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인터넷 검열의 진화… “철의 장막 대신 전자의 장막 쳐진다”

by bomida 2012. 12. 14.

ㆍ프리덤하우스 조사 세계 47개국 중 20개국서 ‘온라인 장벽’ 높아져
ㆍ감시법, 개인사찰 위한 것도 많아… 인권과 표현·집회의 자유와 배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51)은 지난달 6일(현지시간) 첫 흑인 대통령 재선 외에 또 다른 기록을 남겼다. 역사상 가장 빠르고 광대한 리트윗이다. 재선이 확정된 그날 밤 11시16분, ‘4년 더(Four more years)’라는 짤막한 문구에 부인 미셸 오바마와 포옹하는 사진을 붙인 그의 트윗은 20분 만에 30만건 이상 공유됐다. 초당 250명, 분당 1만5000명의 ‘트위터리언’이 주변 ‘트친’(트위터 친구)들과 돌려 읽은 셈이다. 당선을 확신한 순간 트위터로 축전을 띄운 ‘오바마 팀’의 기민함은 온라인 대선이라 불린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날 하루에만 선거 관련 단문 3000여만건이 ‘타임라인’에 도배되면서 ‘트윗은 흘러야 한다(Tweets must flow)’는 트위터의 ‘초심’이 구현됐다.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되면서 그 평등의 정점을 찍은 듯하다. 개인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흐름은 온라인 저변을 한 단계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제도권과 다른 소통 방식 덕분에 진화했지만 산업의 면모를 갖추면서 기존 체제와 타협해야 하는 모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중립지대로 여겨진 SNS에 잣대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지난 10월 독일에서 신나치주의 극우단체 ‘베세레스 하노버’의 트위터 계정과 게시물이 삭제됐다. 인종적 증오를 조장한 혐의로 일부 회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독일 경찰이 트위터에 차단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극우단체 ‘황금새벽당’의 페이스북 프로필도 열람이 차단됐다. 당원들이 외국인 추방을 주장했는데, 이는 인종차별을 금지한 페이스북의 규정에 위반된다. 브라질 당국은 9월 파비오 호세 실바 코엘료 구글 현지 대표를 체포했다. 특정 시장 후보를 비방한 유튜브 동영상의 삭제 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다. 내부 지침상 부적절한 영상이 아니라고 밝힌 코엘료 대표는 앞선 사례들과 대비돼 ‘투사’로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구글은 비슷한 시기에 이슬람권의 반미 시위를 촉발한 동영상 ‘순진한 무슬림’을 유튜브에서 자진 삭제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한 남성이 지난달 7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후 트위터에 올린 ‘4년 더’ 트윗을 보고 있다. 

파리 | AFP연합뉴스


사라진 게시물에는 ‘불법’ 혹은 ‘문화적 갈등 유발’이라는 꼬리표가 공통적으로 붙어 있다. 업체들이 차단의 정당성으로 제시하는 내용이지만 사용자에게는 검열의 근거가 된다. 여기서 각국 법을 준수할지, 서비스의 근간인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킬지 딜레마가 시작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트위터는 언론의 자유를 이끌어 중동 혁명을 이뤄낸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올해는 법에 발목을 잡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구글의 이중성에 대해 “한 사회에서 공론화된 논쟁을 기업이 어떻게 관리하고 국가가 정보 차단을 원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를 촉발시켰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고민은 단순히 영문 140자짜리 트윗을 보일지 말지 결정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이 선택은 사업의 존폐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2년간 검색 시장에서의 영향력 남용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15년 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기소된 것처럼 ‘반독점법’ 저촉 여부가 관건이다. 미국에서는 올 초부터 온라인 저작권도용방지법안과 지적재산권보호법안을 둘러싼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저작권도용방지법안에는 저작권 침해 혹은 침해 추정 게시물이 하나라도 적발되면 사이트 전체를 폐쇄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인터넷 규제에 관한 논의를 해온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은 14일 통신뿐 아니라 인터넷 관할권을 갖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규약 변경안을 승인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이 회원국에 규약 서명이나 준수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인터넷 검열을 개별 국가만이 아닌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영국에서는 유해정보 수집을 위해 모든 온라인·모바일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데이터통신법이 의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게리 샤피로 미국 가전협회장은 “국제기구가 인터넷 내용의 시찰과 정보 접근 차단을 허용하면 검열을 조장할 수 있다”며 “인터넷 안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세계 이용자들을 다른 정부의 변덕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포브스에 밝혔다.

