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전화를 10년 이상 감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야당 시절 기독민주당(CDU)의 첫 여성 대표가 된 지 2년 뒤부터 최근까지 감시가 이어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 대한 감청을 2010년부터 알고 있었으나 묵인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미 국가안보국(NSA)이 합법적이지 않은 첩보지부에 설치한 장비로 정보를 모으는 ‘특별수집서비스’(SCS) 명단에 2002년부터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 번호가 올라 있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0년 기민당 대표직에 오른 지 2년 뒤부터 시작된 감청은 2005년 총리가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하기 몇 주 전까지 계속됐다.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받은 자료를 분석해 보도한 슈피겔은 미국이 대화를 녹음한 것인지, 통화 대상만 파악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메르켈을 감시한 특별수집서비스는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이 1970년대부터 공조해 전 세계 80곳에 마련한 지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슈피겔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마드리드, 이탈리아 로마, 체코 프라하, 스위스 제네바 등 19곳이 포함됐다. 대부분은 각국 주재 미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멕시코 대통령과 정치인 감시가 폭로됐을 때도 도청 장소로 수도 멕시코시티 미 대사관이 지목됐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특정 정보활동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20일 자신에 대한 감청사실이 처음으로 폭로된 이후 오바마에게 직접 설명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고, 오바마는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중단시켰을 것”이라며 사과했다고 슈피겔 등이 전했다. 그러나 독일 주간 빌트 암 존탁은 27일 미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오바마가 2010년 키스 알렉산더 국가안보국 국장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으나 작전을 중단하라고 하지 않고 계속하도록 내버려뒀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또 오바마가 유럽에서 힘이 커지는 메르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원해 휴대전화뿐 아니라 암호화된 관용기기까지 도청 범위를 넓혔다고 전했다. 이같이 수집된 내용은 국가안보국을 통하지 않고 백악관으로 직보됐다.
독일은 감청 문제가 확산되자 자국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들을 미국으로 파견키로 했다. 또 브라질과 이 문제를 유엔에서 거론하는 방식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5일 ‘온라인 인권 보호에 대한 유엔 결의안’ 초안 작성 회의에서 동참 의사를 밝힌 국가는 프랑스·멕시코, 아르헨티나·오스트리아·볼리비아·에콰도르·인도·인도네시아·스웨덴·스위스 등 총 21개국이라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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