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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럽

테러에 맞선 스페인 50만 시민들 “우리는 두렵지 않다”

by bomida 2017. 8. 27.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중앙)과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왼쪽 세번째)가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열린 연쇄 차량 테러 희생자 추모 행진에 참석해 시민들과 나란히 서있다. AP연합뉴스


 주말인 26일 오후(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은 “우리는 두렵지 않다”(No Tinc Por)라고 쓴 문구를 든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람브라스 거리엔 수천송이의 장미와 촛불들이 놓였다.


 현지 엘파이스 등은 이날 거리로 쏟아져 나온 50만명의 시민들이 지난주 15명이 사망하고 120여명이 다친 연쇄 차량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평화 행진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행진은 테러가 발생한 람브라스 거리에서 구조활동을 벌였던 응급요원과 택시운전사, 경찰과 시민들이 함께 주축이 돼 이뤄졌다.


 카탈루냐 언어로 ‘우리는 두렵지 않다’, ‘이슬람포비아(이슬람혐오)를 거부한다’, ‘평화를 원한다’라고 씌여진 푯말을 든 시민들은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빨란색, 노란색, 하얀색 꽃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특히 이 행렬엔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도 있었다. 스페인 국왕이 이같은 대중 시위에 참여한 것은 1975년 왕정 복고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왕실과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내, 딸과 함께 행진에 나온 바르셀로나 시민 헥토르 페르난데스는 국왕을 향해 야유를 보내며 “왕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팔았다. 이 평화행진에 올 수 없다”고 외쳤다. 그의 옆에 있던 다른 남성도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 경찰에 테러리스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처음으로 국왕의 위선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스페인 당국이 벨기에 당국과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이슬람 성직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점을 지적한 것이다. 스페인 당국이 대테러 공조로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열린 연쇄 차량 테러 희생자 추모 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나는 두렵지 않다’(#No Tinc Por), ‘이슬람포비아(이슬람혐오)를 거부한다’(No A La Islamofomia)는 문구를 들고 서있다. 시민들 사이로 카탈루냐기도 나부끼고 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스페인 중앙정부에서 분리독립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오는 10월 예정대로 치를 계획이다. AFP연합뉴스


 이번 테러로 정부의 안보·보안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가운데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오는 10월 예정된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예정대로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진 인파 속에는 독립을 지지하는 의미로 카탈루냐기를 들고 나온 이들도 많았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 람브라스 거리에서 시민들이 장미꽃과 촛불을 놓고 지난주 발생한 연쇄 차량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스페인 테러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이번 주말에도 유럽은 또 한번 공포에 떨었다. 흔히 구할 수 있는 흉기를 사용한 ‘로 테크(low-tech)’ 테러가 연달아 터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25일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선 유럽연합(EU) 본부가 위치한 그랑플라스 인근에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들에게 테러범이 칼을 휘둘러 1명이 다쳤다. 이 용의자는 현장에서 사살됐다. 이 사건 직후 영국 런던에선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엄궁 인근에서 길이가 120㎝에 달하는 흉기로 경찰 3명을 공격한 테러범이 붙잡혔다. 테러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왕실이 여름 휴가를 보내는 스코틀랜드 발모럴 성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살된 브뤼셀 테러범과 붙잡힌 런던 테러 용의자 모두 범행 직후 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고 외쳤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벨기에와 영국 경찰들은 각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당국은 이번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의 단독 범행인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