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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후변화, 관광도 바꾸다

by bomida 2013. 7. 3.

짙푸른 청자 안료를 풀어놓은 것 같은 물빛의 인도양 섬 몰디브는 지상낙원으로 불린다. 아름다운 이 섬엔 2100년이면 푸른 빛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시한부’ 선고가 내려져 있다. 몰디브는 저지대에 있는 산호섬 1100여개로 이루어진 국가다. 가장 높은 섬이라고 해야 해발 2.4m 정도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80년 후면 해수면이 1.4m 올라간다니, 섬 대부분이 물에 잠기게 생겼다. 섬을 가라앉히고 있는 물은 어디선가 무너져 버린 빙벽의 일부일 것이다. 또 다른 삶의 터전 역시 위협받고 있다는 의미다. 

기후변화는 산업화로 시작돼 가속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부유함과 세계 패권을 좌우할 힘까지 가지게 된 국가들은 일말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작 충격은 혜택을 누리지 못한 가난한 국가들이 짊어졌다. 이들 국가의 자연은 뒤바뀐 기후에 적응할 여력도, 자원도 없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멸종되는 동식물이 많아졌고, 가뭄과 홍수 기간은 늘어간다. 개발이 더딘 저소득 국가는 관광산업이 발달하게 마련인데, 도시로 뒤덮여 버린 선진국 관광객들은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온난화로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서 기후변화의 ‘원죄’를 가진 국가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공정여행단체인 ‘투어리즘 컨선(tourismconcern)’은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는 가난한 관광국가”라고 설명했다. 모하메드 나시드 전 몰디브 대통령은 2010년 한국에서 열렸던 유엔환경계획 회의에 참석해 “몰디브는 화석연료로 (산업화) 혜택을 가져간 선진국을 대신해 기후변화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내 최대 규모인 리옐 빙하의 1903년 7월(위 사진)과 하산 베세직이 촬영한 2004년 5월 모습(아래)이 100년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기후변화와 온난화 영향으로 빙하와 얼음지대가 확연히 줄어들고 개화시기가 빨라졌으며 기존에 서식하던 많은 나무들이 고사 위기에 몰렸다. 시에라네바다 | AP연합뉴스


▲ 산업화가 몰고온 온난화… 동식물 멸종, 가뭄·홍수 증가
가난한 나라엔 혜택 없고 고통뿐
네팔·몰디브 등 피해국엔 가해국 관광객이 생계인 현실
미국 스키장 10년간 10억달러 손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 스위스 그린델발트 ‘빙하 호텔’ “녹기 전에 보자” 북극 관광 급증
일부 지역선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 세계 여행객들이 발생시킨 탄소가 전체의 5%
“아름다운 이곳이 소중하다면, 돌아가서 바꾸세요”


불길한 징후의 신호탄은 네팔의 에베레스트다.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이미 여기저기 바위가 드러나고, 균열이 생겨 아이젠을 박을 빙벽이 없어졌다. 이 같은 지점들은 전문가들도 등반하기 힘들다.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네팔인 텐징 노르게이가 산을 등정하고 처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올해로 딱 60주년이지만 앞으로 60년 후에는 어쩌면, 등반할 수 없는 산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에베레스트의 기온을 높이는 데는 관광객이 한몫했다. 이들이 내뿜고 간 탄소들은 히말라야의 얼음을 녹였다. 워싱턴 산악연구소의 지리학자 앨튼 바이어는 “화창한 날이 많았던 에베레스트에 구름이 낀 날이 잦아져 히말라야 루클라 공항이 더 자주 폐쇄되고 있다”며 “지구가 겪고 있는 변화가 앞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행객맞이를 위해 대규모 도로망을 빠르게 깔고 있는데, 이는 토양 침식을 유발해 산사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눈과 빙산이 녹아 흘러내려가면서 농사와 생활에 쓸 물이 줄었다. 셰르파족 마을인 ‘남체 나자르’는 8000m짜리 수로관을 깔아 외지에서 물을 끌어온다. 관광객과 함께 늘어나는 쓰레기는 히말라야의 초입 마을 쿰부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 매립지로 만들어 버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렇지만 외국인 한 명이 등반을 하러 오면 평균 8만5000달러(약 1억원)를 쓴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607달러에 불과한 네팔에서 이는 엄청난 수입원이다. 연간 3만5000명이 직접 산을 오르고, 에베레스트가 있는 네팔을 여행하러 60만명이 온다. 네팔 정부는 이 숫자를 연 100만명까지 끌어올리려고 노력 중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산을 잘 타는 셰르파족은 이들에게 길 안내를 하며 돈을 벌지만 돈벌이가 늘수록 고향의 생태계 파괴 위협은 커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협은 선진국도 피해가지 못한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0년부터 10년간 38개 주의 관광사업은 총 10억7000만달러(1조2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눈이 오지 않아 스키장 문을 열지 못한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북부 스키장 103개 가운데 절반은 2039년이면 1년 중 100일도 장사를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전 지구적인 온난화 현상이 뜻밖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미국 학술단체 ‘스미스소니언’은 기온이 높아진 그린란드에 찾아온 변화를 소개했다. 호주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덴마크령 그린란드는 멕시코 전체와 맞먹는 크기에 5만6000명이 살고 있다. 85%가 얼음으로 덮여,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거리를 전부 합쳐도 120㎞에 불과한 빙하의 땅이다. 평균 영하 15도인 기온 덕에 높이가 3200m에 이르는 빙상도 볼 수 있다. 관광산업협회 말리크 밀프레트는 “남부지역은 기온이 올라 빙하가 녹으면서 드러난 땅에 농작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은 경작지가 적어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다. 

