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일본에 왔을 때도 현금을 내고, 현금을 거슬러 받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스마트폰 케이스에 카드 한 장 넣어두면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도 아무 불편이 없었던 서울. 도쿄에서 장을 보다보면,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게다가 일본은 무엇을 사도 가격이 1엔 단위까지 생기고야 만다.(식당 음식 값은 예외) 8%의 소비세가 붙는 탓. 계산할 때 지갑에 남아있는 동전을 미리 세어 거스름돈을 만들지 않으려고 암산도 하며 애를 쓰지만, 지폐만 남도록 클리어한 다음은? 그 다음 계산 때 또 다시 동전 한 움큼이겠죠.. 또르르..
지갑에서 들어있던 현금량.
동전은 이 정도면 양호한 편.
한국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다분히, 극도로, 제한적인 범위 주의;)는 동전을 만들지 않는 생활을 할 수는 있는데...
일본도 물론 10년 전과 비교하면 현금이 아닌 수단으로 하는 결제하는 비율(캐시리스 비율)이 2배 정도로 늘었다고. 1)온라인 쇼핑 증가 2)스마트폰과 3)Suica 등 전자화폐 보급이 확대되면서다.
하지만 현금이 필요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지갑에 카드만 넣고 다니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동네 작은 가게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많은 힙한 동네 가게들도 현금만 받는 곳이 꽤 많다. 도쿄 ‘오다이바 레인보우버스’는 교통카드도 못 쓴다. 주민용 IC카드만 읽히는 단말기라서 동전이나 1000엔짜리(다른 지폐는 안됨)가 없으면 타지를 못한다.
한국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다분히, 극도로, 제한적인 범위 주의;)는 동전을 만들지 않는 생활을 할 수는 있는데...
도쿄 한복판인데 스이카 파스모 안 된다고 써있어서 개당황하며 근처 편의점에서 돈 뽑아 탑승한 1인.
(1) 교통카드
일본에선 電子マネㅡ(Electric money)라고 불리는 각종 IC칩 카드가 있다. 보통 각 지역 철도사업자들이 발행하는 교통카드. JR동일본(東日本)의 '스이카(Suica)', JR서일본(西日本)의 '이코카(ICOCA)', 수도권 지하철버스용(首都の私鉄バス)인 '파스모(PASMO)'가 한국 여행객들에겐 가장 잘 알려진 것들.
한국의 티머니라고 보면 됨.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결제가 되는 시스템. 서울에선 사실 신카나 체카를 쓰기 때문에 잘 안썼지만 도쿄에 스이카는 전철, 버스를 탈 때보다 편의점에서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하루에 가장 많이 쓰는 말이 “スイカで”(스이카로 할게요)인 것 같기도; 영수증을 받아보면 카드에 얼마 남았는지 잔액도 표시돼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치킨카츠산도와 피자망을 먹었군. 둘 다 그저 그렇지만, 세븐일레븐에서 파니까 궁금하면 드셔보시길.
학교 자판기는 거의 저렇게 분홍색 파스모 표시가 된 단말기가 붙어있음. 스이카도 됨. 이시다 유리코의 사진이 있어 괜히 자판기 전신을 올려봄;
음료수 자판기도 거의 스이카로 이용하고 있다. 학교에 설치된 자판기는 거의 100% 단말기가 붙어있는데, 길거리나 지하철에도 스이카 결제 가능 자판기가 꽤 많다. 특히 스이카는 ios 앱이 있다.
지원되는건 애플 페이가 되는 아이폰8부터.(일본 모델은 아이폰7부터 된다고 함,) 스이카 앱에 실물 카드를 등록하고 애플 페이에 연결하면 결제할 때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대면 됨. 내 폰 외안돼 ㅠㅠ 애플 워치로 결제하는 젊은양반들 넘나 부럽고욘...
대학교도 있고 직장인도 많은 곳에서 살아서 스이카로 결제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거 같은 느낌이지만, 일본에서 電子マネㅡ로 결제하는 비율은 국내 소비액 중 1.7%밖에 되지 않는다고. 넘나 소액결제에 빈도만 많아서 그런듯..
(2) Prepaid Card(선불카드)
한국 신용카드도 일본에서 잘 쓰고 있다. 특히 환율이 1000원대 아래로 떨어지면 개꿀. 하지만 문제는 수수료. 모든 결제마다 수수료를 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일본 주소등록을 하고 마이넘버가 나오자마자 선불카드를 신청했다. 일본 신카를 못 만드는 외국인에게 가장 ‘캐시리스’한 삶을 가져다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함.
