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자연이 모두에게 준 선물… 기업도 국가도 권리 주장해선 안돼”
내 이름은 오스카 올리베라(58)다. 볼리비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 코차밤바에 살고 있다. 물과 인연이 많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물 조정자’(Coordinadora del Agua)라고 부르기도 하고 ‘물의 전사’(Guerrero del Agua)라고도 한다. 태어난 곳은 코차밤바 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 오루로다. 이 마을 고유의 물 축제가 열리는 날이 생일이다. 쌍둥이 딸도 있다. 물에 자신을 비추면 같은 모양이 반복되듯이 두 아이가 한꺼번에 나왔다. 아, 인연과는 별개로 수영은 못한다.
나는 2000년 이곳에서 일어난 물전쟁 당시 ‘물과 삶을 수호하는 연합’(La Coordinadora de Defensa del Agua y de la Vida)을 대변하는 역할도 했다.
지금도 이곳의 물을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지 연구하는 중이다.
▲ 주민들 투쟁에 민영화 무산… 이번엔 정부가 물권리 장악, 공동관리 자율성 사라져
코차밤바의 코차(Cocha)는 호수, 밤바(Bamba)는 평화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코차마마라는 물의 신도 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코차마마가 우리에게 물을 준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대지의 신인 파차마마와 함께 우리에게 자연을 허락한 신이다.
그런데 13년 전 이 사람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 있었다. 2000년 4월에 일어났으니 꼭 13년이 됐다. (인터뷰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25일 이뤄졌다.) 아구아스델투나리(Aguas del Tunari)라는 한 무리의 외국계 기업이 들어와서는 이제부터 이곳의 모든 물은 자기네가 갖게 됐다고 선포한 것이다. 코차밤바를 흐르는 물은 자신들만 쓸 수 있고 사용하려면 돈을 내고 가져가라고 했다. 산에서 계곡과 시내를 따라 내려오는 물도 탱크에 받아 써서는 안되고, 빗물도 모을 수 없게 했다.
이전에도 국가에 세금을 내고 물을 쓰긴 했다. 그렇지만 기업에서 파는 물을 쓰려니까 물 값이 3배가 올랐다. 집에서 버는 돈의 5분의 1이 물 값으로 나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당시 수도세로 나가는 돈은 수입의 2%가 적정 수준이라는 기준을 내놨지만 10배가 높았던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돈을 들여 물을 마시고 밥을 굶을지, 아니면 밥을 먹을지 고민하고 결정해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자연이 모두에게 준 것을 국가도 아닌 기업이 어떻게 혼자 가질 수 있을까. 코차마마께 물어본 것인가. 알아보니 정부와 은행이 협력해서 물을 기업에 넘겼다. 물이 시장경제에 의해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투자를 하면 누구든지 물을 사들일 수 있다. 호수든 샘이든 돈만 있으면 사들일 수 있다. 민영화는 시골 사람들의 삶에 직격탄을 날렸다. 물은 살기 위한 기본 요소다. 그래서 작은 마을 단위로 공동 운영해야 하는 것이고, 코차밤바도 그랬다. 물이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상수도관이 연결돼 있는 집은 절반뿐이었다. 30%는 공동체, 협동조합 형태로 관리하는 물을 썼다. 나머지 20%는 자체적으로 물탱크에 빗물 등을 받아 썼다.
물이 누군가의 수익원이 되자 기존의 공동 운영 시스템을 없애버리고 무작정 물을 빼앗았다. 우리는 답답했다. 맞서서 투쟁하기로 했다. 중앙광장(plaza catorce de septiembre)에 모여 사람들이 힘을 합쳐 움직였다. 코차밤바의 물전쟁이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시작된 이유다.
현재는 천연자원 수탈 개발 미명 ‘신식민지’ 돼
나는 2000년 이곳에서 일어난 물전쟁 당시 ‘물과 삶을 수호하는 연합’(La Coordinadora de Defensa del Agua y de la Vida)을 대변하는 역할도 했다.
지금도 이곳의 물을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지 연구하는 중이다.
▲ 주민들 투쟁에 민영화 무산… 이번엔 정부가 물권리 장악, 공동관리 자율성 사라져
코차밤바의 코차(Cocha)는 호수, 밤바(Bamba)는 평화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코차마마라는 물의 신도 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코차마마가 우리에게 물을 준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대지의 신인 파차마마와 함께 우리에게 자연을 허락한 신이다.