관광수입도 늘었다. 배를 타고 온 여행객은 2010년 3만명으로 2004년보다 2배 많아졌다. 비행기로 도착한 이들까지 합치면 수는 더 늘어난다. 스위스 출신 사진작가 앨반 카쿨라는 “3주간 풍경을 찍으며 사람들에게 이곳에 왜 왔는지를 물었는데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보고 싶었다’거나 ‘북극곰이 멸종하기 전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 스미스소니언과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빙벽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스위스 그린델발트 마을.


스위스 알프스의 마을 그린델발트에서도 기후변화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3970m 아이거봉 북벽 아래 산기슭의 조용한 이 마을에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빙하 두 개가 있다. 20세기까지 빙하는 알프스 꼭대기부터 골짜기를 따라 1㎞ 정도 이어져 마을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얼음은 각 가정의 ‘간이 냉장고’였고, 프랑스 파리까지 수출도 됐다.

알프스는 지난 30년간 평균기온이 1.5도 올라 1980년부터 빠르게 빙하가 녹고 있다. 평균 높이가 198m나 줄었다. 여름이면 녹은 빙하 덩어리들이 골짜기로 쏟아져 내려온다. 루스 마이어는 1997년 이 얼음들이 지나가는 골짜기 길목에 호텔을 지었다. 옛날 빙산을 깎던 노동자들이 밥을 먹던 자리라고 한다. 그는 “위험해 보이지만 빙하의 맥박을 느끼려고 여기에 지었다”며 “돌이 굴러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마르코 보미오는 마을의 ‘온난화 가이드’다. 이전과 달라진 자연을 보려는 여행객을 손님으로 맞아 차이점을 설명해준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부르노 하우스비르트는 “고향에 돌아와 산이 변한 것을 보며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며 “경제의 80% 이상이 관광과 연관이 있다. 건설·금융·소매업뿐 아니라 마을 중앙에 있는 3000만달러 규모의 쇼핑몰도 여행객들을 보고 들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농사를 짓기는 척박한 이 땅에서 관광은 경제를 이끈 동력이다. 융프라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찻길도 깔려 있는 이곳으로 매년 유럽 전역과 미국, 아시아인 관광객 80만명이 온다.북극의 얼음이 녹는 현상도 흥미로운 관광거리가 되고 있다. 20년 안에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는 ‘무서운’ 전망이 커지면서 이를 눈에 담아두려는 여행객들이 급증하고 있다. 북극과 가까운 미국 알래스카주 상무부에 따르면 2011년 5월~2012년 4월 182만3600명의 외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배로 오고간 사람이 절반 수준(48%·88만명)인데, 올해는 이 배를 이용한 여행객만 100만명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얼음이 빨리 녹을수록 빙하 조각에 부딪힐 걱정 없이 대형 선박을 띄울 수 있는 북극 항로가 더 많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북극의 수자원 등을 개발하러 가기 수월해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기회는 덫이 될 수도 있다. 온난화를 자초한 사람들은 사라져가는 자연의 최후를 눈에 담기 위해 얄궂은 여행을 떠나지만 이 여정은 그곳의 마지막 순간을 앞당길 뿐이다.

알래스카는 여름 기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날씨사이트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지난달 17일 알래스카 북부 마을 탈키트나의 기온이 섭씨 35.5도까지 올랐다고 발표했다. 1969년 이후 44년 만에 가장 더웠다. 알래스카 주도 앵커리지 도심도 평균 26도 수준으로 평년보다 최대 10도가량 높아졌다. 이 같은 폭염은 정상 수준을 벗어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관광 호황을 누리고 있는 그린델발트는 빙하의 해빙 속도가 빨라지면서 마을을 둘러싼 3970m 높이의 아이거봉 동쪽 빙벽을 잃었다. 토양을 단단하게 묶고 있던 영구동토층도 68만8500㎥나 무너졌다. 마을 대표 허버트 저브뤼그는 “우리가 지금은 운이 좋은 상황에 있지만 앞일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 투어리즘 컨선은 저렴해진 항공요금을 가장 우려한다. 값싼 국내외 항공편은 인도·중국 등 신흥 개발국의 관광객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이 발간한 ‘기후변화와 관광’ 보고서를 보면 2005년 세계 여행객들은 이동해 먹고 자고, 활동하면서 1302메트릭톤(Mt)의 탄소를 발생시켰다. 당시 지구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 2만6400Mt의 5%를 차지한다. 특히 관광으로 생성된 탄소의 40%는 비행기가 유발한 양이다. 유엔환경계획은 2035년이면 여행 때문에 30년 전보다 160% 늘어난 3400Mt의 탄소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항공 비중은 53%로 더 커진다.

스위스 출신 사진작가 카쿨라는 그린란드의 웅장한 풍경과 여행객들의 부조화를 한 폭에 담으며 간절히 빌었다고 했다. “사라진 빙하를 보고 일상으로 돌아가 에너지 소비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다짐한다면 온난화를 막을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