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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럽

[런던 화재]“불붙은 외장재, 바나나 껍질처럼 벗겨져 나갔다”

by bomida 2017. 6. 16.



“바나나 껍질처럼 벗겨져 나갔다.”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뒤 세계의 대도시를 뒤덮은 고층빌딩의 안전문제가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특히 24층짜리 대형건물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인 것이 최근 새로 설치한 외장재 탓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면서, 비슷한 소재를 쓴 고층건물들의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BBC방송 등은 그렌펠타워의 외장 마감재로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에틸렌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건물 관리기구는 2015년까지 900만 파운드(128억원)를 들여 리모델링하면서 건물 외부를 새로 피복했다. 고층빌딩은 바람과 빗물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 외벽에 3~5㎜ 두께의 패널을 붙인다. 패널의 겉면은 알루미늄이지만 안에 단열재로 어떤 소재를 넣느냐에 따라 값이 다르다. 광물질 패널이 화재에는 더 강하지만, 폴리에틸렌은 값이 싸서 세계의 고층빌딩에 많이 쓰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의 양상으로 볼 때 그렌펠타워 외벽에 폴리에틸렌이 들어간 패널이 쓰인 것으로 추정했다. 방송진행자로도 유명한 건축가 조지 클라크는 BBC에 “외장재가 바나나 껍질처럼 벗겨져 나갔다. 절연재와 피복 사이에는 에어갭이 있는데, 불길이 급속히 번지는 굴뚝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당시 리모델링 시공사였던 라이던(Rydon)은 불이 난 뒤 “화재와 관련한 모든 규정을 준수했으며 건물 안전관리 기준도 충족했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15일 이 회사의 성명에선 이 구절이 갑자기 사라졌다.

 

값싼 외장재가 대형 화재를 부른 사례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호주 멜버른에서 2014년 12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다친 라크로스빌딩 화재 때는 8층에서 담뱃불로 시작된 불길이 11분 만에 21층 꼭대기까지 번졌다. 2015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선 불꽃놀이 도중 옮겨붙은 불씨에 63층 호텔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작은 불이 큰불로 번진 원인은 외장재였다. 4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5년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도 불길이 외장재를 타고 번진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소방관노조는 “그렌펠타워 거주자들은 외장재가 건물 안전을 위협했는지 원인 규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2009년 캠버웰의 아파트 라카날하우스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오래된 고층아파트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지만 당국이 무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의회 조사에서, 런던 시내에만 노후한 아파트 4000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렌펠타워처럼 최근 외장재를 바꾼 공공아파트도 여럿 있어서, 당국이 전반적인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