프리 페이드는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어떤 것을 만들지는 본인의 생활패턴에 맞추면 된다. 라인모바일에서 유심을 개통했다면 라인페이도 추천한다. 이용금액에 따른 캐시백이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포인트 쌓이는 것도 쏠쏠하고 그걸로 통화요금도 낼 수 있으니 개이득. 하지만 나는 써보지 않았음으로 패스. 자세한 건 이쪽으로. line_pay
도쿄에 오면서 1n년 전 지갑을 다시 꺼내왔다. 동전 수납공간이 아예 따로 있고, 이미 낡아서 더 낡아도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동전을 매일 넣고 꺼내고 하다보면 가죽은 더 상할거다. 사진에선 잘 안보이지만 동전 때매 맨날 뚱뚱 ㅠㅠ
나는 통장을 개설한 新生銀行의 GAICA 선불카드를 만들었다. 여기서 만든 이유는 단 하나. 신생은행의 최대 강점이자 개꿀 포인트였던 모든 편의점 인출 수수료 무료가 지난해 10월부터 건당 108엔 유료로 전환됐기 때문. 대신 GAICA 카드를 만들어서 월 1만엔 이상 충전해 쓰면 골드등급으로 승격되는데 그럼 출금 수수료가 무료다.
외국인이 선불카드를 만들려면 마이넘버 등록해야 함. 마이넘버 카드 만들라는 통지서 나오면 그 종이 원본만 가져가면 됨. 마이넘버카드 발급할 필요 없음.
넉달째 쓰고 있는데 (통장에 잔고만 빵빵하다면요...) 불편함은 전혀없다. 사실 한국에서 선불카드를 써본건 면세점에서 사은픔으로 주는 카드밖에 없어서; 충전을 따로 하는 것도 첨엔 좀 귀찮긴 했지만서도 지금은 체크카드처럼 인식되고 있음.
아이디, 비밀번호로 로그인해서
충전(チャージ)로 들어가면 금액 충전이 된다.
화살표에 엔화 단위를 써 넣고 밑에 확인버튼 누르면 끝.
GAICA 기준으로 보면 전용 페이지에서 카드-내 계좌 연결해 놓으면 로그인->충전까지 10초 걸리나?; 보안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손쉬운 충전에 당황스럽지만 넘나 편함. 자동 충전 기능도 있음. 예를 들어 잔액이 1만엔 이하로 떨어지면 1만엔 자동으로 충전되는 식. 월정액으로 자동 충전해놓을 수도 있는데... 어머 이건 사야대! 순간이 너무 잦아서... 무슨 겜머니 충전하듯 수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제 손가락 좀 잘라주시겠읍니까;;; 온라인 몰에서도 잘 되는데, 가끔 프로모션 제품 중에 선불카드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듯.
스이카와 GAICA카드로 처음보다는 동전에서 많이 해방됐지만 솔직히 현금을 쓰는게 한국보다는 훨훨훨씬 편하긴 하다. 지폐와 동전을 꺼낼 때 걸리는 시간을 서로가 기다려주는 문화도 있고, 물리적으로 현금을 수납을 쉽게하는 수단들이 있다.
버스나 마트에서 쓰는 현금 수납·계산기 대부분은 동전과 지폐를 넣으면 알아서 액수를 인식함. 받은 돈과 받을 돈의 차액도 자동으로 계산돼 거스름돈이 나옴. 마트에서도 계산원이 계산은 하지 않고, 고객에게 받은 돈을 기계에 넣기만 하면 거스름돈에 맞춰 지폐와 동전이 나옴, 이 돈을 손님에게 건네주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
라이프(ライフ) 현금수납기. 셀프계산대 아니더라도 여기다 돈을 냄. 현금, 신용카드, 포인트카드 중 고를 수 있음.
거의 모든 마트나 편의점에서 계산원이 계산하는 레지(レジ)도 이런 식으로 생겼다.
동전은 그냥 우르르르. 여기서 동전 없애기 유용함.
레지 카운터에는 지폐 투입구, 동전 투입구가 따로 달려있는데, 내가 넣으니까 동전은 일일이 세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는 걸 대충 맞춰 투입구에 다 쏟아넣음. 그러면 알아서 계산 끗. (주황색부분이 동전 투입기, 초록색 바탕에 ‘Bill’ 이라고 적힌 부분이 지폐 투입기. 가운데 파란 부분에서 거스름 동전이 나온다)
온라인 쇼핑도 현금으로 지불가능.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할 때 ‘代金引換’이란 항목. 주의사항을 보면 ‘주문 상품 도착 시, 상품과 교환하여 현금을 받겠습니다. 수취 시, 신용카드나 전자화폐, 선불카드로는 결제할 수 없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함.
무인양품 온라인 결제창.
다른 모바일 쇼핑의 경우도 비슷한 형태.
집에 물건이 배달오면 택배기사님에게 현금을 드리면 되는 시스템. 박스에 영수증(수령증)도 붙어서 오는데, 한국의 무통장입금과 비슷하지만 인뱅으로 입금하는게 아니라 택배기사님에게 입금하면 되는 것? 일본은 택배 받는 시간대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편함.
일본의 결제 도구들은 ‘현금을 더욱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돼있기 때문에 굳이 현금이 아닌 걸 찾을 필요가 없단 생각이 들기도. 뒤에는 '현금사회 일본'에 대한 좀 긴 이야기. 일본 소비자들의 현금 사용 현황과 배경, 현금 충성도에도 불구하고 캐시리스를 추진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썰.
