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다이애나비가 1987년 11월 독일 본에서 가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과 영국 왕실과의 만남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이애나와 영국인 사이엔 복잡하고도 전례가 없으며 부정할 수 없는 ‘케미(화학적 관계)’가 있다.” 맨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한 영국 작가 힐러리 맨텔은 영국 왕실에 등장한 직후부터 숱한 이야기를 만든 영국의 고 다이애나비를 이렇게 설명했다.
1997년 서른여섯의 짧은 생을 마감한 이후 더 많이 회자된 그에 대한 관심은 31일(현지시간) 20주기를 앞두고 더 높아지고 있다.
과잉소비 속 사라진 군주제 논쟁
20주기를 맞아 세계 언론은 다이애나의 동화 같았던 결혼식, 힘들었던 왕실 생활과 찰스 왕세자와의 이혼,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두 왕자의 현재 심경 등을 쏟아내고 있다. 찰스와의 결혼에 불만을 토로하는 다큐멘터리, “장난스러운 엄마”와의 “마지막 짧은 통화를 후회”하는 왕자들의 회고 다큐도 공개됐다. 1981년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열린 결혼식 영상도 초고화질로 복원돼 유튜브에 공개됐다.
맨텔은 여전히 과잉소비되는 ‘다이애나 현상’을 ‘영국의 집단적 창조물이자 집단적 소지품’이라고 했다. 가디언은 ‘우리는 여전히 왕실 관음증이다’라는 제목의 사설(26일자)을 통해 자성했다. “20주기는 반성을 위한 순간이다. (영국의) 군주제에 대해 20년 전보다 진보된 고민도 없고 논쟁조차 사라졌다. 지금 왕실이 21세기, 포스트 다이애나,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의 영국에 적합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때이다.”
다이애나의 이혼과 사망으로 드러난 왕실의 실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 들끓었던 군주제 폐지론을 잦아들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다이애나의 죽음이었다.
1995년 12월21일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이혼 소식을 1면 기사로 전한 영국 현지 신문들.
AP연합뉴스
1997년 8월31일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의 소식을 전한 신문 1면에
‘다이애나가 죽었다’는 제목이 실려있다. AP연합뉴스
1997년 9월6일 찰스 영국 왕세자와 해리 왕자, 다이애나비의 동생 얼 스펜서, 윌리엄 왕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에드워드 공작(왼쪽부터)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참석해 운구 행렬을 바라보고 있다.AP연합뉴스
영국 더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제니 러셀은 “(다이애나가 왕실에 들어왔을 때) 왕실은 무능하고 (시민들과) 동떨어져 있던 반면 (마거릿 대처) 총리는 카리스마가 넘쳤다”며 “그러나 지금은 총리와 정치인들이 (대중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혼란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진지한 윌리엄과 장난스러운 해리가 희망을 제시하는 공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 기고를 실은 미국 뉴욕타임스는 ‘다이애나가 여왕을 구했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2011년 4월29일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가 결혼식을 마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가 지난 7월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해 조지 왕자, 샬럿 공주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EPA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2년 왕좌에 오른 지 60주년을 맞아 영국 사상 두번째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치렀다. 당시 여왕 지지율은 80%에 달했다. 아흔 살을 맞은 지금도 60%에 이른다. 특히 영국의 왕실에 대한 지지는 다이애나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큰 축이다. 이달 초 실시된 유고브(YouGov) 조사를 보면, 윌리엄(78%)과 해리(77%)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찰스 왕세자(27%)의 3배나 된다. 윌리엄과 2011년 결혼한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73%)도 한몫한다.
다이애나, 새 군주제 선물?
다이애나 이후 왕실은 결혼이 상호공존과 이해, 사랑을 바탕에 둬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이제 찰스에겐 카밀라가 있고, 두 왕자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됐다. 평민 출신의 왕세손비는 왕실에 대한 환상 없이 결혼했으며 다이애나와 같은 왕실 속 고립도 겪지 않는다. 윌리엄이 “나의 인생을 가장 공유하고 싶은 사람”으로 소개한 케이트는 왕세손의 아내로,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의 엄마로 왕족의 공무를 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심리·정신건강 관련 문제를 중심으로 8개 어린이 단체를 후원 중이다. 인디펜던트는 “윌리엄이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시간이 무르익었을 때 (시민들은) 왕과 왕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 것이 다이애나의 가장 큰 유산”이라고 봤다.
1981년 2월 영국 런던 버킹엄궁 정원에서 찰스 왕세자와 당시 약혼자였던 다이애나가 사진을 찍고 있다.EPA연합뉴스
1981년 7월29일 결혼식을 마친 찰스 영국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향해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1981년 7월29일 결혼식을 마친 찰스 영국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버킹엄궁에서 키스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987년 8월 영국 다이애나비가 두 아들(뒤쪽이 윌리엄 왕자,앞쪽이 해리 왕자)과 함께
스페인 마요르카섬 왕궁 앞 계단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1995년 8월 영국 다이애나비가 대일전승기념일(VJ day)을 맞아 해리 왕자(가운데), 윌리엄 왕자와
기념식에 참석해 함께 서 있다. AFP연합뉴스
시민 10명 중 4명 정도도 다이애나의 등장과 죽음이 왕실을 좋은 방향으로 바꿨다(44%·유고브)고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32%)는 이들도 있다. 올 1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건강 이상설이 나오자 ‘여왕 이후의 군주제’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쏟아졌다. 왕자와 왕세손비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높지만 점점 떨어지는 왕실에 대한 신뢰도를 지탱해주는 것은 여왕의 권위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여왕이 국가원수인 호주는 맬컴 턴불 총리가 입헌군주제를 공화제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으며 여왕 퇴위 후 공화국 출범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사실 영국 왕실의 폐지 위기는 수십년 전부터 있었다. 다이애나는 금기를 말하고, 건드릴 수 없는 것에 손을 대며 왕실을 바꿨다. 속으로 감정을 감추는 영국인들이 열광하고 분노에 가까운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윌리엄·해리 왕자가 찰스 왕세자 대신 대중의 인기를 받으면서 영국 군주제의 폐지에 대한 위협을 없앴다. 그의 등장과 죽음은 21세기 군주제에 대한 숱한 의문을 남겼지만 왕실의 유용성과 별개로 비이성적이며 검증되지 않은 필요성 덕에 군주제는 유지되고 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한다.
2017년 영국인들은 다이애나를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유고브 조사에서 시민들은 ‘국민공주’(26%)와 ‘교통사고 사망’(19%)을 많이 꼽았다. 이어 ‘사적인 삶과 스캔들’(15%), ‘윌리엄·해리의 엄마’(12%), ‘연민’(10%) 등이었다. 러셀은 “다이애나가 스스로 자신을 (아이콘으로) 만들고 (죽음으로) 파멸시켜 가족에게 현대의 새로운 군주제를 선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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