으면 다달이 월세만 줘도 된다. 그 정도면 건물을 살 때 진 빚의 이자는 갚을 수 있단다.
가뜩이나 부동산 가격이 오른 연남동에 무리해서 공간을 마련하기로 결심한 데는 이유가 있다. 많은 가게가 싼 임대료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지역에 기반을 둔 마을단체들은 이곳이 아니면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인씨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마을단체들이 그의 건물에 머무는 동안, 공간 문제의 돌파구가 마련되길 바라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정부나 서울시가 해결책을 내놓을지도
모르고, 장기대출을 지원해 임대료를 내는 대신 나라에 이자를 갚는 식으로 바꾼다든가, ‘착한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줄 수도 있지 않으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니면 그새, 연남동은 ‘제2의 신촌’이 될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임대료가 치솟아 작은 가게들은
떠나고, 프랜차이즈 상점만 남게 된 신촌은 결국 상권이 무너졌다. 월세를 절반으로 낮춰도 입주자 없이 공실로 남은 건물들이
넘쳐났다.
최근 이 지역에서 건물주 11명이 세입자와 계약 기간·임대료를 논의한 뒤 임대차 협약서를 만드는 모임을 꾸리고, 시세의
절반도 안되는 임대료를 받는 ‘착한 건물주’가 나오는 것은 뼈아픈 학습 때문이다. “신촌은 대로변에 있고,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백화점도
있잖아요. 그런 것도 없는 연남동은 거품이 꺼지면 털썩 주저앉을 수도 있으니 더 위험하죠.”
건물주인 그는 세입자이기도 하다. 8년
전, 동네 건물 3층에 개인 작업실을 얻었다. 마을의 직장맘들이 딸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이곳에 맡기면서 지금은 미술학원이면서 공부·놀이방이
됐다. 인씨가 오기 전에는 5년간 사람이 쓰지 않았던 공간을 쓸고 닦아 30여명의 아이들이 형제처럼 어울려 방과후 시간을 보낸다. “1명당 월
15만원씩 수업료를 받는데 월세 내면 끝이에요. 집주인이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을 더 올려달래요. 주변에 바뀐 것도 없는데요. 저도
버틸 수가 없으니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죠.”
인씨는 큰 건축사무소 팀장으로 일했고, 남편은 대기업을 다니며 맞벌이 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돈을 모았다고 했다. 종잣돈으로 건물을 사고 세를 받으니 돈이 더 모여 또 건물을 샀다. “생각지도 않게 건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갑질은 말자’고 남편과 다짐했어요. ‘없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자’고요. ‘무슨 멋진 척이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같이 살아가는 게 마을이고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돈 벌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모한 결단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건물주들에게 “미쳤다”는 말도 듣는다고 했다.
“돈과 연관된 판단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한 번 올린
월세는 내리기 힘든데 연남동은 세가 올라갈 이유도 없이 올라가고 있어요. 결국 그 자리에 아무도 못 들어가고 계속 비어 있을 거예요.
마을단체들이 들어가고 싶어 했던 단독주택들은 너무 낡아 겨울엔 너무 추워서 살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근데 월 400만~500만원을 달라고 해요.
이게 미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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