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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IS 떠난 자리, ‘분리독립’ 압박 나선 쿠르드의 속셈은

by bomida 2017. 7. 11.

이라크 정부군이 북부 대도시 모술을 마침내 탈환했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국가 수립’을 선언한 모술에는 3년 만에 이라크 국기가 꽂혔다. IS는 소탕됐으나 그 빈자리는 또 다른 불안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IS 격퇴전의 큰 축이던 쿠르드가 분리독립을 내세우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술 일대는 쿠르드 자치지역인 동시에, 이라크 북부의 주요 유전지대이기도 하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9개월의 작전 끝에 수복한 모술을 9일(현지시간) 방문해 “이라크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했다고 이라키뉴스 등이 보도했다. 모술 탈환은 ‘공공의 적’ 앞에서 동맹이 결성돼 이뤄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이날의 승전보가 민족·종파 갈등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IS에 맞서 손잡았던 이라크 정부 측과 쿠르드자치정부(KRG) 사이에 세력 경쟁이 재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한 경찰대원이 9일(현재시간) 모술의 구시가지에서 이슬람국가(IS) 소탕을 자축하며 국기를 펼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3년간 IS에 점령당했던 모술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_ _AFP



특히 쿠르드자치정부군 ‘페슈메르가’는 전세를 역전시킨 일등공신이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점령한 뒤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군대를 없애고 내무부 산하에 치안군만 뒀다. 그 결과 정부군은 IS의 공세에 속수무책이었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가 나선 후에야 전선을 가다듬었다. 그사이에, 유전지대를 방어하고 IS의 쿠르드족 학살을 막기 위해 나선 페슈메르가가 IS와 전면전을 벌였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오는 9월25일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수드 바르자니 자치정부 대통령은 지난 6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독립 일정은 유동적이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쿠르디스탄공화국’ 수립을 위한 이번 투표에는 북부 아르빌 등 자치지역 3개주 외에도 신자르와 카니킨, 마크무르, 키르쿠크 주민들까지 참여하게 할 계획이다. 자치정부는 IS와 전쟁을 치르면서 슬그머니 북부 최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자치지역에 편입시켰다. 이에 반발한 아랍계 주민들과 쿠르드계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3000만명에 이르는 쿠르드족은 터키와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중 500만명이 이라크 북부에 산다. ‘살라딘의 후예’를 자처하지만 한 번도 독립국가를 세워보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기도 하다. 이라크 쿠르드는 미국의 지원 속에 1991년부터 자치권을 확보했고,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에는 바그다드의 중앙정부와 협력하며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터키에서 탄압을 받는 쿠르드족 분리주의자들, 시리아에서 IS의 횡포를 피해 떠나온 쿠르드 난민들도 자치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 때문에 쿠르드의 움직임은 이라크뿐 아니라 터키, 이란의 견제도 받을 수밖에 없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 분리투표에 대해 “잘못된 길이며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자치정부 역시 당장 독립으로 향해 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자치정부는 원유를 팔아 번 돈의 일부를 중앙정부로부터 지급받다가, 2015년부터는 직접 판매하고 있다. 자치지역에 매장된 원유는 40억배럴에 이른다. 2015년 하반기에만 석유를 팔아 40억달러 가까이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페슈메르가의 운영자금도 그 돈으로 충당했다. 그런데 석유 수출은 터키로 이어진 송유관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니 터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남쪽 걸프의 수출항으로 보내려면 바그다드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자치정부가 “주민투표는 이라크 쿠르드족을 위한 것이며 터키와 시리아, 이란 쿠르드족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이란과 긴밀한 관계다. 이미 IS와의 전투 과정에서 페슈메르가와 시아파 민병대 간 충돌이 여러번 일어났다. 바그다드 정부가 민병대를 최근 쿠르드 지역에 배치하면서 긴장은 더 높아졌다.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까 우려하는 미국이 쿠르드 독립을 지지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라크가 쪼개지는 것을 미국이 용인할 가능성은 낮다. IS와의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독립을 내세운 자치정부의 실제 목적은 키르쿠크 등지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더 많은 자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