그런데 13년 전 이 사람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 있었다. 2000년 4월에 일어났으니 꼭 13년이 됐다. (인터뷰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25일 이뤄졌다.) 아구아스델투나리(Aguas del Tunari)라는 한 무리의 외국계 기업이 들어와서는 이제부터 이곳의 모든 물은 자기네가 갖게 됐다고 선포한 것이다. 코차밤바를 흐르는 물은 자신들만 쓸 수 있고 사용하려면 돈을 내고 가져가라고 했다. 산에서 계곡과 시내를 따라 내려오는 물도 탱크에 받아 써서는 안되고, 빗물도 모을 수 없게 했다.
이전에도 국가에 세금을 내고 물을 쓰긴 했다. 그렇지만 기업에서 파는 물을 쓰려니까 물 값이 3배가 올랐다. 집에서 버는 돈의 5분의 1이 물 값으로 나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당시 수도세로 나가는 돈은 수입의 2%가 적정 수준이라는 기준을 내놨지만 10배가 높았던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돈을 들여 물을 마시고 밥을 굶을지, 아니면 밥을 먹을지 고민하고 결정해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자연이 모두에게 준 것을 국가도 아닌 기업이 어떻게 혼자 가질 수 있을까. 코차마마께 물어본 것인가. 알아보니 정부와 은행이 협력해서 물을 기업에 넘겼다. 물이 시장경제에 의해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투자를 하면 누구든지 물을 사들일 수 있다. 호수든 샘이든 돈만 있으면 사들일 수 있다. 민영화는 시골 사람들의 삶에 직격탄을 날렸다. 물은 살기 위한 기본 요소다. 그래서 작은 마을 단위로 공동 운영해야 하는 것이고, 코차밤바도 그랬다. 물이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상수도관이 연결돼 있는 집은 절반뿐이었다. 30%는 공동체, 협동조합 형태로 관리하는 물을 썼다. 나머지 20%는 자체적으로 물탱크에 빗물 등을 받아 썼다.
물이 누군가의 수익원이 되자 기존의 공동 운영 시스템을 없애버리고 무작정 물을 빼앗았다. 우리는 답답했다. 맞서서 투쟁하기로 했다. 중앙광장(plaza catorce de septiembre)에 모여 사람들이 힘을 합쳐 움직였다. 코차밤바의 물전쟁이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시작된 이유다.
현재는 천연자원 수탈 개발 미명 ‘신식민지’ 돼
물은 인간만의 권리가 아니다. 동물과 식물, 모두가 쓸 수 있고 살기 위해 써야만 한다. 굳이 따지자면 자연의 것이다. 인간이 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물의 권리를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것을 권리로 못박는 순간, 힘이 없는 다른 마을은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싸웠던 물전쟁 역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경제 논리에 기댄 정책하에서 정부의 몇몇 인사가 모든 걸 결정하면서 고통받게 된 볼리비아 민중의 지지로 당선이 됐다.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읽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그를 응원했지만 지금은 불만이 많다.
현 정권 역시 물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궁극에는 정부가 물을 가지고 국민을 좌지우지하려 할 것이다. 민영화 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 물 값은 훨씬 싸다. 저렴한 세금만 내면 누구나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마을 공동체 회의에서 물·전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논쟁을 하지 않는다. 당장 문제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내려온 공동 운영 시스템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자율권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민영화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이 어떤 측면에서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그때는 외국계 기업이 들어왔고, 볼리비아 원주민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정권이 우리의 물을 노렸다. 모두 우리의 적이었다.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연합해 맞서 싸울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싸움의 대상은 우리와 하나라고 생각하는 볼리비아 정부, 모랄레스 정권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이해시키기고 동의를 구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위험한 것 같다. 아직 물에 대한 접근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정부가 물을 관리한 뒤로 물 값은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 세금이 올라가고 있다. 세금을 걷는 방식이 민영화가 된 2000년과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은 힘이 있다. 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남을 지배하는 힘이다. 다른 하나는 일정한 목표를 위해 관계를 만드는 힘이다. 정부가 힘을 가지면 전자를 위해 애쓰지만 공동체가 힘을 가지면 후자를 추구하기 위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물을 운영하는 데는 정치적 논리나 투자자 의견보다 시민의 목소리가 더 반영돼야 한다. 한국의 운영 방식도 이 같은 목적을 이루는 데 적당하지가 않다. 수자원공사에도 정치적 결정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공)영화 대상은 정치적 판단에 따른 입김이 닿는다. 일반 사람들이 운영 주체가 돼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어야 한다.
2000년 코차밤바 물에 투자하겠다며 세계에서 달려들어왔다. 아구아스델투나리에는 볼리비아뿐 아니라 영국·스페인·이탈리아 기업이 포함됐다. 에디슨이라는 이탈리아 기업을 추적해 봤더니 지분의 51%를 밀라노 시청이 가지고 있었다. 당시 민영화가 자리를 잡았다면 이탈리아의 한 도시가 코차밤바 물의 운명을 쥐고 있는, 말도 안되는 구조가 될 뻔한 것이다.
