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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집 이야기

활력 잃은 주택지에 ‘공동체 모임’ 활성화…‘떠날 동네’가 ‘살고 싶은 동네’로

by bomida 2014. 12. 23.



ㆍ서울 화곡본동 주민모임 ‘짬’
ㆍ이웃 아이들 함께 돌보며 텃밭 운영·취미 활동도 마을주택 구입 가구 늘어

구불구불한 좁은 길이 얽혀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낡은 다가구 주택과 빌라, 2~3층짜리 상가 건물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기초생활수급 가정 500가구가 살고, 매입임대주택도 250가구나 된다. 4만명이 모여 사는, 서울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곳이지만 ‘돈 모으면 떠날 동네’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 곳이어서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에 주민공동의 공간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육아·일자리·도시농업·취미활동 모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화곡본동을 점차 ‘계속 살 동네’로 여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7일 봉제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골목의 3층짜리 상가건물에 있는 ‘공간 짬’을 찾았다. 한쪽 벽에는 동화책이 빼곡하고, 거실에는 큰 탁자 두개가 놓여 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부엌도 딸려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전업주부들이 지난 9월 만든 공간이다. 오전에는 동네 엄마들, 오후에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짬짬이 오시라’는 뜻으로 이름을 ‘짬’이라고 짓고, 누구든 올 수 있도록 개방했다. 엄마들은 지난해부터 화곡마을살이 사업을 시작한 서울복지재단 활동가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공동출자해 공간을 만들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에 공동육아 주부들이 마련한 ‘공간 짬’에서 지난달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이 모여 노래를 하고 있다. 서울복지재단 제공


‘공간 짬’이 꾸며지자 하교 후 학원 가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려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아이들에게 엄마들이 간식을 챙겨 먹이고, 학원에 보냈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는 아이는 서른명으로 늘었다.

화곡초등학교와 화일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짬’을 회의공간으로 활용한다. 동네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쳐 주거나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요리를 해주러 들른다. 동네교회에서는 성금을 보내주기도 한다. 동네 전체가 아이들을 공동으로 돌보고 있는 셈이다.

화곡본동의 주민모임은 어느새 7개로 늘었다. 10가구, 40명이 도시 텃밭을 가꾸고 있고, 30~40대 아빠들이 합창단을 만들었다. 동네사람들이 ‘짬’에 모여 하우스맥주, 양초를 만들기도 하고, 각자 음식을 해와 송년회도 열었다.

공동육아 가정 중에는 동네의 집을 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기업 등에서 만든 일자리로 청년·노인들의 자립을 돕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김숙희씨는 “결혼 뒤 5년쯤 지나면 이사하려고 했지만 어디서 이런 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 생각을 바꿨다”며 “앞으로 계속 살 동네에서 어떻게 더 잘살까 궁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