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집회가 끊이지 않던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지난 25일 경찰 간부가 시위대에 맞아 쇄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대중교통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이날 3시간 가까이 평화 행진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시위는 밤이 되자 급변했다. 복면을 쓴 이들이 버스와 정류장에 불을 지르고 창문 등을 파괴하고 경찰 간부를 공격한 것이다. 경찰은 주도자 8명을 체포했으며, 이들은 18~23세 젊은 남성들이었다고 현지 일간 오글로보가 보도했다.
올해 들어 계속된 브라질 대규모 집회에는 검은 옷에 검은 스카프나 마스크를 두른 무리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산발적으로 모여 방화 등 기습 과격공격을 벌이고 사라지는 이들은 ‘블랙 블록’으로 불린다.
브라질 ‘블랙 블록’ 시위대가 지난 21일 심해유전 개발권을 외국 기업에 경매로 넘겨주는 것에 항의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 AP연합뉴스
▲ 무정부·공산주의자 혼합된 검은 옷·검은 복면의 시위대
최근 브라질 등 전 세계 등장
물리적 충돌 유도 사태 격화“시위 본질 흐려” 비판 여론도
블랙 블록의 전신은 냉전 시절 독일의 대안 공동체 운동가들이었다. 반핵과 무정부주의, 반자본주의, 공산주의 등 여러 주장이 섞였지만 공유지를 점거하는 식으로 목소리를 내던 평화주의는 공통의 기조였다. 하지만 경찰이 1980년대 서독 전역에서 이들의 근거지를 급습해 철거하고 관련자를 무차별 체포하면서 과격 성향으로 바뀌었다.
특히 1986년 베를린에서 2만명이 경찰의 진압에 맞서 호화 쇼핑몰들을 부수며 대항했다. 독일 언론은 이들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복면을 썼다는 이유에서 이들에게 ‘블랙 블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검은 복면을 쓰고 거리에 나와 방화와 약탈 등 과격행위를 하는 이들은 지난 15일엔 리우의 교사 시위에 가세해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리우데자네이루 | AP연합뉴스
유럽 전역으로 퍼진 이들은 이후 강제철거나 낙태 제한 정책 등에 반대하는 시위 현장에도 나타나 이 문제를 집중 부각시켰다. 특히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계기로 열린 반세계화 시위에서는 다국적기업의 상점들을 공격해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1년 영국의 반긴축 시위에도 400명 이상의 블랙 블록이 가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초에는 시민혁명 2주년을 맞은 이집트 반정부 시위에 블랙 블록이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 블랙 블록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충동적으로 모인 젊은층이 주축이 돼 계획이나 목표의식 없이 거리에서 폭력 행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 시위에 참가한 한 블랙 블록 청년은 “아직 무엇에 대해 항의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사회의 많은 부분에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이후 70일 이상 이어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교사 파업 등 시위의 본질을 퇴색시켰다는 비난도 받았다. 고물가와 과도한 정부지출에 항의하고 공교육 투자 확대를 요구하던 시민들의 동기가 파괴주의에 묻혔다는 것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의 빌미도 내줬다. 양측 간 가장 큰 무력충돌이 이뤄진 지난 7일 리우의 교사·노조원들은 “평화로운 행진이 (블랙 블록에게) 납치됐다”며 반발했다고 BBC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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