한국도 물길(4대강)을 만드는 것을 두고 정부가 감추는 게 있는 듯싶다. 시민들은 어떤 뒷배경이 있는지 알 권리가 있고 정부는 공개를 해야 한다. 물길을 바꾸는 것도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동네 샛강의 물길을 바꿀 때도 자연에게 묻고 진행해야 한다. 아니면 커다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코차밤바에서는 세마파(SEMAPA)라는 지역 협동조합이 물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 부패가 심한 조직이었고 여전히 부채가 많아서 실패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세마파는 정부가 기술·관리직을 뽑아서 앉히기 때문에 유착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조합이지만 인력은 정부가 조달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정부로 ‘옷’만 바꿔입은 셈이다. 시설 운영에 대한 회계, 물의 저장량, 필요량 등을 지역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이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정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인력이 3분의 2다. 그렇지만 희망적인 부분은 중앙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지역에서 사람들이 운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기술 관리만 도와주고 사람은 현지 인력으로 채워야 한다. 세마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주민 참여를 늘리면 된다.
해결책에 대한 정답은 아직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중앙집권적 운영 방식이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면 된다.
물전쟁이 물만을 위한 1차원적 싸움은 아니었다. 우리 고유의 영역, 영토를 지키려 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민영화는 우리 영토를 침범해 파괴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많은 언론이 다루지 않았지만 당시 투쟁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삶의 형태를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학교와 공동체 등 모든 코차밤바와 볼리비아, 남미에 존재하고 있던 것들이 고유의 영역이다. 2000년 우리는 물에 주목했지만 2013년에는 석유 등 천연자원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자원 개발의 위협은 단순한 경고 수준을 넘어선 현실이다. 신(新)식민지주의다. 다국적 기업과 정부는 여기에 ‘개발’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마을 주민에게는 돈을 벌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살기 좋아지는 것만이 진심으로 잘 사는 것(웰빙)은 아니지 않은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기존 정권의 두 가지 권한을 없애기로 약속하면서 2005년 대선에서 지지를 받았다. 하나는 경제 개발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가 뽑혔다는 것은 ‘천연자원을 수출해 잘 살아보자는 정부의 제안’을 국민들이 거부했다는 의미다. 국토, 우리의 삶의 터전에 대한 약탈과 몰수의 역사인 2000년 물전쟁과 2003년 가스전쟁에서 이미 국민의 뜻을 단호하게 보여줬다. 우리는 자연을 존중하고 어우르는 다른 모델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상품이 아니다.
당선의 두 번째 이유는 소수의 정부 지도자가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정당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다는 의사를 확실히 한 것이다. 참여 민주주의를 원하고 주민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고 싶어한다. 물과 자연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영토를 다국적 기업에 넘기는 수탈 경제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정부는 기업에 석유와 광산 개발권을 넘긴다. 볼리비아 자연환경을 강탈하고 파괴하는 비참한 단면이다.
우유니 소금사막 근처의 산크리스토발 지역에는 일본 자본이 들어와 매년 수십억달러어치의 광산을 캐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광물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우유니와 코차밤바의 물을 끌어다 쓰면서 세계 최대 은 광산을 경영할 것이다. 그 대가로 볼리비아에 내는 세금은 수익의 아주 작은 일부다.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우유니는 특히 겨울에는 물이 아예 없는 곳이다. 주민들이 쓰기도 빠듯한 이 물까지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우유니에서 소금 지역은 건조한 기간이 늘어나면서 1만㎡에서 최근 1만2000㎡까지 넓어져 확대되고 있다.) 이시보로 세쿠레(Isiboro Secure) 국립공원(원주민 보호 구역이 포함돼 있다)은 브라질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고유 영토를 파괴하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이다.(볼리비아 정부는 브라질의 투자를 받아 북부 베니주에서 코차밤바를 잇는 306㎞ 길이의 도로를 건설 중이다. 이 중 177㎞ 구간이 공원을 지난다.)
나 역시 2000년 물 운동을 시작해 10여년간 사람들에게 실정을 알리면서 물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 신발 한 짝을 만드는 데 8000ℓ의 물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이전에 알지 못했다. 원래부터 물이 귀했던 코차밤바에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곳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우기에만 비가 온다. 그래서 비가 오면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기꺼워하며 비를 맞기 위해 일부러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물은 축복이니까. 자연이 허락한 때에만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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