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중동과 아프리카

여성 수학 천재의 죽음, 이란 ‘히잡 금기’도 깨나

by bomida 2017. 7. 17.

이란 신문들이 16일(현지시간) 요절한 천재 여성 수학자의 소식을 전하며 히잡을 쓰지 않은 그의 얼굴을 크게 실었다. AFP연합뉴스


 이란 신문들이 요절한 천재 여성 수학자의 소식을 전하며 히잡을 쓰지 않은 그의 얼굴을 크게 실었다. 승용차 내부도 공공장소라며 히잡을 벗고 운전하는 여성에게 벌금을 물리는 이란에선 ‘금기’가 깨진 것이다.


 현지 일간 함샤리 등 16일(현지시간) 신문 1면 표지에 전날 미국에서 유방암으로 숨진 수학자 마리암 미르자카니(40)의 소식을 전했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일부는 희잡이나 모자를 쓴 사진이나 히잡을 그려넣은 얼굴 그림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미르자카니의 짧은 머리를 그대로 기사와 함께 담았다. 


 테헤란에서 태어난 그는 영재를 위한 특수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4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이란 여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참가해 42점 만점에 41점을 받아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듬해 대회에선 금메달을 2개나 땄다. 1999년 샤리프기술대학을 졸업한 뒤 이란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갔고, 2004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 클레이수학연구소를 거쳐 프린스턴대 교수가 됐고, 2008년부턴 스탠퍼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4년 전 암 진단을 받은 뒤 투병을 하던 그는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기하학의 난제 중 하나로 꼽히는 모듈라이 공간을 해석한 ‘리만 곡면의 역학·기하학과 모듈라이 공간’을 주제로 한 논문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1936년 필즈상을 수여하기 시작한 이후 첫 여성 수상자였다.


 이후 체코에서 태어난 남편과 결혼하면서 계속 외국에서 지내온 인물이긴 하나, 히잡을 쓰지 않은 자국 여성의 사진을 지면에 싣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필즈상 수상 소식의 경우 현지 언론들은 스카프를 합성하거나 얼굴만 싣는 방식으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모습을 감췄다.


 이 같은 변화는 개혁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2013년 집권한 뒤 달라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표현의 자유,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 집회·결사의 자유, 남녀 평등을 중요 정책으로 다뤄 이란의 젊은층과 여성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로하니는 지난 5월 재선에 성공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히잡을 쓰지 않은 미르자카니의 사진과 함께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탁월한 이란 출신의 수학자인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몹시 슬프다”고 추모의 글을 올렸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여성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된 이란에선 최근 운전 중 히잡을 착용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최근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히잡을 머리가 아닌 어깨에 느슨하게 두르는 경우가 많아지자 경찰이 단속을 강화한 탓이다. 이에 이란 여성들은 승용차 내부는 집안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개방의 바람이 분 이란에서 미르카자니의 사망을 계기로 금기를 깨기 위한 움직임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과 결혼한 이란 여성의 자녀들이 이란 국적 취득이 가능하도록 해야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란은 무슬림이 아닌 남성과의 결혼은 인정하지 않아 외국인과 결혼한 여성의 자녀들이 이란에 입국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란 하원의원들은 이날 미르카자니의 아이들이 이란을 방문할 수 있도록 조속히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