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엿새째 충돌 55명 사망
ㆍ“수세기 독립요구 연장선”
필리핀 정부군과 남부 무슬림 반군 간 싸움이 심상치 않다. 남부 민다나오 섬의 경제 중심지 삼보앙가를 둘러싼 교전이 엿새째 이어져 55명이 숨지고 6만9000명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현지 일간 필리핀스타가 15일 보도했다. 특히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이 50~100명의 시민을 인질로 삼아 ‘인간방패’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희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충돌은 몇 세기 동안 지속된 필리핀 내 무슬림들의 독립요구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 국민 85%가 가톨릭을 믿는 필리핀에서 ‘모로’로 불리는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며, 남부 민다나오·술루 섬에 많이 산다.
이들이 정부에 맞선 것은 16세기 중반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 기독교 정책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식민을 거치며 무슬림이 대부분이던 남부로 기독교도인들의 대량 이주하면서 갈등의 씨앗은 커졌다. 1945년 미국에서 독립한 후에도 정부의 차별에 대한 불만이 컸던 이들은 1968년부터 위한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사바를 둘러싸고 벌인 영토분쟁에 투입된 모로군 일부가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를 공격할 수 없다고 반발하자 처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정부와 군대가 모로인에 대해 벌인 명백한 차별대우의 상징이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이후 필리핀 내 무슬림의 무장을 지원해 1969년 누르 미주아리가 결성한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이 탄생했다.
반정부 투쟁을 이어가던 미주아리는 1970년대 정부와 정전과 무슬림 자치지역 설립을 위한 협상의 대표로 나섰다. 1996년 평화협정을 체결해 민다나오 섬 내 무슬림 자치구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주지사 자리도 맡게 됐다. 그러나 5년 임기 동안 그는 리더십부족과 부패에 대한 무슬림 안팎의 비난을 받고 2001년 선거에서 친정부 인사에게 주지사 자리를 내줬다. 그는 패배에 반발해 정부군과 유혈 충돌을 일으켰고 말레이시아로 도망갔다가 필리핀으로 송환, 구금됐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됐지만 이 과정에서 조직은 와해됐다.
미주아리의 정부와의 협상, 자치구 설립 자체를 반대했던 이들은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으로 분리돼 자치권을 넘어선 독립국가 설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또 다른 세력은 알카에다와 연계돼 아부 샤아프를 꾸렸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전투에 참가하는 게릴라 조직도 생겼다.
정부와 협상 주체였던 미주아리가 전적으로 배제되면 향후 평화협정 역시 제한적 의미밖에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BBC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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