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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집 이야기

하루를 머물러도 주민이 될 수 있는 마을…신촌 ‘봉원마을’

by bomida 2015. 7. 22.



·신촌동, 봉원동 하숙집 주인들과 청년들의 실험



서울 신촌 번화가를 조금 벗어나면 ‘이대후문쪽’이라 불리는 한적한 동네가 나온다. 얕은 안산을 낀 오르막길을 따라 골목마다 하숙집과 원룸이 빼곡한 봉원동과 신촌동이다. 수십년간 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의 하숙촌이기도 하다.

지난 20일 오후 찾은 마을은 저 멀리 큰 길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초입에서 봉원사로 이어지는 봉원사로를 따라 10여분을 걷는 동안 만난 이들은 손가락에 꼽는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살지만 낮에는 모두 밖으로 나가고, 밤이 돼야 돌아오니 ‘절간’ 같은 조용한 동네가 됐다.

졸업을 하거나 집세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청년 세입자가 지역 구성원 열 명중 여덟 명. 잠만 자는 집에 오는 이 하숙생들은 동네의 주민은 아니었다.

최근 이들이 마을에서 모여 공부를 하고, 친구를 불러 만나며 무엇인가 배워갈 수 있는 곳이 될 있을지에 고민이 시작됐다. 원룸·하숙집 사장님과 마을의 청년, 서대문구는 ‘마을여행사업단’을 꾸렸다. 사업단장을 맡은 이태영 신촌민회 사무국장은 “집을 갖고 소비력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세입자와 공방을 얻어 일하는 작업자, 잠깐 들른 방문객도 주민이 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며 “하루를 머물러도 그들이 주민이면서 주권자가 될 수 있어야 청년이 마을에서 소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을여행사업단은 마을의 위기가 만들어 낸 대안이기도 하다. 내년 말 연대·이대 기숙사 추가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주민들은 현재 하숙방의 절반 가까이가 공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나 쉐어하우스로 단기 숙박 수요를 끌어올 수도 있지만, 우선 젊은이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돼야한다는 판단이다.

이는 세를 들어 살고 있는 학생들이나 동네를 구경하러 여행을 온 젊은이들이 마을에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가 관건이다. 사업단원이자 연세대 학생인 안정배씨는 “특정 지역에 가서 둘러보는게 여행이 아니라 지역이나 그 사회에 참여하고 무엇인가 배워가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이사를 와서 살만한 곳인가 보려고 여행을 가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사업단을 마을목공소를 차려 동네에서 쓸 평상을 같이 짜고, 누구든 들을 수 있는 가구제작 강의를 준비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마을밥상을 만들어 주민들이 끼니를 때우면서 건강한 밥상차림을 배우려는 외부인들을 받는다. 고장난 자건거를 모아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하고 도색하는 수리점을 내면 인근 학생들도 찾아올 수 있다. 봉원사와 안산자락길 곳곳에 숨어있는 전설과 소원을 비는 바위들도 소개하고 자락길은 연희동과 홍제동, 서대문형무소까지 이어지는 여행길로 다듬는다.

외지의 청년들이 찾는 곳이 되면 현재 숙박과 임대 등 부동산 중심인 봉원·신촌동의 지역경제의 흐름도 바뀌고 여기에 사는 청년들의 주민성도 달라질 수 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타멜이나 태국의 카오산처럼 여행자 요구에 맞춘 상권이 형성되기도 한다.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일대 하숙집 모습이다. 봉원동과 신촌동 주민들은 하숙생 청년 구성원들과 외지 젊은이들이 하루를 머물러도 주민으로 살 수 있는 동네로 바꾸기 위해 마을여행사업단을 만들었다. 권호욱 선임기자


소위 ‘뜨는 마을’에서 청년들이 밀려는 현상도 미리 막아볼 생각이다. 하숙집을 운영하는 주민 100여명은 신촌봉원마을협동조합을 꾸려 여행마을 이후도 준비 중이다. 조성보 조합 이사장은 “사람들이 오는 곳에 됐다고 임대료를 올리면 여기도 끝난다. 조합에 임대료조정위원회를 둬 임대료를 어느정도 선에서 고정시켜 연남동이나 신촌처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원이 전체 집주인의 30%정도지만, 이 같은 장치가 생기면 지역의 문화를 만든 원주민들이 터전을 잃어버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 조 이사장은 “임대료 때문에 세입자와 집주인이 얼굴 붉힐 일은 없게 만들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연말까지 마을은 우선 새로운 주민과 동네를 만들기 위한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신촌동과 봉원동에 집을 가진 사람들과 신촌의 활동가, 도시계획자뿐 아니라 나중에 이곳에 살기 위해 오게 될 잠재적 마을사람들도 같이할 예정이다. 이태영 국장은 “사는 지역과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 ‘주민’에 대한 개념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