독일 하노버 경찰들이 지난 9월 극우단체 ‘베세레스 하노버’로부터 몰수한 나치 깃발을 검사하고 있다. 트위터는 독일의 요청으로

이 단체의 계정을 차단했다. 런던 | AP연합뉴스


이윤을 좇는 기업의 본성은 몸집이 커질수록 드러난다는 점도 표현의 자유를 외면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인터넷 검열 정책이 업체들의 해외 사업 확대 시점과 맞물린다는 해석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감한 내용에 관한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검열의 사전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 내 트위터 격인 ‘웨이보’는 트위터가 전 세계에서 2억명의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동안 자국에서만 이미 2억명을 넘겼다. 광고단가가 이용자 수로 매겨진다는 측면에서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인 것이다.

업체들은 시류에 맞춰 운신의 폭을 넓히는 방법으로 로비를 택했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더디게 추진되는 정책 간 ‘시차’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충돌만 격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실리콘밸리 로비스트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아날로그 식으로 몰려들고 있다”며 “정부는 인터넷의 중립성을 말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라고 전했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이 보도한 기업별 의회·정부 로비비를 보면 구글은 올 들어 9월까지 1310만달러(약 144억원)를 썼다. 이미 지난해 연간 지출(970만달러)을 넘었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인터넷의 개방성과 보편적 접근 원칙이 30년 만에 가장 위협받고 있다”며 “개방된 인터넷에 반대하는 세력이 전 세계에 줄지어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트위터의 초심이 방증하듯 인터넷은 개인들의 사적 참여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자율성이 줄어들고 있는 ‘인터넷 생태계’를 걱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래리 다운스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포브스 기고문을 통해 “급변하는 인터넷 생태계는 더 낮은 단계의 무역정책을 요구한다”며 “기술을 워싱턴(정치권)이 따라잡을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원하는 것은 워싱턴이 일을 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세계 47개 국가를 조사한 결과 20개국에서 온라인 제한 규정이 전년보다 늘어났다. 프리덤하우스 측은 “통제의 방법은 진화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국 비영리단체 프라이버시인터내셔널은 자국의 통신법 추진에 “법안 도입의 이유로 들고 있는 테러리즘 정보는 이미 경찰이 확보했기 때문에 이는 다른 정보(개인 사찰)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칼럼을 통해 “감시법이 인권, 표현·집회·결사의 자유와 배치될 가능성이 있고 검열의 위협은 잠재적인 사기 저하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인프라 수준이 세계 상위권에 꼽히는 한국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의 인터넷 자유 수준을 세계 16위, 부분적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로 판단했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인터넷 게시물 3만1357건을 차단했다. 방통심의위가 생긴 첫해(2008년) 4731건보다 7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2010년(2만2853건)보다도 37%나 많아졌다. 여기에는 SNS 삭제도 포함돼 있다. 국내 인터넷 자율성의 발목을 잡는 대표 규제로 꼽혔던 실명제는 위헌 결정이 났지만 선거법상 실명제는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불씨로 남아 있다.

인터넷 자유 강화를 위한 단체 ‘21세기 계획’의 공동창업자 마이클 호로비츠는 인터넷을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폐쇄적 체제에서 이익과 권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이란·중국인이 권력 내 안정이 인터넷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달렸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호로비츠는 “우리는 독재정권의 통제 방식인 돌과 철조망 대신 전자벽이 쳐져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관점에서 인터넷 자유를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21세기 냉전’의 해소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