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왕자의 결혼과 영국 사회의 차별적 시선···혼혈·이혼 수용한 왕실, 변화할까

영국 해리 왕자와 미국 배우 메건 마클이 27일(현지시간) 런던 케싱턴궁에서 결혼 소식을 발표한 뒤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올 초 연인 사이로 발전해 지난 9월 공개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내년 봄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런던|AP연합뉴스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폐쇄적인 영국 왕실. 그곳의 왕자가 영국인도 아닌 흑인 혼혈의 여성과 결혼을 한다. 해리 왕자(33)와 미국 배우 메건 마클(36)의 약혼 소식은 영국 사회의 차별적 시선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영국 언론인 아푸아 히르쉬는 27일(현지시간) 가디언 기고를 통해 “왕실 결혼의 상징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지금부터 흑인은 영국인일 수 없다는 논쟁은 불가능하다”며 “영국 왕실이 상상할 수 없던 현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해리 왕자와 연애 사실을 밝힌 마클은 미국인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영국 타플로이드지 등의 공격을 받았다. 해리는 이같은 인종차별·성차별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가나 출신인 히르쉬는 기고에서 “군주제는 영국인의 근본이었지만 그들(왕실)이 대표한 영국인에서 (혼혈인)나는 배제된 것 같았다”며 “영국인이면서 흑인인 것은 양립될 수 없는 정체성으로 인식됐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그동안 인종차별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동떨어져 있던 왕실도 꼬집었다. 그는 “내가 본 모든 영국의 정부가 인종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려고 했지만 왕실은 아니었다”며 “다양성과 정반대인 왕실의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마클은 혼혈인 자신의 경험들은 서슴없이 말해왔다. 여전히 인종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자신의 흑인 어머니가 당했던 일, 최악의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헐리우드에서 배우로서 느낀 점 등을 밝혀왔다. 일부에선 상대적으로 피부가 하얗고, 유럽에서도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외모를 가진 그의 상징성이 인종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역할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히르쉬는 “영국의 전형적 제도인 왕실은 인종과 정체성을 둘러싼 영국의 역기능 역시 반영돼 있다”며 해리와 마클의 결혼이 “이를 드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혼한 미국인과 결혼을 허락한 자체가 변화라며 “영국 왕실이 공식적으로 21세기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사교계 유명인이었으며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던 미국인 월리스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려야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해리의 형인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의 결혼은 “평민이 왕위 계승자와 결혼한 희귀한 사례”였고, 해리와 마클의 결혼은 “영국 왕실이 이혼한 혼혈 미국인을 포용한다는 것을 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해리 왕자와 미국 배우 메건 마클이 27일(현지시간) 런던 케싱턴궁에서 결혼 소식을 발표한 뒤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마클이 끼고 있는 청혼반지의 3개의 다이아몬드 중 가운데 다이아몬드는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한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캔 원석을 가공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해리의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소장품이다.런던|AFP연합뉴스

　지난해 런던에서 만나 올해 초 연인 사이로 발전한 두 사람이 예정대로 내년 봄 결혼식을 치르면 마클은 해리의 이름을 따라 ‘프린세스 헨리’(Princess Henry of Wales)라는 왕자비 칭호를 갖는다. 왕실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 미들턴과 마찬가지로 공주가 아닌 케임브리지 공작부인이 되는 것이다.

　또 이날 해리와 마클은 왕실의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한 인터뷰에서 청혼 과정과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 밝혔다. 특히 마클이 가장 좋아하는 황색금으로 된 링에 3개의 다이아몬드가 달린 청혼반지는 해리 왕자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전했다. 가운데 다이아몬드는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한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캔 원석을 가공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해리의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소장품이었다고 한다.

　마클은 결혼이 “새로운 장(chapter)의 시작”며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변화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마클이 출연 중인 드라마 ‘슈츠’(Suits)에선 시즌 7을 끝으로 하차한다고 보도했다. 마클이 결혼해도 배우를 그만둘 필요는 없지만 왕실에서의 역할을 고려하면 그동안 해온 일을 이어가기는 쉽지가 않다. 미들턴 왕세손빈 역시 결혼 전 근무했던 아버지 회사의 일을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