진화된 현금 우선주의
일본 소비자들이 현금으로 결제하는 비율은 2018년 1월 기준 61%(일본 경제산업성)다. 한국(38%·한국은행·2017년)의 두 배 가까운 수치. 현금 유통량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9.4%(일본은행·코트라·2015년 기준)로 한국의 3배.
가계의 최종 소비지출을 기준(경제산업성)으로 보면 격차는 더 커짐. 한국의 경우 현금이 아닌 수단으로 결제한 비중(카드·E머니 포함, 전자화폐 제외)이 한국은 96.4%(2016년)에 달하지만, 일본은 19.8%에 그친다. 한국의 경우 부동산 거래를 제외하고는 교육비 등 목돈을 지출할 경우 신용카드를 쓰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시민들이 지갑에 넣고 다니는 현금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행의 2017년 '지급수단 이용형태 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1인당 현금 보유액은 평균 8만원. 신용카드나 각종 ‘페이’를 많이 사용하는 30대는 7만8000원으로 평균보다 적고, 아직은 현금을 많이 쓰는 40대는 9만8000원로 평균을 웃돌죠.
같은 시기 일본의 금융사 SMBC컨슈머파이낸스가 일본의 30~40대를 대상으로 ‘30代・40代の金銭感覚についての意識調査’ 금전감각 의식조사를 한 결과가 있다. 평일 기준으로 지갑에 넣고 다니는 평균 금액은 1만4131엔. 1엔=100원 환율로 계산하면 14만원이 조금 넘네요. 한국의 30~40대에 비해 일본 30~40대가 현금을 1.5배 더 가지고 다니는 것.
기사나 커뮤니티, 블로그에서 본 '일본인이 현금을 쓰는 이유'는 대략 이러함.
-현금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결제 수단이다.
-현금 결제가 불편하지 않다.
-신용카드를 만들면 낭비할 수도 있다.
-현금으로 결제가 끝나면 끝이다. 익명성이 보장된다.
-가맹점 수수료가 높다.
특히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다는데 대한 일본인들의 저항감은 ‘마이넘버카드 제도’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마이넘버카드는 도입한지 3년이 넘었지만 보급률은 11.5%(2018년 7월 기준, 일본 총무성)입니다. 그나마 높은 도쿄도(東京都)도 14.9%밖에 되지 않는다.
카드가맹점 수수료가 높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일본 카드사들은 전체 이익에서 수수료 수익 비중이 높은 편. 반면, 한국이나 미국, QR코드 등 ‘신(新) 결제 선진국’으로 꼽히는 중국은 가맹수수료를 낮춰 이용률을 높이는 대신 소비자의 빅데이터 수집해 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추세로 가고 있죠... 익명성, 사생활 보장을 위해 현금만 쓰겠다는 일본 사회에선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미 털릴대로 털려버린 내 정보를 생각하면 차라리 애초에 만들지를 않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편리함을 얻은 대신 개인정보가 '공유재'가 되는 건 어느 사회이든 사실 시간문제인듯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8월, 일본정부는 ‘캐시리스(キャッシュレス) 추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NO 현금 운동본부’.시민들의 현금 충성도에도 ‘캐시리스’를 추진하는 이유.
1) 어마어마한 사회비용, 2)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때문. 3) 방일 외국인 편의성을 위한 인프라 이정도 인듯.
특히 최근 구인난이 심각해진 일본에선 현금 처리를 위한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음. 신바시 등 번화가뿐만 아니라 이젠 주택가 마트, 편의점에서 일하는 계산원의 절반정도는 외국인 노동자들임.또 비용도 생각보다 큰데, 경제산업성이 추산한 현금 결제 인프라의 유지비용이 연간 1조5000억 엔.
가장 큰 부분은 물론 인건비. 각 점포에서는 현금을 수납하는 1차적인 작업 외 하루에 몇 번씩 입출금액이 맞는지 확인하는데도 인력을 투입한다. 이렇게 현금잔고를 확인하는 데 하루 평균 25분이 소요되고, 점포 1곳으로 따지면 평균 153분씩이 걸린다고. 매출 데이터를 집계하는 데도 평균 23분이 걸린다고 하네요.
여튼 일본 정부는 신용카드나 선불카드 등과 같은 현금이 아닌 결제수단(이하 캐시리스)으로 돈을 쓰는 비중을 현재 22%에서 2025년 39%, 장기적으로는 8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캐시리스 위원회’를 만들었음. 시기가 지난해였던 것은 2020년 도쿄올림픽, 2025년 오사카-간사이 EXPO가 예정돼 있기 때문. 일본 정부가 목표로 정한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규모는 올림픽 때는 4000만 명, 엑스포 때 6000만 명.(2018년 방일 외국인 추정치 3319만명·일본관광청) 급증하고 있는 관광객들에게 ‘결제 후진국이라는 인상을 줄 수는 없다’는 다짐처럼 보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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