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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럽

녹색 대신 석유? 아직은 ‘석유시대’인 노르웨이의 딜레마

by bomida 2017. 9. 12.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해 재선이 확정된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가 11일(현지시간) 오슬로 보수당 당사에서 의회로 향하고 있다. 총리 뒤편으로 보수당 연립정부의 지지자들의 ‘새로운 4년’이라고 쓴 푯말을 들고 있다.AP연합뉴스



 노르웨이 총선에서 보수당이 주축인 우파 연립여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친환경 녹색 국가와 석유 부국. 노르웨이의 두 가지 상충된 정체성이 맞붙었던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아직은 ‘석유시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치른 선거 개표율이 95%를 넘은 가운데 보수당과 진보·기독민주·자유당 등의 중도우파 연립이 전체 169석 중 89석을 확보해 과반을 차지했다고 NRK방송 등이 보도했다. 에르나 솔베르그는 1985년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보수당 총리가 됐다. 2013년 총선 패배 후 절치부심해 온 노동당 주축의 중앙·사회주의좌파당 등 중도좌파 연립야당은 79석에 그쳤다.


 노동당은 2014년 이후 저유가로 노르웨이 석유업계 일자리의 5분의 1이 사라지고 석유를 통한 수입도 40%나 감소하면서 정권 탈환의 가능성이 높아졌었다. 그러나 경기 호전에 따라 1년 전 5%로 20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던 실업률이 4.3%까지 떨어져 보수당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발목을 잡혔다. 로이터통신은 “노르웨이 석유산업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노동당의) 기세가 꺾였다”고 보도했다.


 석유 논쟁이 시작된 것은 보수당의 ‘경제를 위한 감세’와 노동당의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가 첨예하게 맞붙으면서였다. 세금이 화두가 되자 기업들의 석유·가스전 탐사비용의 78%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문제가 떠올랐다. 현지 일간 아프텐포스텐에 따르면 2013~2016년 700억 크로네(10조원)에 달한다. 노르웨이는 24%의 법인세와 별도로 수익의 54%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기는 하지만 고비용에 수익율도 불확실한 탐사를 정부가 부추겨 국가 재정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환경단체 벨로나는 탐사 보조금이 대체에너지 확대와 탄소배출 감축을 약속한 파리기후협약을 위반한다고 주장한다.


노르웨이 정부가 매년 석유기업들에게 지급하는 석유·가스전 탐사 비용 보조금 추이. 블룸버그


 결국 감세로 저유가에 대응할 수 있다는 현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재신임이 이뤄졌다. 최근 유가 회복과 맞물려 복지 등 기존 국가 정책들을 아직은 증세없이 석유 수입에 의존할 수 있다고 판단한 유권자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석유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저유가와 선거를 통해 던져진 석유에 대한 의문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노르웨이는 전력의 98%를 수력으로 생산하며 2025년부터 모든 차량에 무공해 엔진 장착을 의무화하는 등 탈화석연료 정책에서 가장 앞선 나라다. 전기차 비중도 1000대당 21.5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럽의 주요 석유생산국이다. 유가가 최고치에 달했던 10년 전만해도 석유는 전체 수출의 절반,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지난 40년간 생산한 석유는 12조 크로네(약 1700조원)에 달하며 석유업체들이 노르웨이에 투자한 돈도 3조 크로네(430조원)가 넘는다. 석유·가스 수익으로 조성된 약 8조 크로네(100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는 지구상 모든 기업의 주식을 평균 1.3%씩 보유하며 노르웨이를 부국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 때문에 선거 직전 북부 연안 로포텐제도의 석유 탐사 찬반 논란이 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노르웨이 정신(Soul)’을 위한 싸움이라고 보도했다. 추정 매장량만 13억배럴에 달하는 유전을 환경 등을 고려해 포기할 수 있는지 여부는 향후 노르웨이의 정체성을 결정할 것이라는 의미다.


 보수당이 이번 선거에서 의석수가 감소해 입지가 줄면서 연정 내 소수 정당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 점도 관건이다. 여당연합의 자유당은 북극해 석유 탐사에 엄격한 제한에 찬성하고 있다. 또 선거 과정에서 지속됐던 탈석유에 대한 요구도 힘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솔베르그 총리도 저유가 국면에선 국가산업의 ‘녹색 전환’에 힘을 실으며 석유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날 재선 확정 뒤 “우리의 (감세)정책이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봤다”면서도 “석유수입은 계속 줄어든다는 과제가 있다. 모두 여기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그린피스의 트룰스 굴로우센은 선거를 통해 시민들이 처음으로 석유에 대한 국가적 의존도, 석유 공급자로서의 책임에 의문을 갖게 됐다면서 “시민들의 인식은 바뀌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