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5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군부 쿠데타 실패 1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터키 정부는 쿠데타를 저지한 이날을 국경일인 ‘민주주의와 국가통합의 날’로 선포하고 보스포루스해협 위를 지나는 순교자의 다리 앞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그날 밤, 국민들은 총이 아닌 깃발을 들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점이다. 나라를 지켜냈던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을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는 보스포루스해협.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앞에 서서 15일(현지시간) 이같이 말했다. 실패로 끝났던 군부 쿠데타 직후 ‘순교자의 다리’로 이름을 바꿨던 그는 쿠데타 1주년을 기념하는 감성적인 연설의 끝에 “반역자들은 머리를 부수고 관타나모 (미군기지 수감자들이 입는) 구속복을 입혀서 법정해 세워야 한다”며 숙청을 계속할 것임을 예고했다.
■1년간 더 강화된 에르도안의 ‘절대권력’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의 정권 장악력은 더 커졌다. 정부가 쿠데타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페툴라 귤렌의 추종자라는 이유로 5만명이 구속됐으며 공무원과 군인, 경찰 등 공공부문에서 15만명이 해고됐다. 테러조직과 연루를 빌미로 연설 전날인 14일에만 7400명가량이 추가로 해고됐다.
에르도안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정복, 독립전쟁과 함께 이번 쿠데타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았다. 누만 쿠를툴무쉬 부총리는 “유대인은 홀로코스트, 일본은 히로시마, 터키는 7월15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에르도안이 정치적 패권을 견고하게 만들수록 야권의 활동엔 제약이 늘어난다. 영국 BBC는 “쿠데타에 맞섰던 터키의 단합은 퇴색됐고 분열은 확대됐다”며 “국민 절반에겐 이날이 재도약의 날이지만 나머지 절반에겐 남아 있던 민주주의가 말살된 날”이라고 전했다.
지난 9일 최대 200만명이 모였던 이스탄불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었다. 이 시위는 정부의 강압에 맞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주도로 시작된 ‘정의의 행진’을 마무리하는 집회였다. 당시 거리를 메운 인파는 반(反)에르도안 세력의 결집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다. 최근 이스탄불연구소의 설문을 보면 이 행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43%)은 CHP의 지지율보다 17%나 높았다. CHP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행진을 의미있게 지켜본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정부의 강압정치에 환멸을 느끼거나 국가비상사태를 끝내고 법치주의로 돌아가자는 여론도 많아졌다. 그러나 야권이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정부 시위, 정치적 결집엔 한계
에르도안 집권 후 터키에선 반정부 시위가 수차례 있었지만 실질적인 정치 흐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013년 이스탄불 게지공원 재개발을 계기로 열렸던 대규모 집회에 참여한 이들에겐 반역자와 스파이, 테러리스트의 굴레가 씌워졌다. 터키 경제외교정책연구센터(EDAM)의 시난 윌겐은 “정치적으로 분열된 야권이 에르도안의 패권에 맞서 의미있고 단합된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의의 행진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경제적 형평성과 평등한 교육 기회, 성평등, 민족·종교·문화적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 등 여러가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중의 목표를 아우르는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쿠르드 문제도 얽혀 있다. 친쿠르드 정당인 인민민주당(HDP)도 행진을 지지하며 참여했으나 야권 내에선 쿠르드와 연계되는 것을 경계하는 시각이 많다. 집권 정의개발당(AKP)과 에르도안이 정의의 행진을 “테러조직의 지원을 받아 이뤄진 것”이라고 비판하는 데에는 쿠드르 정당 지도자들이 행사에 참여한 탓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에르도안에 맞설 힘을 얻기 위해 야권은 쿠르드 진영과의 관계부터 결정해야 한다. 중동 정치매체 알모니터는 “쿠르드와 여성, 정치적 소수 진영은 수동적인 일회성 정치세력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높은데, 이는 터키가 완전히 독재체제로 넘어갈 수 있는 우려스러운 징후”라고 분석했다.
에르도안은 이미 쿠데타 시도를 ‘세속주의 군대가 취약한 이슬람 정당을 공격한 사건’으로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기구 초당파정책연구소의 역사학자 니컬라스 댄포스는 “에르도안은 일련의 사건들을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에 필요한 핵심 요소로 사용해왔다”며 “자신과 여당을 국민의 수호자로 묘사하며 외국의 점령, 군사적 지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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