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테러와 총선 이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 이번엔 한밤의 악몽이 영국을 덮쳤다. 런던 시내에서 14일(현지시간) 24층 아파트가 전소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고층 건물 일부 층에 불이 나는 일은 많지만, 이런 규모의 빌딩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사건은 극히 이례적이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쯤 런던 서부 노팅힐 부근 켄싱턴에 위치한 그렌펠타워에서 불이 났다. 저층부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꼭대기까지 번져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현장 주변은 잿더미로 뒤덮였고, 대피 과정에서 부상한 이들이 속속 병원으로 옮겨졌다. 아파트에는 120가구가 살고 있었고, 사망자 최소 6명이 확인됐다. 대피하지 못한 입주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인명피해 규모는 수백 명에 이를 수도 있다. 사상자 수와 신원 등의 확인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화재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이 주변 주민들을 일시 대피시키기도 했으나, 런던소방청은 전문가들의 점검 결과 건물이 붕괴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트위터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을 ‘중대 사고(major incident)’로 규정하고 경계령을 내렸다. 런던에선 이달 초 도심 한복판 런던브리지에서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테러로 7명이 숨졌다. 영국은 이 공격을 포함해 석 달 새 세 차례 테러를 겪었다.
지난 8일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잃은 집권 보수당은 이날 화재 뒤 연정 구성 협상을 중단했다. 테레사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더 흔들리고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내각회의를 소집한 메이 총리는 “비극적인 인명 피해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으며 소방당국과 지방정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새벽(현지시간) 대형 화재가 일어난 영국 런던 서부 랭카스터의 공공아파트 그렌펠타워는 켄싱턴첼시왕립자치구에 소속된 곳이다. 이 지역은 런던 내에서도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가 많으며, 특히 소말리아와 모로코에서 온 거주자 비율이 높다.
그렌펠타워에도 아프리카계 무슬림 입주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주민들은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을 맞아 낮 동안 금식을 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느라 입주자들이 평소와 달리 늦게까지 깨어 있었을 것이라며, 대피한 사람을 많았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주민 15만명의 켄싱턴첼시왕립자치구는 런던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에 속한다. 특히 남부의 첼시는 한국의 청담동과 비슷한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스퀘어와 홀랜드 파크 등 같은 런던에서 가장 부동산 가격이 비싼 거리와 광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영국 내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인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 동시에, 빈부격차가 큰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뒤섞여 100여개 언어 사용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초·중·고교의 경우 학생 70%가 이주자 가정이나 소수인종 출신이다. 빈곤한 북부와 부유한 남부 거주자들의 평균기대수명이 10살이나 차이가 날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그렌펠타워가 있는 켄싱턴 북부의 공공주택 단지에 대략 1000가구가 사는데, 수십년 전 도시 재개발 때 지어진 곳이라 많이 낙후돼 있다. 닉 파젯-브라운 구의회 의장은 “엄청나게 충격적인 화재”라며 “수백 명이 안에 있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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