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0년을 맞은 성미산마을을 갔었습니다. 도시에서 왜 마을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도 하게 됐고, 성숙한 마을공동체 안에 살고 있다는 주민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이 주민들이 만든 카페였는데요. 십시일반 출자해서 만든 작은마을카페는 마을의 이야기가 오가는 사랑방입니다. 주민이 주인이자 스스로 고객이 돼 공동체 소비가 이뤄지는 곳이죠. 인터뷰하며 먹었던 미숫가루 아이스크림도 존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곧 문을 닫게 생겼다네요. 주민들이 모이는 이 곳 주변으로 땅값, 가겟세가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작은나무카페가 없어지고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온다고 사람들이 지금처럼 그 자리에 새로 생긴 가게를 갈까요?
젠트리피케이션 취재를 하러 독일에 갔을 때 옛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예술가가 그랬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예술의 경지만큼 어렵다고. 성미산마을에서 만난 상인은 통일만큼 어렵다고 했습니다. 어렵다고 외면할 수는 없죠. 집단지성과 사회적 공감대가 가장 중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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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성미산마을이 있는 서울 마포구 성산1동의 ‘작은나무카페’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석달 뒤 문을 닫아야 하는 가게의 이야기를 들으려 모인 마을 안팎의 주민들이다.
이 카페는 마을에 사는 200여 가구와 개인 조합원 70여명이, 5만원에서 100만원씩 출자해 2008년 만들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계속 메뉴에 있으면 좋겠다며 조합원이 된 손님도 있다. 주민들이 주인이자 단골이 됐고, 8년간 쉴새없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마을사랑방 역할을 했다. 도심 속 마을의 대표로 꼽히는 성미산마을과 함께 마을기업의 대명사로 유명세도 탔다.
상황은 지난해 건물주가 바뀌면서 변했다. 새주인은 오는 7월 계약만료 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최수진 작은나무협동조합 대표는 “지대와 임대료, 권리금이 상승하면서 주변 건물들이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이 투자금을 환수하려면 우리같은 세입자들로는 충분치가 않으니 나가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가 처음 생겼을 때 평당 2000만원을 밑돌았던 상가 매매가는 거의 3000만원에 육박한다. 주민들이 마을에 활력을 만들려고 시작한 활동이 주민들의 공간을 뺏는 ‘화근’이 된 셈이다.
서울 마포 성미산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 ‘작은나무’.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최 대표는 “외부에서 보면 동네상권을 낙관하겠지만 수익이 큰 곳이 아니다. 카페도 출자자이면서 고객인 마을사람들이 와서 잘됐던 것이고 수익을 목표로 한 가게도 아니었다. 지금 매출보다 더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만 투자한 금액 때문에 임대료를 올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건물이나 거리가 정비돼 임대료가 오르면 기존 주민들은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공간이 곧 돈’인 서울에서 지역 기반의 공동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크고 작은 가게들의 주인이 수시로 변하고 있는 마포구 연남동은 임대료가 저렴한 공간을 찾아 홍대를 떠난 예술가와 음악가, 마을활동가들이 3~4년 전 터를 잡은 곳이다. 연남동에 있는 일상예술창작센터의 김영등 대표는 “홍대놀이터 인근에서 시작해 점점 서교동, 동교동으로 밀려 조용한 주거지였던 연남동까지 왔다. 길지 않은 마을 커뮤니티 활동마저 이 곳을 ‘뜨는 동네’ 분위기로 만든 것 같다”며 “이제 연남동의 건물은 대로변은 평당 4500만원이 넘고 길 안쪽도 2500만원 이상”이라고 했다.
연남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홍대 상권의 확장, 경의선 지하화에 따른 공원화 결정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김 대표는 “개방형 공원이 주변 주거와 상권에 미치는 효과가 뻔한데 정책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검토되지 않았다. 단순히 자본문제가 아니라 정책문제도 얽혀있다”고 말했다.
홍대 앞 작업실을 잃은 예술가 중 일부는 지역의 멀리 옮겨 버려진 공장이 많았던 등포구 문래동으로 가기도 했지만, 연남동 활동가들은 임대료가 싸다고 해서 가까운 서대문구, 은평구로도 갈 수가 없다. 성미산마을처럼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홍대 앞 상권이 인근 상수동 주택가까지 확대되면서 골목마다 카페가 들어섰고, 이 같은 현상은 합정동과 연남동, 성산동까지 확산되고 있다. 김기남 기자
후미진 동네 어귀에 벽화를 그린 화가는 이 그림 때문에 동네를 떠나야 하고, 카페 하나가 생기면 인근 피아노 학원과 세탁소, 문방구가 사라지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김남균 회원은 “마을생태계를 건물주가 좌우하는데 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구조가 지역에서 문화가 발생해 자리잡는 것을 방해한다”며 “한국은 상가 임차인의 계약을 5년만 보호하지만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은 30년, 일본은 기한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돼 시나 자치구가 가진 유휴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사례를 늘리고는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김 대표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에 마을만들기가 중심에 있지만 이는 하드웨어(뉴타운·재개발)보다 돈은 더 들어가고 환수할 방법은 적다”며 “수 년간 마을에 사람들이 남아 생활하면서 돈이 돌아야만 환수가 가능한데, 임대료 때문에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염리동에 터를 잡은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의 윤성일 이사는 “주거환경관리사업도 시민이 주도하지 않고 공간의 공공성,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공간의 운영 문제가 결국 불거진다”고 전했다.
최근 청년 10여명이 청량리 일대 부흥주택에 들어가 마을만들기 활동을 하려다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위성남 마포구마을생태계지원단장은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이 임대료를 올려 이 곳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쫓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고 말했다.
최수진 대표는 “작은나무카페는 생계를 위한 가게가 아니어서 문을 닫으면 그만이지만 마을이 수 년간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사라지는게 안타깝다”며 “성미산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이 공간을 물려주고 싶었고, 나중에 마을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했지만 불가능한 꿈이 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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