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구호인력·물품 보낼 인프라 턱없이 부족
ㆍ교민 11명 꼬박 하루 공군기 기다려 탈출
애타게 기다리던 한국군 수송기가 15일 드디어 필리핀 레이테섬의 타클로반에 도착했다. 교민들과 함께 폐허가 된 공항에서 수송기를 기다린 지 꼬박 24시간 만이었다.
전날 타클로반 상공까지 날아왔던 공군 수송기는 착륙 순서를 기다리며 공항 주변을 몇 시간씩 선회하다가 결국 세부로 회항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던 교민들은 미군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탈출했고, 일부 교민들이 취재진과 함께 다시 이날 오전부터 수송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이날 오후 수송기 3대가 들어왔다. 수송기를 타고 온 구조대 15명과 의료진 20명은 본격적인 구호작업에 들어갔다. 교민 11명은 이 수송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갔다. 태풍으로 통신이 두절되자 24시간 동안 자전거와 도보로 오르모크까지 갔던 사공세현씨도 이날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미 군용기에 올랐다. 그는 “타클로반에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좋지 않다. 꼭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교민은 3명으로, 외교부 신속대응팀이 주소지를 찾아갈 계획이다.
우리 수송기 타는 교민들 필리핀 타클로반에서 고립돼 있던 한국 교민들과 현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15일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에 짐을 싣고 있다. 교민 11명은 이날 수송기를 타고 세부로 이동했다. 타클로반 | 김보미 기자
한국 수송기가 타클로반으로 접근하기까지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AP통신은 “구호의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썼다. 발레리 아모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관은 14일 “현장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좌절스럽다”고까지 말했다. 타클로반 공항에 이착륙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호에도 인프라가 필요한데 지금은 그게 다 무너졌다.
미군은 매시간 공군·해군기를 띄워 물자를 나르고 있고 각국 군용기가 타클로반으로 들어오기 위해 애쓰지만 착륙할 곳이 모자란다. 벨기에와 국경없는의사회의 구호품은 화물기를 구하지 못해 세부에 쌓여 있다. 필리핀에어·세부퍼시픽·에어아시아 노선이 하루 2~4차례 운행을 재개했지만 70석 안팎의 소형기여서 물자를 싣기는 불가능하다.
타클로반 공항에 물건을 내려도, 배달할 트럭이 모자라고 기름도 부족하다. 시내 곳곳의 시신은 옮길 수단이 없어 그대로 둔 경우가 많다. 부서진 집들은 중장비가 없어 방치돼 있다. AP는 시 당국이 올림픽 경기용 수영장 크기의 구덩이를 파고 15일에도 시신들을 집단매장하다가 중장비가 부서져 중단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약탈은 통제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지 언론 필리핀스타는 “무장한 남성들에 의한 성폭행도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수는 필리핀 당국에 따르면 3600여명, 유엔 집계로는 4400여명이다.
아직 복구는 멀었고 전기 공급에도 6주 이상 걸릴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그래도 거리는 조금씩 정리가 되는 모습이다. 쓰레기를 치워 길을 텄고 시청과 공항 주변 통신망도 연결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에 이어 싱가포르와 스웨덴도 군용기로 물자를 싣고 들어왔고 호주는 의료진을 추가로 파견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타클로반 일대 5만명에게 고열량 비스킷을 나눠줬다. 마닐라에서 사마르섬을 통해 타클로반으로 오는 육로가 뚫리면 구호작업이 훨씬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 항모 조지 워싱턴호가 도착한 것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5000명의 인력과 헬기 21대를 싣고 온 이 항모는 타클로반 연안에 정박한 뒤 곧바로 구호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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