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수도세 300% 인상… 주민들 거리로 나와 1년 투쟁해 물 되찾아
볼리비아는 1982년, 110여년간의 군부독재를 끝냈다. 하지만 물가는 연 25%씩 오르는 등 혼란 정국이 계속됐다. 해외투자도 끊겨 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져만 갔다. 1985년 결국 세계은행에 차관을 요청한다. 당초 차관은 1995년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안정을 찾지 못한 정부는 2년 연장을 요구했고, 세계은행은 대신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넘겨 효율성을 높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1998년 세계은행은 수도를 민영화하지 않으면 2500만달러의 추가 차관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우고 반세르 정권은 1999년 9월 ‘2029’법을 제정해 수도 민영화 차례를 밟는다. 코차밤바의 물도 기업에 넘기기 위한 절차가 진행됐다. 영국의 인터네셔널 워터, 이탈리아의 에디슨, 미국의 벡텔을 비롯해 스페인·볼리비아 기업들로 구성된 ‘아구아스델투나리’ 컨소시엄이 이 지역 단독 입찰자가 돼 40여년간의 상하수도 운영권을 따냈다. 코차밤바 물 관리를 맡았던 정부 조직인 ‘세마파’의 부채 3000만달러를 갚아주고, 설비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계획에 없던 새로운 댐 건설 추진도 밝혔다.
아구아스델투나리는 사업 개시 직후 코차밤바의 모든 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시냇물과 강물을 개인이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고, 빗물을 모으는 것도 금지했다. 각 마을에 있는 공동 우물도 사용을 막았다. 수도세를 월 평균 35%씩 올렸다. 댐 건설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 1월이 되자 물 값은 300%나 뛰었고, 세금을 못내는 많은 가정·농지에 단수조치가 이뤄졌다.
▲ 구제금융 받으며 수도민영화… 다국적 기업 물 소유권 주장
강물·빗물도 사용 못하게 해… 정부는 ISD 부담에 손 놔
생활 수원을 봉쇄당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물을 쓰게 해달라고 외쳤다. 여기에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을 쏘며 강제 진압에 나섰고,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시위 움직임은 더 거세졌다. 코차밤바 시민과 중앙·시정부 간 물을 둘러싼 전쟁이 1년여간 이어지면서 17세 소년을 포함해 6명이 숨지고 175명이 다쳤다.
반세르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결국 2000년 10월 아구아스텔투나리가 가지고 있던 상하수도 운영권을 박탈했다. 물 운영은 당초대로 지역 사회에 돌려준다고도 선언했다. 이에 벡텔 등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들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2600만달러의 소송을 걸었다. 일방적 계약 파기로 입은 손해를 보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로 이득을 보려는 기업에 대한 세계적인 반발이 일면서 부정적인 여론에 힘을 실어줬다. 2006년 1월 볼리비아 정부가 컨소시엄에 2볼(약 310원)을 물어주기로 합의하면서 고소는 취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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