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뉴스 깊이보기

[정리뉴스] 유네스코 정치학

by bomida 2017. 10. 13.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의 기자회견장 모습. EPA연합뉴스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연합국의 교육 장관들이 전쟁으로 무너져버린 각국의 교육 환경을 재건해 평화를 찾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2년간 연구 끝에 교육과 과학, 문화 분야의 국제 교류를 늘리는 방식으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기구 창설에 합의했다. 1945년 11월16일 열린 유네스코창설준비위원회에서 37개국 대표들이 영국 런던에 모여 채택한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헌장은 이같은 뜻을 담고 있다.


 1945년 유엔 창설과 동시에 출범한 유네스코는 이런 설립의 의도와 달리 각국의 국내 집권세력의 정치적 입장이나 외교 상황에 따라 탈퇴·가입을 반복하거나, 지원 분담금 지급중단을 통해 압박하면서 부침을 겪어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이 유네스코 탈퇴를 선언 뒤에도 유네스코를 둘러싼 정치학이 숨어있다.


 미국 의회에선 이미 1974년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인정하고 이스라엘을 편향적으로 비판했다서 분담금 집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같은해 PLO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유엔에서 발언한 뒤 유엔총회 결의안 3236호가 가결되면서 팔레스타인은 자결권을 인정받았고, PLO는 유엔의 옵서버 단체 자격을 얻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시행하던 1956년 유네스코가 자국의 인종 문제에 간섭한다며 탈퇴했다가 넬슨 만델라 대통령 시절인 1994년 복귀했다.


 냉전시대였던 1984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유네스코가 제3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자 “유네스코의 정치적 판단이 (옛)소련에 편향돼 있다”며 탈퇴했다. 이에 이듬해 영국도 미국을 따라 유네스코를 나갔다. 싱가포르는 같은해 급증한 분담금을 이유로 탈퇴했다. 영국은 1997년에,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싱가포르는 2007년 다시 가입했다.


유네스코 주요 회원국 분담금 비율.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1년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를 회원국으로 인정하면서 또 한번 분담금 카드로 압박에 들어갔다. 연 8000만 달러(약 900억원) 이상을 삭감했고 지금까지 5억 달러(약 5660억원)이 미지급된 상태다.


 최근 유네스코를 둘러싼 막후 외교전은 세계유산 선정을 놓고 벌어진다. 지금까지 1073개의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이 등재돼있는데 자연유산은 이견이 거의 없지만 문화유산은 상황이 다르다. 1972년 채택된 세계유산협약은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지만 국가의 역사,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석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탈퇴를 결정하는데 배경이 된 이팔 문제에서 유네스코는 지난해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이슬람과 유대교의 공동성지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이 결의를 막기 위해 유네스코와의 협력도 중단했지만 유네스코는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의 손을 들어주며 이스라엘을 ‘점령국’으로 못 박았다. 또 지난 7월 요르단 강 서안 헤브론 구시가지를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동예루살렘 성전산(템플마운트)의 알아크사 모스크 앞에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다. 동예루살렘 | AP연합뉴스

일본 나가사키의 하시마 섬, 일명 군함도.





 중국의 1937년 난징(南京)대학살 자료가 지난 2015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일본은 심사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국 분담금 44억엔을 내지않는 방식으로 항의했다. 전체 회원국 중 분담금을 두 번째로 많이 내는 일본의 이같은 조치에 유네스코는 개선안을 마련했고 일본 정부는 연말에서야 분담금을 지급했다. 또 유네스코는 조선인의  일본 나가사키(長崎)현의 나가사키(長崎)의 무인도 하시마 섬(端島·일명 ‘군함도’)를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5년 근대산업시설로 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분담금 34억8000만엔의 지급도 보류 중이다. 한중일 시민단체가 추진하는 위안부 자료의 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특히 분담금의 22%를 담당하던 미국이 회원국에서 제외되면 일본이 최대 지원국이 될 수 있단 점은 유네스코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의 또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