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마을서 하나뿐인 수세식 화장실… “하루 다섯 번씩 손 씻으러 와요”
볼리비아 중서부의 사파하키는 투나(선인장 열매)와 복숭아, 배, 무화과, 포도 등 과일이 잘 자라는 산악지대다. 지난 5월29일(현지시간) 사파하키의 한 마을을 찾았다. 가는 길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동 트기 전 수도 라파스를 떠나 자동차로 1시간 반을 달렸다. 라파스주 끝자락에 있는 톨라 마을에 들러 아침을 먹으며 흙길에 대비해 차를 점검했다. 다시 출발을 하자마자 포장도로가 끊기고 구불구불한 자갈길이 이어졌다. 앞차가 속도를 내면 뒤차는 자욱한 먼지에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찜통더위 속에 2시간 반을 더 갔다.
서울~천안 거리를 꼬박 4시간이 걸려 도착한 사파하키주 아이루이라마 마을의 투파카타리 초등학교에는 아이 32명이 모여 있었다. 네 살 꼬마부터 아홉 살 학생회장까지 작은 운동장에 모여 손님을 맞는다. 낯선 동양인 기자에게 아이들은 뺨을 대고 인사를 청했다. 그러고는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려간다. 마을에 딱 하나뿐인 수세식 화장실이다. 일곱 살 소녀 루스마니아는 “화장실이 예쁘게 생겼다”며 자랑했다. “하루에 다섯 번은 오는 것 같아요. 손도 다섯 번 씻어요. 학교가 제일 좋아요. 친구들과 노는 곳이니까요.”
이곳에 화장실이 생긴 건 1년 전, 한국·볼리비아 어린이재단(차일드펀드)과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이 지역 34개 학교에 위생시설을 지원하면서다. 차일드펀드는 학부모들과 함께 화장실을 설계했다. 변기에 47m짜리 관을 연결, 학교와 멀리 떨어진 구덩이에 오물을 묻었다. 마실 물이 많지는 않지만 식수탱크에서 수세식 뒤처리 물을 조달했다.
사방이 바위산인 해발 2900m의 이 마을은 세상과 단절돼 있다. 중앙정부나 주 정부는 손쓸 여력이 없다. 절대 빈곤율이 68.9%에 이른다. 이곳의 화장실은 1m 깊이로 판 구덩이 위에 시멘트로 만든 간이 변기를 얹은 게 전부였다. 벌레가 들끓어 아무도 사용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대신 학교 뒷산 투나 밭이나 마을 아래 냇가에 가서 볼일을 봤다. 기반시설이 없으니, 화장실은 물론이고 깨끗한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석회질, 염분이 섞인 냇물을 그대로 퍼다가 식수와 세수용으로 쓴다.
사파하키주의 3287가구 중 절반만 물 저장고를 가지고 있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20%뿐이다. 주 전역 110개 마을에 2010년에는 1만5789명이 모여 살았지만 3년 새 1만1790명으로 줄었다.
물 문제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아이들이다. 아동 설사 발생률은 2005년 16.32%에서 2009년 21.09%로 늘었다. 아이 4명 중 1명이 만성 영양실조이고, 영아 1000명 중 68.42명(2009년 기준)이 숨진다. 투파카타리 초등학교의 교사 다니나 키스베르는 “아이들 설사병이 너무 심했다”며 “특히 위생상태가 더 나빠지는 겨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교는 투명한 페트병에 매일 10~15ℓ의 물을 담아 태양빛으로 하루 동안 살균한 뒤 아이들의 손과 얼굴을 씻게 한다. 수도시설이 없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체 정수’인 셈이다.
투파카타리 학생 대표인 엘링베르(9)는 “화장실은 꼭 학교에서 간다. 하루에 세 번 정도 가서 손도 세 번 씻게 됐다”며 웃었다. 볼리비아 어린이재단의 현장 관리인 기도 산토스는 “비누를 쓰면 물이 많이 들기 때문에 물로만 헹군다. 볼리비아 산골 학교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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